바로 전 포스팅에 이어 나머지 곡을 올린다. 그리고 앞의 포스팅에서 미처 하지 못했던 말과 수정하고 싶은 발언을 털어놓아 본다. 이들은 앨범출시 전 쇼케이스 행사를 홍대에서 한 번 갖고서는 앨범 출시와 더불어 활동중단을 선언했다. 아마도 그에 대한 해답은 그들 홈페이지에 있는 아래 사진의 문구가 상징하지 않을까 싶다. 제2의 자우림이 나올지도 모른다는 발언은 취소한다. 어쩌면 새로운 유형의 밴드를 창출할런지도 모르겠다. 인기와 더불어 따라오는 자본과 미디어의 유혹을 그들이 거부할 수 있을지도 주목된다. 아울러 당분간 내 블로그의 최대 검색어는 이 밴드가 될 듯 싶다. 참.. 이 밴드의 존재를 몰랐던 사람들은 오른쪽 검색창을 통해 예전 EP앨범의 대표곡 '앵콜요청금지'도 들어보시라. 나는 일단 2009년이 다가와서 그런지는 몰라도 '2009년의 우리들
'이란 곡이 가장 듣기 좋다.
1. 브로콜리 너마저 - 유자차
2. 브로콜리 너마저 - 2009년의 우리들
3. 브로콜리 너마저 - 보편적인 노래
4. 브로콜리 너마저 - 편지
일주일간의 대만출장을 마치고 저녁 7시쯤에야 인천공항에 도착했어. 작년의 기억이 있어서인지 이제는 출장을 갈 적마다 당신 생각이 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아. 역시 혼자 사는 자취방이지만 집에 돌아오니 노곤해지는 것이 참 좋아. 이래저래 못했던 인터넷도 신나게 하고 뉴스도 읽고 그러다 보니 벌써 새벽이 다 되었네. 아까부터 계속 졸리긴 한데 출장 다음이라 내일은 천천히 점심 무렵 때까지만 나가도 될 것 같아.
아까는 모처럼 당신의 블로그에 방문을 했었는데 블로그가 다시 닫혔더라. 이 세상에 당신과 연결된 것이라고는 그 블로그 단 하나 뿐인데 그 공간을 통해서라도 당신의 소식을 간접적이나마 접할 수 없다는 사실이 참 아쉬울 때가 많아. 무슨 안 좋은 일이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었는데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생각을 해.
우리가 만나지 못한 지 어느새 만 9개월이 되었어. 생각을 많이 예전만큼 많이 하진 못하지만 아직 난 당신의 잔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아직도 꿈에서 종종 당신을 만나기도 하고 참 우습게도 그럴 때는 아침에 지각을 하는 한이 있더라도 더 길게 당신을 만나기 위해 꿈과 한판 버티기 시합을 벌이는 경우도 있는 것 같아. 그래도 뭐 당신 생각하느라 내 일도 하지 못하고 또 다른 여자 만날 생각도 안하고 하는 것은 아니니까 혹시라도 이 글을 보게 된다 해도 마음쓰지 않았으면 해. 마음이 은결드는 것은 언제나 한 때일 뿐이니까... 당신 생각 참 많이 하는 것처럼 이렇게 쓰고 있어도 사실 요즘같아선 많이 바빠 자주 하지는 못하거든. 그저 순간순간 당신을 떠올리면 이내 산산히 부서져 다시 맞출 생각은 하지 못하고 곧잘 다른 생각에 빠져들곤 해. 뭐 결론은 아주 무탈하게 잘 지내고 있다고나 할까.
그냥 가끔은 당신을 생각하는 마음을 글로 적고 싶었는데 자연스럽게 되는 때가 바로 오늘이었더라. 당신은 도대체 어떻게 지낼까. 종알종알 묻고 싶지만 물을 수가 없다는 것이 지금의 가장 비정한 현실이겠지. 마음이 생각하는 것처럼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이 얼마나 무의미한 문장의 나열이겠어.
더구나 대한민국이란 나라는 거침없는 대선정국의 회오리 속에 침잠해 있고 태안 바다에 일어난 오일유출 사고로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고생을 하고 있고 앞으로도 수없는 희생을 담보로 해야하는 상황에서 한낱 알량한 마음의 여파로 이런 글을 쓰고 있는 나는 참으로 나약하고 허망한 이기적 존재에 불과할런지도 몰라.
그렇지만 지금의 내 위치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에 조금씩 최선을 다 해나가고 있다는 생각을 해. 성격 탓에 너무 완만한 것이 좀 흠이지만 개인과 사회의 관계에 대해 부단히 의문을 제기하고 반성하며 살다보면 언젠가는 정말로 생각과 행위가 일치하는 실천자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해. 이번 출장에서도 인간적으로 너무나 사소한 몇 가지 일로 천박함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영혼임을 다시금 증명했지만 반성하고 있으니까 누구든 일부는 용서해주겠지? 후훗.
삶은 부단히 모순과 역설을 알려주고 있지만 우리는 일면 짐짓 모르는 척 일면 온몸으로 맞대가며 살아가고 있고 살아가게 될거야. 이것이 30대의 슬픈 단면인지도 모르겠지만 우리 앞으로도 각자의 길에서 길을 잃었다고 생각치 말고 꿋꿋하게 전진해 보자는 말을 하고 싶어. 어린 아이처럼 무릎이 까지더라도 이제 우리는 연고를 바르지 않더라도 자연치유할 수 있는 내성이 내재되어 있으니까 두려워하지 않아도 돼.
개인의 감정에서 출발해 사회에 대한 걱정 또 급기야 우리 인생에 대한 개똥철학까지 진출해버린 허무맹랑한 편지가 되어버렸지만 나에게는 영원한 오달진 신데렐라. 당신은 요점이 하나라는 것을 충분히 이해했을 것 같아.
"잘 지내고 있지? 그리고 우리 앞으로도 잘 지내자."
**씨에게 (마지막 연애편지)
현대과학철학에서 토마스 쿤은 과학은 발전이 아니라 변화할 뿐이라고 하지만 이와 반대로 칼 포퍼는 『추측과 논박』이라는 책에서 과학은 추측과 반박의 과정을 통해 발전하는 것이라고 주장을 했었더랬죠. 나는 이 포퍼의 논지를 인생에 대입한다면 '한 인간의 삶이라는 것은 그네가 겪었던 경험이 일정기간 그네 자체를 지배하다가 새로운 경험을 통해 내재적인 발전을 이룩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요. 물론 전체적인 삶의 형태는 변화와 발전의 양대 축 없이는 무미하지 않을까 싶어요. 결국 인생에 있어서는 두 가지 이론이 모두 충분히 일리있는 말이라 믿어요.
작년 5월 중순 당신을 만난 이후로 참으로 어렵게 그러나 즐겁게 우리의 '관계'라는 것을 맺어왔습니다. 그러나 주지하다시피 올해 4월 2일 당신이 임시로 취직했던 회사로 정서적으로 많이 불안정했던 당신을 위로한다는 핑계로 내가 당신의 동의없이 찾아갔던 일이 계기가 되어 당신과 만나지 못하게 된 지 5개월이 훌쩍 흘렀죠. 그 기간은 나에게 있어 그 실수에 대해 많이 고민하는 한편 당신에게 화해의 제스처를 취하면서 힘들기도 했지만 내적인 성취를 이루는 도약의 시간이기도 했어요. 여름으로 넘어가는 계절, 내가 당신에게 보냈던 오프라인 편지(**씨와의 관계에 대하여)에서 밝혔다시피 그렇게 별다른 단서없이 내가 약하되 강인하게 버틸 수 있었던 까닭은 그때의 만남이 있은 후 열흘 정도 흘러 당신의 블로그를 통해 내게 전달한 다음의 텍스트때문이었죠.
http://blog.naver.com/s1682/70021885990
(공유와 강요에 대하여... 당신의 블로그 글 中)
<※ 당신의 글을 허락없이 게재한 것은 지난 기억을 함께 더듬어보잔 취지이니 양해해줘요.>
이 글은 지난 5개월 가량 나에게 전공관련한 그 어떤 공부보다 더 어려운 숙제였어요. 텍스트만 놓고 봤을때는 그만 만나자라는 의미로 해석될 수도 있었을테고, 혹은 내게 선택의 기회를 준다는 사려깊은 의미가 담겨져 있기도 했고 지금까지 많은 열쇠로 이 글의 진정한 의미를 열기 위해 무던히맞춰본 것은 사실입니다. 어찌됐든 난 이 글의 텍스트에만 의존하지 않고 그동안 당신과 함께해 온 1년 가까운 시간과 내가 아는 당신을 합쳐 컨텍스트까지 파악하려는 노력을 했었지요.
아마도 위의 글을 받았던 날, 나는 당신과 간만의 전화로 한 번 더 의견대립이 있었고 그 이후 서울에 올라와서 다음의 글을 내 블로그에 남겼었지요.
http://blog.naver.com/s1682/70016457961
열차를 놓치다.(당신에게)
내 기억이 맞다면 그런 다음 저 '공유와 강요에 대하여'란 글을 내게 남긴 것이었을테죠. 그런 후 삼사일이 지나면서 나는 당신에게 오프라인으로 다음의 편지를 보내게 됩니다.
http://blog.naver.com/s1682/70016573440
('사랑'이라는 미명하의 폭력)
그리고 일련의 과정을 거쳐 한 달이 좀 지나 유선 연락을 취했으나 잘 되지 않아 앞에서 언급했던 '**씨와의 관계에 대하여..'라는 이하 오프라인 편지를 다시 써서 내 마음의 결정을 알리게 되었지요.
http://blog.naver.com/s1682/70018730310
(**씨와의 관계에 대하여...)
이렇게 봄과 여름은 무던히도 빠르게 흘러갔지요. 숨가쁜 시간이었고 비록 당신을 아프게 했지만 난 당신이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참으로 많은 '성숙의 결실'을 얻게 됩니다. 그러면서 좀 더 진중해질 수 있었고, 다시 당신앞에 떳떳하게 나서도 되겠다 싶었던 것이 7월부터입니다. 나의 해외출장과 겹쳤던 당신 생일을 전후로 엉터리 생일선물로 인해 짧게 나마 당신의 답장이 왔고, 이를 계기로 지금까지 드문드문 짧든 길든 약간의 이야기들을 다시 시작하게 되었지요.
여튼 봄 이후로 확연히 내가 달라진 것이 있다면 내가 당신에게 어떤 행동과 말을 할 때는 이제 더 많이 생각하고 충분하다 싶을 때 행위를 하게 된 것이랍니다.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당신과의 만남을 다시 이어갈 수 있다면 또 당신의 얼었던 마음을 다시 풀 수만 있다면 그 어떤 가시밭길도 갈 생각이었기에 척척 어렵지 않게 해나가게 됩니다. 게다가 얼마 전 여름휴가 동안 불완전하지만 지난 세월은 차분히 잘 정리하기도 했구요.
잠시 삼천포로 빠졌는데 계속 이어갈게요.
메일을 주고받으면서 직간접적으로 의사표현을 했지만 별다른 반응이 없어 당신을 언제까지 방치해 두는 것. 달리 말하면 내가 언제까지 차분히 기다리는 것이 좋을까 많이 고민했지만 사람 욕심이라는 것이 어쩔 수 없나 봅니다. 적절한 거리의 '그리움'을 소화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래도 같은 서울 하늘 아래 있으면서 한 번쯤 웃으면서 차 한잔 마시고 싶은 욕심이 스물스물 피어올라 결국 어렵게나마 다시 만나자는 이야기를 우회적으로 꺼내게 되었지요. 이에 몇일 전 당신은 '싫어요.'라고 짧은 답장을 내게 보냈지요. 이때 치기어린 마음으로 '왜요. 무엇이 싫은건가요?'라고 답장을 보냈지만 이내 당신에게 부끄러운 마음을 표현하게 되었지요.
이에 아래와 같이 당신의 답장이 다시 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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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을 건너는 데에...
길을 물어봐야 할 이유따위 없습니다.
그냥저냥 발길 닿는 대로 지나치면 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눈을 들어 먼 곳을 응시한다는 것은,
목적지를 정하고 또 살핀다는 것은,
또다른 신기루를 보는 기회를 만들 뿐이라는 것을...
꽤 오래 전에 깨달아 알았습니다.
신기루를 향하는 발길도..허무하지만,
신기루를 등지는 발기도..허무하기는 마찬가지.
'가지 않은 길'에 대한 후회를 버리지 못할테니까요.
낯선 느낌이 싫어 멀리 가지도 못하고
정적이 두려워 머물지도 못하는 채,
눈뜨면 돌아다니다,
해가 지면 다시 제자리'인 듯한' 곳으로 돌아오는 것이
사막을 대하는 저의..방법입니다.
낯선 공기를 지나 생문을 향한 모험을 하기보다는
너무나 익숙한 사지에 머무르는
나약한 저를 용서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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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재차 답장을 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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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막을 건너는 것이 두려운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목적지를 정하고 먼 곳을 응시한 것도(물론 처음엔 그랬겠지만) 아니죠.
지은씨가 링크해 준 포스트에 이런 문구가 있군요.
"이미 알고 있으면서 그럴 수 밖에 없다는 것.
견인지역이라는 표지판 앞에 주차를 할 수 밖에 없는 사정처럼,
이미 이별을 알고 있어도 사랑할 수 밖에 없다면,
견인 따위는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 그걸 감수하지 않는다면 이별 이전에 사랑도 없을테니,
이처럼 아름다운 음악도 듣지 못했을테니.
어쩌면 이것이 사막을 건너는 법이었던가.."
내가 오직 두려운 것은 '견인'이 아닌 '당신'입니다.
당신과 나의 차이는 어쩌면 이것일런지도.
사막에 발을 디딘 이유는
그 곳에 '지은씨'가 있었기 때문이죠.
그리고 내가 사막에 길을 묻는 까닭은
그렇게 아무도 없는 곳에서 배회하고 있는
'당신'을 찾아내기 위함입니다.
얘기했죠? 내가 더 강한 사람이라고...
기다려요. 언젠가는 내가 당신이 있는 곳에 다다를테니...
추신 : 메일 들어오는 것이 이상해서 봤더니만 메일주소가... 여튼 못말린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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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이은 답장을 쓰고 익숙치 않은 메일주소를 블로그 주소로 변환하여 들어가게 되었지요. 그런데 그 곳에서 일련의 당신의 흔적을 발견하게 됩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짧은 7월의 블로그 글 몇 편이었죠. 그 글을 보고 난 당신에게 다시 이메일을 보냈어요. "말도 안되는 상상이긴 하지만 내가 지금 우스운 '상상'을 하고 있는 것이 맞죠. ㅎㅎ 나도 참..."이라고..
그 말도 안되는 어처구니 없는 펙트를 목도한 이후 토요일과 일요일 밤을 하얗게 지새웠습니다.
사람이란 것이 참 간사하죠. 진중이 어쩌네 성숙의 결실이 저쩌네..떠들더니만 결국 작은 펙트 하나에 이토록 처참하게 흔들리고 말다니...허나 그렇습니다. 그야말고 이틀동안 어처구니 없이 나는 무너져 내렸지요.
하지만 오래지 않아 담담함을 찾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글을 쓰게 되었지요. 서론이랍시고 참 길었지요. 난 지금 당신을 욕먹일 생각은 추호도 없고 어디까지나 우리가 걸어온 길을 재탐색해보자는 취지였어요. 대신 본론과 결론은 가능한 짧게 정리하도록 할게요.
말했다시피 지난 몇 개월동안 나는 하나의 텍스트와 그동안의 컨텍스트를 모아 전적으로 의지해왔어요. 하지만 지금은 다시 새롭게 추가된 전혀 다른 형식의 한 텍스트와 그전에 가지고 있던 텍스트 및 컨텍스트가 내 삶 속에서 '대충돌'을 빚고 있어요. 서두에서 언급했다시피 나는 이 대충돌이 한없이 서글프지만 결국 오랜 시간이 지나서는 결국 내 삶의 역량으로 소화해 버리려고 하는 이상한 성격의 소유자입니다.
내가 짐작하고 있는 현실을 토대로 보면 나를 만나면서 다른 이와 만남을 키워온 듯도 싶고 그렇다면 양다리를 걸쳤다는 이야기일테죠. 그게 아니라 한다해도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문제를 거론해서라도 다른 사람들 같았다면 지금쯤 속된 말로 '나쁜 기집애'등등 욕을 하고 길길이 날뛰면서 비난을 퍼부었을 테죠. 물론 나도 그런 마음이 저 끄트머리에서 무섭게 치솟아 올라오려 하고 있고 지난 인생을 반추해보면 앞으로도 수없이 그것이 용솟음 칠 것이 뻔합니다. 나 역시 평범한 사람에 불과하다는 반증이겠죠.
그러나 지금은 전혀 그러고 싶은 마음이 없어요. 왜냐구요. 나에게 텍스트는 곧 '이성 혹은 현실'이고 컨텍스트는 '마음이자 양심'입니다. 그런데 우습게도 그 이성이 감정으로 변해야 함이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다른 컨텍스트가 그 텍스트를 억누르고 있어요. 아니..좀 더 솔직하게 터놓자면 인위적인 것도 아니요, 그저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 점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나는 도대체 왜 이러고 있는 것일까요. 바보...쪼다도 아닌 다음에야. 오늘 드디어 내 물음에 대해 당신이 답장을 주었더랬죠. 아래와 같이 대답하는 것을 보고 한층 더 내 감정에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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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보낸 답신은 처음 메일에 대한 것.
두번째 메일을 먼저 읽었더라면...
그렇게 보내지 않았을 거예요.
지금은
이 부담없는 달콤한 꿈을..
누구에게도 방해받고 싶지 않아요.
머물지 못한다고 해서,
배회조차 할 수 없다는 건 아니니까요.
현실을 외면하는 겁장이라도..
꿈을 꿀 권리는 있는 거잖아요?
이미 말했지만,
내 마음은 망가졌어요.
여기저기...지뢰투성이.
혼자 헤메다니다 혼자 상처입지 말았으면 해요.
유틸블로그를 만들려다...어설프게 사감을 적어댄 것이 정말 낭패였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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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내가 보낸 이에 대한 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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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워요.
내가 **씨에게 들었던 여러 대답 가운데 비교적 가장 명료한 답변이었어요.
현실을 인식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일과 마치면 밤에 마지막으로 좀 긴 편지 한 통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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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내게 보여온 불분명한 행동들을 가지고 이런저런 말을 한다는 것이 지금에 와서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화를 낸다고 울부짖는다고 심장이 저미는 이 고통을 꺼내어 손에 쥐고 즐긴다 해도 그 어떤 의미가 있겠어요. 난 '증오의 대상과 감정을 근본적으로 잘못 상정'하는 길로 가고 싶진 않아요. 요컨대 나는 첫째로 당신에게 화를 내거나 원망을 한다해서 이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리라 생각하진 않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내 상처를 가지고 당신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는 않아요. 이 상처는 어디까지나 나의 영역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나조차도 믿기지 않는 얘기지만 그동안 나는 당신에 대한 '믿음'과 '신뢰'를 꽤나 많이 키워온 듯 싶습니다. 그저 이 우습고 개인적으로 비참한 현실이 믿고 싶지 않아서가 아닌 그냥 당신에 대한 그 '믿음'입니다. 당신이 어떠한 행동을 취했던 또 어떤 말을 해도 나름대로의 신념체계와 건전한 감정을 근거로 움직였을 것이란 것이죠. 이때문에 그동안 당신이 무응답으로 일관하는 때가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견뎌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이상의 이야기는 지금 비교적 담담함을 유지할 수 있는 배경설명이었어요. 하지만 앞으로 나는 수없이 많은 질곡의 시간을 보낼 것임은 분명하죠. 하지만 당당히 맞서 나갈 것이예요. 울고 싶을 땐 울고, 술로 잊고 싶을 땐 술로 노력해 보고, 또 다른 사람들과 떠들어 해소된다 하면 그리 할 것이고, 외롭다면 다른 여자를 만나보기도 하는 등의 자구책을 쓸 생각입니다. 허나 궁극적으로는 과정과 결과 모두 건전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거예요. 결코 상처 따위에 헛된 시간을 낭비하거나 굴복하진 않을겁니다.
어떤 면에서는 속시원하기도 합니다. 뒤늦게 하는 얘기지만 그동안 나의 '청춘 사업'과 관련하여 주위에서 나를 아껴주는 사람들과의 의견대립으로 많이 힘들었거든요. 이 문제를 두고도 이야기가 나올테지만 난 당신의 변호인으로 끝까지 임무를 다 할거예요. 이제 훌훌 털어버릴 수 있겠죠.
음. 이제 당신에게 섭섭한 부분을 말해볼까 해요. 우선 난 '관계'라는 것은 한 번 맺게 되면 특히 거기에 '사랑'이라는 감정이 개입한다면 그 잘못의 경중이 어느 일방에게 전가되는 것은 절대적으로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해요. 어떤 경우라 할지라도 이와 같은 나쁜 결과를 초래하게 된 것에는 당신의 잘못만 있었다고 여기진 않아요. 나 역시 절반 이상은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겠고, 일정 부분은 그리 되게끔 되어 있었다는 '운명론'도 살포시 끼울 수가 있겠지요.
헌데 당신은 분명 나와의 '관계'에서 깔금한 마무리를 보여주진 않았답니다. 내 마음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면 나에게 적극적인 의사표현을 했어야 마땅했어요. 그게 당신이 내게 가졌던 호의를 표현하는 가장 기본적인 '실천'이었을겁니다. 오늘 당신이 내게 준 위의 메일 내용이 그나마 가장 적극적인 소통의 매개체였다고 느낀다면 잘못인가요?
살다보면 맺고 끊음을 잘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미 간접적으로 표현했음에도 내가 못알아들은 것이었겠죠. 게다가 당신은 내가 쉽사리 짐작할 수 없는 '상처'들로 힘겨워 하는 사람 가운데 하나였죠. 그랬기에 더군다나 어렵게 어렵게 맺어온 나와의 관계를 무 자르듯 냉큼 잘라내는 것도 내가 이해하는 당신의 성격상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라 짐작하는데 맞나요. 그래도 내가 그동안 꽤 자주 그와 관련한 의견을 당신에게 피력한 바가 있었는데 왜 그리도 무심했던가요. 당신과의 소통에서 무엇보다도 아쉬웠던 점이죠.
그렇지만 당신도 힘들었겠죠. 내가 이렇게 그나마 침착할 수 있는 것은 당신과 있어왔던 텍스트보다는 컨텍스트를 중하게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그 '맥락'이라는 것의 진실여부를 초월해서라도 말입니다. 여하튼 이 점에 대해서는 당신도 앞으로 많이 고민을 해주었으면 해요. 이것이 내가 당신에게 섭섭했고 '상처'가 되었던 유일무이한 부분입니다. 나머지는 모두 결국 내 책임으로 규정해야 할 것들만 남은 셈이죠. 이에 대한 험난한 처리과정이 좀 무서워요.
저녁 식사를 하고 사람들과 어울려 잠시 놀다 들어왔어요. 월요일 하루가 또 이렇게 가는군요. 솔직히 얘기하면 이 편지 이틀에 나누어 쓰고 있어요. 어제 쓰기 시작한 것이 너무 피곤해서 쓰다 잠들었고 다시 오늘 저녁이 된 지금 이어서 쓰고 있지요. 담담했던 마음이 사실 아까 낮에 당신의 확인을 거치면서 다시 너울거리기 시작했어요. 억누르려 해도 심하게 두근대는 심장의 고동소리와 입속에 밥을 넣는 게 무척이나 고통스러워졌어요. 그러나 조금 지나면 나아질 겁니다. 그러다 말고 또 그러다 말고 또 그러다 말고 하는 나날이 아마 계속 되겠죠. 언제까지일지는 몰라도... 다시 말하지만 이를 두고 당신 탓을 할 생각 하나도 없어요.
이제는 한 두가지 당부만 하면 생각해뒀던 말은 거의 다 하는 것 같네요. 이후 또 치밀어오르는 것들은 이제 가슴으로 간직하거나 혼자서 해결하도록 할게요.
음.. 먼저 늘 걱정인 것은 내가 아는 당신은 정서적으로 매우 불안정한 상태인 경우가 꽤 자주 보였던 것이죠. 이는 오랜 고시준비 기간이 준 것이겠죠. 지금까지 그렇게 잘 버텨온 것도 사실 용하다는 생각도 들고....그래도 이 부분과 관련해서 당신 스스로의 상처와 감정을 잘 정리하고 순조롭게 운용할 수 있게 된다면 앞으로도 주위 사람들에게 더 많이 사랑받는 당신이 될 수 있을 것이라 믿어요.
그리고 두 번째 혼자만 상처받고 괴롭다는 생각은 금물이에요. 이 세상은 '관계의 그물'로 촘촘히 맺어져 있다는 것 잘 알겠죠. 나쁘게 생각할수록 악순환은 되풀이될겁니다. 누구나 다 마찬가지일 수 있다고 겸허하게 인정하는 당신이 되길 바래요.
세 번째 이건 정말 내가 관여해도 되는 소리인가 싶은데 내가 지금 느끼고 있는 바로는 그 '나사로'라는 사람이 당신이 만나고 있는 사람 아닌가요. 당신보다 연하로 기억되기도 하구요. 아까 마지막 당신의 확인성 메일에서 받았던 느낌은 다소 뭐라 할까. 어쩌다보니 만나게 되었고 그럭저럭 괜찮은 사람을 주위에 두고 싶다는 뭐 그런 느낌을 받았어요. 내 지금 느낌이 순전히 억측이었으면 좋겠지만 기왕 시작하게 된 것 정직한 감정을 쌓아 당신 말마따나 망가지고 지뢰밭 투성이인 당신의 마음을 진정으로 어루만져주었으면 좋겠어요. 난 결과적으로 실패한 짝사랑의 인물로 남게 되겠지만 정말로 정말로 그리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지난 1년 4개월 가량 당신을 알게 되고 만나면서 즐거운 데이트도 했으며 그 무엇보다도 당신으로 인해 다시 온전하지 못할지라도 쉽사리 오지 않을 것이라 여겼던 '사랑'이란 감정을 새록새록 쌓으며 이룩한 내재적 발전을 반추해보면 앞으로 내가 헤쳐나갈 상처와 고통과 맞바꾼다 해도 하나도 손색이 없을 것 같아요.
단 한 가지 정말로 궁금한 것은 나 그동안 대체로 진심으로 당신을 대했었는데... 당신은 어땠나요?
당신도 대체로 내게 진심이었으리라는 것은 우리의 지난 '소박한 세월'이 증명해주겠죠.
이제 이 물음도 '상상의 관계'속에 묻어둡시다. 아직 너무나 요원한 일이 되겠지만 여하튼 한층 더 의젓한 '내'가 있도록 만들어줬던 존재는 바로 당신이었어요. 이 점에 대해 다시금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어요.
많이 많이 참말로 많이 힘이 들 것 같아요. 그렇지만 이제 이런 부질없는 투정도 뒤로 하고 작별을 고해야 겠어요. '안녕'이라는 말 쉽게 하는 것이 아니라고 당신이 말했었고, 내 입으로 하지 않겠다 했던 것이 지난 늦겨울이네요. 이 약속을 위배하게 되어 미안하지만 지금이 가장 좋은 적기가 아닌지.
마지막으로 최근에 당신에게 몰래 혼자 다시 쓰게 된 두 통의 편지를 블로그로 다시 옮겨 두었던 것을 공개합니다. 사랑하지 않는다면 아무런 느낌도 없는 연애편지에 불과하겠지만 그래도 한때 당신의 주치의가 되겠다고 호언장담했던 나이니까 주치의로서 마지막 처방을 내리는 것이라 해두죠. 마음이 쓸쓸할 때 그리움이 온몸을 덮을 때 연애편지를 쓸 대상이 없어진다는 것은 참으로 적적한 일이네요.
http://blog.naver.com/s1682/70021128687
(연애편지 1 ; 2007년 8월 20일)
http://blog.naver.com/s1682/70021480953
(연애편지 2; 2007년 8월 29일)
그렇게도 내뱉게 되면 허공으로 사라질 뿐이라고 지난 겨울 '고백'당시에도 고시를 막치른 당신에게 부담주고 싶지 않아 하지 못했던 말이 하나 있었죠. 꿈에서도 그렸고 당신을 만나는 그 시간 속에서도 늘 입가를 맴돌던 말은 저 정직하고 푸른 하늘과 바람 속으로 이제 날려 보냅니다. 이제는 진실이 아닌 거짓이 되어버리겠죠.
"불온하지만 사랑했다. 지은아."
2007년 9월 10일 성철 적음
추신:
한 가지 부탁할 것이 있어요. 음.. 오해하지 않을 것이라 믿는데 내가 당신에게 받을 물건이 하나 있어요. 기억나요? 고시보기 직전 내가 신림동으로 배달했던 '글루바인' 그것을 담았던 '보온병'은 내게로 다시 와야 할 물건이라 생각되는데... 사실 받아봐야 별 의미도 없겠고 굳이 받고자 한다면 우편으로 받아도 되는 물건인 것을 이렇게 얘기하는 까닭은 한 번쯤 마지막으로 직접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끝내 버릴 수 없기 때문일 거예요. 얼굴봐야 서로 괴롭겠지만 지금 생각같아서는 그것을 돌려받는다는 명분을 빌어서라도 차분히 앉아 차 한잔 하는 시간이 있으면 내가 당신을 정리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이제는 내 방식을 강요하게 되어 미안하지만 내 부탁 들어주었으면 좋겠어요.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강요일겝니다. 참고로 내 일정을 말하면 요즘 배우는 것이 있어 평일에는 화요일, 목요일 저녁이 괜찮은 편이고 토요일도 괜찮네요. 다음 주까지는... 되도록 빨리 받으면 한결 가벼워질 것 같아요. 참..치사한 넘이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지만 그리 생각이 든다면 그리 생각해도 좋아요. 그렇다고 다른 선물들을 돌려달라는 이야기는 아니에요. 내가 당신에게 줬던 선물에는 모두 목적성 없는 서로의 즐거움이 담겨져 있었으니까... 그 밖의 모든 것들은 내게로 돌아올 물건이 아닌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당신의 소유이니 맡겨두죠.
요즘 참 세상이 험해서 문득 드는 생각인데 지은씨도 그런 생각 혹여나 하게 될까봐 노파심에서 말해요. 내가 당신을 만나고자 하는 것은 스토커 짓이나 무슨 신문지상에서 거론되는 '위협'등을 하기 위함이 아니예요. 행여나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았으면... 후훗. 나도 나름 social position이 있지 않겠어요. 앞으로 11월까지는 눈코뜰새 없이 계속 바빠질테니 가능하다면 빨리 만났으면 좋겠어요.
이제 정말 고리타분하고 썰렁한 연애편지의 대단원은 막을 내립니다. 그동안 강제든 자발적이었든간에 인기없는 부정기 출판물에 나의 유일한 '독자'가 되어주었던 것 감사해요.
해방입니다. 이제... 정말로... 하하핫.
전날 커피를 연이어 마신 탓인지 적당한 피로에도 불구하고 잠자리에서 뒤척이다 마침내 잠에 대한 욕심을 털어 버리고 앉았어요. 나는 보통 잠자리에서 이런저런 잡생각을 많이 하는 편인데 생각의 끝에는 예의 지은씨의 오달진 미소가 나에게 손짓하더군요. 뭐 그렇다고 당신 생각에 늘 몸을 떨며 지내는 것은 아니니 오해 없기를 바래요. 이런 말 한다고 새침해하진 않겠죠? 적당한 거리의 그리움이라고 할까. 이제는 비교적 긍정적인 감정운용을 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지은씨를 만나지 못했던 지난 5개월가량 많은 마음의 왜곡들이 자리 잡기도 했었지만 이제는 그러한 왜곡들은 적당히 털어 버릴 수 있게 되었지요. 이런 점에서는 매우 유익한 기간이었던 것 같아요. 시간이 흘러서도 그 4월 초의 만남이 우리의 마지막 영상으로 남게 된다면 그 기억이 다시 상처가 되어 두고두고 나를 향해 덤벼들지 모르겠지만 말이죠.
지난 편지에서는 내가 이 편지를 쓰게 된 동기에 대해 이야기를 했었죠. 그 편지를 쓰고 한 열흘 정도 경과하면서 들었던 생각인데 참말로 이 연애편지라는 텍스트만큼 수사학의 대표적인 산물도 없는 것 같아요. 전방위적인 설득의 과정, 설득의 최적의 조건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싶어요. 편지지에서부터 모든 감각을 총동원하여 배려하게 되죠. 물론 받는 사람이 보내는 사람에 대해 어떠한 감정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아무 것도 아닌 종이 쪼가리로 전락해 버릴 수도 있지만 나는 앞서 말한 것처럼 솔직히 털어놓자면 정말 이것으로 이른바 지은씨를 설득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것도 한 가지 이유랍니다. 물론 그밖에 다른 기능들도 아울러 있었죠. 무엇보다도 사람으로 인한 당신의 상처를 치유하는데 이 편지들이 어느 정도는 효과를 낼 수 있었으면 했고 또 내 감정을 정화하고 다독이는 것에도 실제적인 효력을 발휘하고 있어요. 설령 지은씨의 마음에 나라는 존재가 각인되지 못한다 하더라도 나라는 사람을 발판으로 당신이 다른 사람에게 다가갈 수 있는 힘을 줄 수 있다면 이 역시 아주 매력적인 작업이라는 것에 생각이 미쳤었죠. 내가 너무 계산적이란 느낌을 받을까요.
어쩌다보니 삼천포로 빠졌는데 아무튼 고백 이후 지난 반 년 여를 돌이켜보면 참 복잡한 길을 에돌아 온 기분이에요. 당신을 참 속상하게 하고 나에게 미안한 감정이 들게 만드는 말들도 많이 했던 것 같구요. 아마 난 이러한 길로 스스로 접어들 것이란 것을 진즉 예감하고 있었는지 모르지만 감정의 환승역을 거치지 않았다면 이와 같은 여물지 않지만 싱싱하게 익은 열매를 수확하지 못했을거라 생각해요. 때문에 지은씨에게 섭섭한 감정이 묻어나는 것도 사실이지만 오히려 고마움이 더 큰 까닭입니다. 그렇다고 이를 위해 인위적인 감정의 조정을 해왔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그저 걸어가 보니 여러 갈래의 길이 다시 하나로 합쳐졌기에 그 길을 가는 것 뿐이예요.
헌데 쓰다 보니 지난 첫 편지의 속편과 같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처음 시작할 때는 내 일상의 소소한 것들과 또 당신에 대한 기억과 이야기들을 다양하게 소곤거리고 싶었는데 서두가 길어진다는 느낌이네요. 앞으로는 이 점 반성하고 고쳐 나가도록 노력할게요.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나의 독자를 지루하게 만들어서는 안 되겠죠.
내 고리타분함에 거침없는 지은씨가 나를 꼬집을지도 모르지만 우리가 이 기회를 빌지 않는다면 언제 이런 진지하고 재미없는 이야기들을 하겠어요. 조금은 느리고 반복되는 이야기들이라 할지라도 넉넉한 마음으로 받아주었으면 좋겠어요. 이 대화가 우리의 삶을 좀 더 풍요롭게 만들어주었으면 하고 기원합니다.
지금 시각은 아침 6시 10분. 그새 날이 훤하게 밝았어요. 주말도 아닌 평일에 나 이제 어쩌죠? 당신은 지금 쿨쿨 즐거운 꿈의 세계에 있었으면 해요. 하루 만에 여름은 가을로 무자비하게 빠른 변신을 해버렸습니다.
2007년 8월 29일 수요일
성철
지은씨. 이렇게 불러보니 살아오면서 특정한 이성에게 '씨'라는 호칭을 이렇게 상용한 경험은 처음인 듯 싶네요. 물론 사회적 생활에 있어 다른 인적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에게 쓴 적이 있지만 지금 이야기하는 '지은씨'란 호칭은 그런 것들과는 달리 어느덧 내게 있어 매우 친근하고 자연스러운 것이 되어 버렸어요. 자주 쓰면 굳어지고 또 부패하기 마련인 것들이 많지만 나는 당신의 이름을 이렇게 부를 수 있는 지금이 아주 기분이 좋아요. 왜냐하면 앞날을 예측할 수는 없지만 언젠가는 이 이름을 다시는 부르지 못할 날이 있을 수 있다고 전제한다면 이렇게 마음껏 부를 수 있다는 것은 참말로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어요. 그렇네요.
짧지만 길었던 열흘간의 여름휴가를 마무리하는 밤입니다. 마땅히 시원한 곳에 가 더위를 식히는 사소함도 없었지만은 그동안 미처 챙기지 못했던 많은 것들을 생각하고 또 어떤 일관성을 만들어내는 사고를 일구어냈다는 점에서 유익한 기간이었어요. 내 자신뿐만 아니라 당신에 대해서도 많이 생각하게 되었구요. 그래서 나온 것이 이 편지입니다. 이전에도 블로그에 지은씨에게 부치지 않은 편지들을 쓴 적이 있었지만 오늘부터 종종 쓰게 될 편지들은 차곡차곡 모아 당신에게 보낼 생각을 하고 있어요. 물론 이것을 쓰고 보내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지요. 지은씨가 이제는 나라는 사람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야기 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특히 내가 마음을 둔 사람과 이야기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얼마 전 당신의 생일을 계기로 두 세통의 메일을 다시 받게 된 것을 제외하고는 넉 달이 넘도록 이야기를 하지 못하고 있어요. 처음에는 만나지 못하는 것에 대해 꽤나 힘들어 했었던 것 같아요. 지금도 물론 그런 것이 많이 사그라진 것은 아니지만 뭐라고 할까요. 이 기간이 이제는 쓸데없이 의미없는 감정의 낭비없이 이제 조금은 진중한 감정들만 운용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아. 이 말 조금은 오해가 생길 수 있을 것 같아 미리 말해두겠는데 내 편한대로 말하고 행한다는 이야기는 아니에요. 여전히 많은 부분에 있어 부족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고 앞에서 잠시 언급했던대로 순차적이 될지 아니면 일방적인 것이 될지 모르지만 지은씨와 실시간으로 이야기를 공유할 수 없다는 아쉬움을 이 편지로 대신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기인한 것이예요.
물론 나는 궁극적으로 시간이 우리 둘을 공모자로 만들어 주기를 희망하고 또한 많은 것에 있어 지은씨의 마음에 배치되는 나 혼자의 단독범행이 된다는 것은 상상하기 싫은 일이지만 '매개물'과 속물적 성취를 위한 '수단 및 도구'는 구분할 줄 안다고 생각해요. 나는 나의 이런 독백들이 '매개물'이 되었으면 바라지만 그 이상 어떤 다른 의도를 가지고 시작하는 것은 아니예요. 밷
이렇게 나를 위해서 또 당신을 위해 쓰여지는 시간들이 차분히 모아지는 것이 좋을 따름이에요. 헌데 나라고 어찌 세속적이지 않겠고 욕망이 없겠어요. 여튼 때로는 세속적이고 속물적인 것들로 편지를 채워나갈 수도 있겠고 지금처럼 담담한 마음으로 편하게 써 내려가는 날도 있을거라 생각해요.
언제까지 이 편지를 쓰게 될런지도 현재로서는 알 수 없고 얼마나 쓰게 될지도 지금은 알 수 없어요. 그리고 다소 촌스럽지만 편지지는 (요즘 유달리 클래식한 것이 좋아져서인지는 몰라도.) 일부러 하얀 사무용 괘지를 두 어개 1,000원 주고 샀어요. 예쁜 종이에 썼으면 좋겠지만 난 이상하게도 어제는 사무용괘지의 하얀 여백이 무척 마음에 들더군요. 그저 하얀 여백의 사무용 괘지에는 불필요한 포장을 하지 않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잠시 했구요.
오늘은 이 편지를 쓰게 된 동기에 대해 구구절절 이야기가 많았네요. 다소 어수선하지만 이 정도면 지은씨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 믿어요. 사람을 지치게 만드는 늦더위가 계속되고 있는데 당신은 더위에 지치지 않았는지. 곁에서 이 더위를 함께하며 더위를 식히기 위해 부채질해 줄 수 있었으면 좋을텐데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얼마 후 가을이 오면 지은아. 놀자.라고 하면 당신이 어색하지 않게 다시 받아 주었으면 좋겠어요.
밤 12시가 넘었음에도 내가 사는 이 집의 온도는 32도를 가리키고 있네요. 잠을 쉽게 청할 수 있게 될지 모르겠지만 이것저것 정리한 뒤부터 열심히 노력해봐야 겠어요. 당신이 그립거나 내 마음의 정화가 필요한 어느 날 밤 다시 편지할게요.
성철.
지은씨와의 관계에 대해
긴 시간은 아니지만 그동안 생각의 울타리를 수없이 왕복하며 넘나들면서 지은씨와의 관계에 대해 고민해 온 것들을 정리해봤어요. 이미 최근에 보냈던 편지 등을 통해 누차 의사표현을 한 바 있어 반복적인 것이 될 수도 있겠지만 참고 읽어주면 고맙겠어요.
1. 두려운 것
일련의 시간동안 지은씨와의 아무런 소통 없이 나 혼자 모든 것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을 겪고 있는 요즘입니다. 이 문제로 인해 지은씨에게 섭섭한 감정을 가져온 것도 사실이지만, 이미 주어진 현실이니 감내하고 있어요.
그나마 내가 지금 유일하게 판단의 준거로 삼고 있는 것은 지난 달 초 블로그에서 지은씨가 내게 들려주었던 이야기입니다. 많이 고민했던 부분은 ‘자신의 방법을 강요할 수밖에 없으니 조금만 더 양보하고 생각해 달라’고 했던 표현이 과연 어떤 의미였을까란 것이에요. 상식적으로는 내가 마음을 돌려 차분히 지은씨에 대한 마음을 정리해달라는 완곡한 요청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지난 1년간 지은씨를 만나오면서 내가 마음으로 느껴온 것에 따르면 절대 그렇게 판단할 수가 없네요. 텍스트를 100% 이해한 것은 아니지만 지은씨가 했던 말들을 난 ‘나에 대한 미안함, 관계를 이어나가는 것에 대한 당신의 불안감, 나에 대한 친절한 배려’ 등으로 해석하고 있답니다. 그리고 지은씨는 ‘아직 일어나지도 않을 이별의 슬픔에 대해 내게 언급할 필요는 없는 것은 아닐까’라고 말한 바 있고, 또한 ‘적어도 일어날 수 있는 위험이나 아픔의 강도에 대해서는 미리 설명을 해줘야 하고 선택의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했지요?
그동안 이러한 부분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생각했어요. 이 부분에 대해서 어느 정도 생각이 정리되었다 싶었을 때 지은씨에게 다시 유선으로 연락을 했지만 답은 침묵이었지요. 그래서 다시 혼란스러워진 것도 사실이에요.
때문에 무엇보다도 가장 두려운 사실은 내가 나에게 유리한 부분들만 최대한 좋은 방향으로 해석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짧지만 1년간 당신을 만나고 소통하면서 온몸으로 부딪혀 온 당신에 대한 내 ‘마음의 이해’ 모두가 잘못된 인식이어서 ‘여전히 소통은 유효하다’란 나의 생각이 당신을 비롯한 나까지 더 첨예한 벼랑 끝으로 몰고 가는 것은 아닐까라는 점입니다.
여하튼 오늘은 이 소통 없는 상황 속에서의 근원적인 두려움은 우선 배제하고 이야기를 하고 있고 또 이어가려고 하니 이 점 양해해주었음 해요.
2. 괴로운 것
솔직하게 고백하면 정체성을 잃고 방황하던 20대 중후반 이후로 요즘이 나로서는 견디기 힘든 시절입니다. 다만 당신과의 관계에서 오는 것이라는 점에서는 매우 소중하고 각별한 시기라 생각하고 있어요. 그러나 예전에 내가 어렸을 때 다쳤던 이야기를 해준 적이 있듯이 육체적 고통뿐만 아니라 자라오면서 갖가지 정신적 고통을 겪어오면서 난 ‘고통’과 ‘상처’에 매우 강한 사람이 되었어요. 지난 1년간 우리 둘을 굳이 정의하자면 난 ‘외유내강’형의 사람, 당신은 ‘외강내유’형의 사람이라는 것. 이렇게 굳이 일반화 한다는 것이 좀 우습지만 지은씨를 생각할 때면 난 이 생각을 해요.
‘사랑’이라는 감정!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한 마법이면서도 무서운 것이기도 하죠. 지은씨도 이 점을 명백히 인식하고 있는 사람이겠죠?
그런데 누차 이야기를 한 것이지만 난 이 감정을 표현하고 운용하는데 그리 능숙하지 못합니다. 연애경험이 일천해서일까요? 후훗. 그래서 지은씨에게 감정을 적극적으로 표현해야 할 때, 그 감정을 아끼고 보이지 않게 담아두어야 할 때를 구분하지 못하고 마구잡이로 덤벼든 적이 많지요. 이런 것이 지금 당신을 많이 힘들게 하고 있다는 점 나라고 왜 모르겠어요. 게다가 나는 글이라도 쓰면서 감정을 씻어내지만 당신은 아무런 감정의 여과장치없이 온몸으로 그 고통을 감내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미치면 정말 죄스럽기 그지없어요. 그런 생각에 미칠 때마다 소주병이 하나씩 사라지곤 한답니다.
최근 일정한 기간 동안 지속되었던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거행된 나의 의도하진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악랄한 행위들(?)과 더불어 치기어리지만 내 마음을 몰라주는 당신에 대한 섭섭함, 침묵에 대한 약간의 미움, 그리고 내 자체적인 성급함 등이 이것을 더 가속화시켰을 것이 분명하겠죠. 요즘은 마음이나 머리가 맑지 못한 때가 많지만 오늘같이 마음이나 머리에 탁한 기운이 어느 정도 가셨을 때는 이 점이 선명하게 떠올라요. 아마도 탁하게 되는 까닭도 원치 않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당신을 부담감이란 깊숙한 코너로 자꾸 몰아가는 현실이 괴로워서일 겁니다.
하지만 이제 이런 괴로움을 다시 반복하는 일은 하지 않으려고 해요. 내가 괴로운 것이 지은씨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 자신에게 있음을 여실히 깨닫고 있으니까요. 내가 정말로 견딜 수 없게 괴로웠던 것은 바로 이런 것이 아니었나 싶어요. 나는 정작 강한 사람이면서 약한 당신을 못살게 굴고 있다는 점! 당신의 침묵은 그래서 시작된 것인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듭니다.
3. 배워온 것
쳇... 먼저 입을 살짝 내밀고 시작해야 할 것 같네요. 나이도 내가 세 살이나 많은데 나만 지은씨에게 많은 것을 배워왔고, 나는 별다른 것을 주지 못한 현실이 억울해요.(농담이고.) 30대에 접어들고 나서 내게 닥쳐온 현실적 변화는 석사졸업과 박사과정 진학이었죠. 그 시절 사실 난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하기위해 생활에 쫓기고 있었어요. 뭐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만 그래서 지극히 현실적인 삶을 영위해 온 탓인지 30대라는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인식하고 사유해 본적이 없었어요. 그런데 작년 당신을 만나게 되면서 난 책이나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얻을 수 없었던 그야말로 이루 말할 수 없는 내적 발전을 거듭해 왔어요.
누구나 그렇겠지만 지난 젊은 날 나는 현실이란 거대한 바위에 짓눌려 힘겹게 살아오면서 ‘사람’에 대한 깊은 관심과 애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아무 것도 실천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타인의 삶에 대해서 피상적인 이해와 형식적인 친절만 보였지 기실 내 자신의 상처만 보듬고 안타까워하는 삶을 살았어요. 정작 뚜껑을 열어보면 누구에게도 관심이 없었고, 애정이 있었다하더라도 가식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대화’라는 것도 몰랐고, ‘소통’이란 것에 대한 이해도 부재했죠. 그랬던 나에게 지은씨는 이에 대한 이해뿐만 아니라 실천까지 할 수 있도록 도와준 존재였고, 든든한 버팀목이었어요.
그래서 나도 내가 배운 것을 당신과 함께 나누고 싶었어요. 난 이렇게 많은 것을 얻었음에도 내가 당신에게 줄 수 있는 기회도 자칫 없을까봐 당황스러운 요즘입니다.
4. 선택한 것
당신이 ‘관계’란 것의 위험성에 대해 미리 설명해주고 선택할 수 있는 시간을 준 것에 대해서 난 무척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요. 물론 적지 않은 시간동안 마음의 혼란이 있었던 때문인지 스스로 절대 그러지 않기로 해놓고 지은씨에게 미운 말과 섭섭한 말을 내뱉은 것에 대해서도 사과할게요. 내가 흔들린 책임을 당신에게 전가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싶어요. 한편 최근의 난 ‘감정의 과잉’이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심하게 빠져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생각해보면 ‘관계’란 것의 균일한 흐름을 위해서는 내 감정도 기꺼이 표현해야 한다는 생각이 그런 행동을 이끌어냈던 것 같아요. 이것의 중요성을 간과하는 것은 아니지만 너무 때이른 생각이지는 않을까... 당신도 나와 같이 이것에 대해 고민할 준비가 되어 있을 때 그때 같이해도 늦지 않은 듯 싶네요.
여튼 내 감정과 이성, 그리고 지난 1년간의 지은씨와 쌓아온 관계를 모두 깊이 고려해서 일련의 최종결정을 내렸어요. ‘미련’이나 ‘집착’ 그리고 ‘감정의 미화’와 같은 독소를 내포하고 있지는 않을까도 역시 많이 생각했고요. 그 결과 나 아직 당신을 당당하게 좋아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에요. 살다보면 이 감정이 변질되거나 희석될 수도 있겠죠. 지은씨가 ‘사랑’에 대해서 가장 두려워하는 부분이지도 않을까 싶어요. 그러나 난 당신 말처럼 ‘끝이 뻔히 보이는 결말’이라고 단정하고 싶은 생각 추호도 없어요. 당신도 ‘인간사에 100% 확실한 미래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고 언급하지 않았던가요?
그래도 두렵다면 ‘나의 마음’과 ‘우리의 관계’를 믿고 눈 질끈 한 번 감아봅시다. 우리가 어렸을 적 놀이공원에 가서 청룡열차를 탈 때 눈을 질끈 감고 탄 적이 있잖아요? 타기 전에는 무척이나 두렵고 망설여지는 일이 될 수도 있지만 타고나서 예기치 않은 슬픔이나 상처가 아닌 예기치 않은 기쁨이나 즐거움이란 새로운 진경을 우리에게 안겨다 줄 수도 있지 않을까요? 너무나 단순한 비유일는지는 몰라도 우리가 어렸을 때보다도 더 용기가 없어서는 안 되지 않을까 싶어요. (난 무서워서 바이크도 못타는 사람인데 바이크도 멋지게 타는 사람이....떼끼~)
또 누가 그럽디다. “실패만 하다보면 마음이 어떻게 변해갈까. 오랫동안 처박아놓은 굳어진 냉동식품같이 될까? 그래도...어린아이가 넘어져서 무릎이 까져도 싱글싱글 웃으며 코흘리면서 얼음땡을 하듯이 그렇게 살려고 하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 아닐까?”라구요.
난 이제 당신에게 선언합니다. 우리의 여행은 끝났어요. 그러나 여행은 끝이 아닙니다. 사람이 여행을 했으면 어디 국내여행만 할 수 있나요? 기왕 견문을 넓히기로 한 것 우리 세계일주도 해 봅시다. 엉터리 무면허지만 가이드 겸 여행자 구 성철씨, 그리고 세계 일주에 없어서는 안 될 동반여행자 박 지은씨!! 세계일주가 어디 쉽겠습니까? 가다 지치면 다시 국내로 들어와 재충전하고 다시 힘이 생기면 또 나가고 그러기를 반복하다 보면 우리는 어느덧 베테랑 여행자로 변모해 있지 않을까요?
초행길이라 많은 사전조사와 경비조달도 필요할 것이라 생각됩니다. 사전조사와 경비조달은 나한테 맡겨두길 바래요. 요즘 지은씨가 새로운 일을 시작한 눈치네요. 많이 바쁜 것 같으니까 출발일은 당신이 정해주었으면 해요. 국내여행에서 좀 고생을 했으니까 난 당분간 현지정보에 어둡거나 경비초과 문제 등으로 즐거운 여행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여지를 사전 방지하기 위한 연구를 할 테니까요. 그래도 혹여나 가지도 않을 여행인데 무단 취소하거나 미안해서 못가겠다고 말 못하고 그럼 안 됩니다요. 여행이란 것 나 혼자만 신나서 떠날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요. 같이 갈 의향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살짜쿵 신호를 주면 대머리 세이렌 ‘등대’는 변함없이 깜빡깜빡 불을 비출 겁니다. 밤길에 예쁜 지은씨 넘어지면 안 되니까...
마지막으로 두려움, 괴로움, 배움, 선택함 네 가지 마음의 편지가 당신과 다시금 ‘대화’와 ‘소통’할 수 있는 계기로 이어졌으면 하는 마음을 담아 봅니다. 침묵이 얼마나 무서운지 재차 깨닫게 되는 요즘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런 내 ‘자유의지’가 결국 지은씨의 ‘자유의지’에 반하는 불온한 것이 된다면 그것만큼 끔찍한 일은 없게 되길 바라며 각필합니다. 이것이 정말 당신이 원하는 것과 배치되는 것이라면 나 착하게 당신 말을 들으렵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내 몫으로 남겨두죠.
추신 : 난 이제 다시는 당신의 신호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스스로 흔들리는 짓 따윈 하지 않을 거에요. 설사 아무런 신호가 없다 할지라도 내색하지도 않을 것이고 저 신라시대 박제상 아내와 같이 돌부처가 되는 망부석이 될지언정 이 무기력하고 처참한 생활은 하지 않을 겁니다. 변덕이란 감정의 괴물이 두려워 지은씨와 나만의 관계에 더 이상 세상의 잣대를 들이대며 합리화하는 우를 범하지는 않을 것이구요. 그리고 당신이 시작하려고 하는 일 구체적으로 알 수 없지만 잘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은씨가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이 되고 당신의 삶을 더 기름지게 하는 풍요로운 일이 되었으면 하고 기도합니다.
분침이 몸을 움찔하며 떠는 이 순간 당신은 어떤 생각을 하고 무엇을 하고 있나요?
我想你.
2007년 5월 27일 일요일 새벽이 밝아오는 시각에.
답백하게 생겼되 결코 담백하지 않지만 담백하려고 노력하는 성철 적음
동봉한 물건들에 대해
동봉한 물건들(이메일 책자(관계의 방점)와 포장 속에 든 추억록)에 대해서 설명할까 합니다. 이것을 보내려는 이유에 대해서 깊이 고민했습니다. 혹시나 불편한 마음일지 모르는 지은씨의 발목을 잡기 위해 유치한 수를 쓰는 것은 아닐까? 더구나 지난 달 초 당신을 찾아갔을 때 완성한 지 얼마 안 된 ‘관계의 방점’을 주려고 했다가 무척 혼난 경험이 있어 더 마음이 편치 않았어요.
지금도 역시 시기가 매우 좋지 못하고 내 마음이 깊이 표현된 물건들이라 자칫 지은씨가 나와의 ‘관계’를 설정하는데 오히려 더 큰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되기도 해요. 많이 생각하다가 이 물건들은 도리어 이러한 점을 감안해서 보내게 되었어요. 무슨 말인지 언뜻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그 정도 의미로 받아들여주면 좋겠어요. 훗날 그 의미를 저절로 알게 되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지만요.
동봉한 詩에 대해
내 블로그에 지은씨가 종종 들어오는지 난 여전히 모르지만 내가 습작한 詩에 대해서 오해를 할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어 이를 불식하기 위함입니다. ‘분홍빛상실’, ‘빨래’, ‘흔해빠진 습관’, 마지막으로 ‘여행의 종말’(블로그에는 아직 올라가지 않았지만...) 이 4편의 온전하지 못한 시는 분명 당신과의 ‘관계’속에서 파생되어 나온 것들이에요. 특히 ‘분홍빛상실’과 ‘여행의 종말’은 직접적으로 지은씨와 관련이 있지만 이 시의 내용에 대해서 텍스트가 주는 이미지를 그대로 받아들여 당신을 내가 미워하거나 조롱하려는 의도로 쓴 것으로 오해하지 않았으면 해요. 분홍빛 상실의 경우 지난 달 봄이 무르익던 어느 오후 날씨에 취해 적었던 것이고, 여행의 종말은 지은씨와의 관계를 정리하는 것이 우리를 위한 최선은 아닐까라는 충분히 있을 수 있는 두려움이 엄습하던 어느 저녁, 어디까지나 상상력에 의지해서 썼던 글이에요. 물론 당신과의 관계가 산산이 부서지면 정말 저런 참담한 심정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한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글에 사용된 어휘들은 어디까지나 반어적인 의미가 강하고 그 안에 오히려 나의 강력한 ‘희망’, ‘염원’, ‘긍정’을 불어넣은 것이 더 진실에 가까워요. 그리고 습작을 하게 된 개인적인 동기는 어느 순간부터 글이 제대로 써지지 않았던 제 직업적인 애로사항 때문에 작년부터 시를 다시 읽기 시작한 탓도 있고요.
무엇보다도 중시했던 것은 내 감정과 여전히 부족한 내 자신에 대한 각성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였어요. 고작 화려하지도 않은 몇몇 어휘들과 데데한 문장으로 내가 당신과 쌓아온 소중한 감정들과 내게는 변함없이 소중한 당신이란 존재를 스스로 기만하거나 조롱하려는 의도가 있었다면 결코 공개 따위는 하지 않았을 것이고 애초에 쓰지도 않았을 겁니다. 그동안 이 점을 놓치고 있던 것 같아 뒤늦게 이야기를 하는 것이구요. 그래도 역시 지은씨와의 소중한 ‘관계’가 아니었다면 세상에 나올 수 없었던 산물이기 때문에 당신이 쓴 것이라 해도 무방할 듯 싶어요. 그래서 ‘성철이가 지은 詩’란 표현을 말미에 기재해서 동봉합니다.
역시나 이 4편의 詩 가 나와의 관계설정을 하는 것에는 무관한 것이라 여겨주었으면 하고 바랍니다.
2007년 5월 28일 일요일
주말 내내 한 가지 문제에만 천착해 있었지만 솔직히 고백하자면 그저 멍해서 어찌해야 할지 아무런 답도 나오지 않는데 애쓰는 모습이었어. 이대로라면 일정한 시일이 지난다해도 달라질 것은 없겠다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저 지속적으로 망설여왔던 부분에 대해서 좀 더 선명해지는 느낌이었달까? 그래서 다시 편지를 쓴다.
오늘은 가급적이면 당신의 생각이나 느낌까지 주제넘게 챙기는 말은 하지 않겠어. 그건 어떻게 보면 현재의 나를 속이는 일이고 또 당신에게 실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야. 그래서 그저 지금 내 생각과 감정에 대해서만 얘기해볼까 해. 결국 형편없는 남자에 불과하다고 생각해주는 것이 당신에게도 가장 현명한 길이 될지도 모르겠네.
지난 달 중순 이후 당신에게 퀵으로 보냈던 편지를 통해 내가 당신에게 잘못한 부분에 대해 명확하게 사과했었어. 그리고 복잡하게 얽힌 갈등의 타래를 풀고 싶어하는 의지도 단호히 표현했던 것 같아. 그리고 최근 며칠 전까지 내가 당신에게 가진 감정의 진정성과 당신에 대해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역량을 다해 마음을 써온 것이 사실이야. 하지만 내가 당신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건 한계가 있는 것 같아.
당신이 사랑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 불편하고 힘들더라도 사랑하지 않는 상황이 안락하지만 외줄타기와 같은 사랑을 하는 상황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것에는 나도 일면 동의해. 그렇지만 그건 사실이기도 하고 거짓이기도 한 것 같아. 인간이란 것은 아무리 몸부림쳐도 거기에 빠지게 될 수 밖에 없는 것이겠지. 당신이 사랑을 선택하든 선택하지 않든 또 나를 선택하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는 어디까지나 당신 몫이고 당신의 권리이니까 더이상 무슨 설득을 한다는 것은 의미가 없을 듯 싶어. 이젠 당신에게 내가 어떤 의미인지, 아무리 생각해봐도 '감정의 사기'를 쳐왔던 존재에 불과한 것인지 재확인하는 작업밖에는 남지 않은 듯 싶어.
아래에서도 요청하는 바가 있겠지만 이 부분만큼은 적어도 가장 진실되게 얘기해 줄 것이라고 생각해. 난 당신이 적어도 '사랑'앞에서는 진실만을 얘기할 것이라고 추호도 의심치 않으니까 말야.
난 여전히 당신과의 '짧은 관계'보다는 '오랜 관계'를 꿈꾼다. 따라서 당신이 불안해하는 현실과 미래...까지 대신 생각해 보고 그 부분에 대해서 양보할 수 있는 것이 어디까지인가 고민하기도 했어. 여튼 이번처럼 많은 생각을 했다는 것은 쉽게 환영할 수 없는 일종의 기회였다고 할까? 가능하다면 나와 당신을 합쳐 우리 모두에게 좋은 계기가 되었다고 여겨지기도 했어.
그러나 당신과 다시 연락을 취하려고 했던 목요일부터는 이 한 달간의 모든 노력들이 물거품이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내 연락에 침묵한다는 것이 일종의 당신의 대답일꺼란 생각을 해. 당신도 많은 것을 생각하고 배려할 수 있는 성인이고 나를 일방적으로 무시하지 않는다고 가정한다면 신중하게 생각하고 결정을 해왔을거란 생각이 들어.
그런데 당신이 취한 행동들에 대해서는 나 상당히 불만을 가지고 있어. 굳이 '관계'라는 개념에 대한 재설명이 없더라도 우리의 지난 1년을 일방적으로 당신이 모든 걸 결정하는 것은 모순이라고 생각해. 지난 일정한 시간동안 분명 나와 '대화'하는 과정이 결여되었고 내가 모든 것을 판단해 양보해주고 생각해 줄 것을 강요하는 것은 분명히 당신 잘못이야. 당신 입장에서는 4월 9일 내게 쓴 블로그 글을 통해 당신의 입장을 어느 정도 전달했다고 판단할지 모르겠지만 그 글은 분명 많은 오해와 착각을 불러 일으킬 수 있는 것이었고, 지금 직면한 상황에서는 그것에 대해 좀 더 확신을 갖게 되는 것 같아.
물론 지금 내가 하는 말이 당신이 내게 잘못한 것을 것을 두고 내가 당신에게 잘못한 것을 상쇄하려는 일명 '물타기'발언은 절대 아니야. 난 내가 잘못한 것에 대해 명확히 인식하고 있는 상황이고 또 지금 이런 편지를 보내는 행위 또한 일종의 가증스러운 폭력이라는 점에서 죄스러운 마음이야. 하지만 초입에 언급했다시피 난 당신과의 오랜관계를 꿈꾼다는 강력한 희망이 아직 나를 많이 사로잡고 있기에 하고 싶은 말은 꼭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인위적이지만 이번 기회를 통해 해소할 수 있는 것들은 모두 털고 가고 싶기 때문이야. 그래야 말끔하게 당신과의 관계를 재정립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
마음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에 대한 불만도 없고 그것을 인정할 용의도 얼마든지 가지고 있어. 그렇지만 우리 둘의 관계에 있어서 당신은 일정한 시간동안 굉장히 이기적이고 자기보호적인 측면으로 일관해오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무엇 때문일까라는 생각도 해봤고 어느정도 추측도 하지만 그것은 내가 관여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기 때문에 생략하겠어.
그저 내가 바라는 것은 한 가지야. 간접적이든 직접적이든 누차 이 부분에 대해 이야기를 했던 것 같은데 당신은 이 부분에 대해 철저히 침묵하고 있다는 것이 지금 우리의 현실이야.
다른 건 차치하더라도 난 관계를 지속하게 됨으로써 얻게 되는 상처에 대해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있어. 이 부분에 대해 선택의 기회를 준다고 한 것이 과연 어떤 의미였는지? 또 난 당신이 우리의 관계를 잘라내려고 한다고 여기진 않는데 이것은 나 혼자만의 착각인 것인지? 갑자기 머리 속이 온통 하얘지는 느낌이라 무엇이 또 있지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지만 여튼 이런 부분에 대해 구체적인 설명을 난 필요로 해.
이게 과연 당신이 나를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것인지도 묻고 싶어. 혹여나 그저 피하고 침묵으로 일관하면 내가 당신을 미워하고 또 갖가지 오해를 하면서 떠날 것이라 생각했다면 그건 당신의 잘못이야. 그동안 나라는 사람을 봐왔다면 좀 더 직설적이고 구체적인 행동으로 나를 대해줘야 할 것 같아. 당신이 할 수 있는 가장 솔직한 행동을 해왔다 하더라도 전화를 피하고 무응답으로 나를 대하는 것은 결국 내가 내 자신에 대해 아무런 해결책도 제시할 수 없는 상황으로 몰고간다고는 생각 안해봤어? 나로 하여금 당신을 미워하게 하면 내가 좀 더 마음이 편할 것이라고 그게 나를 위하는 것이라고 생각한 것은 설마 아니겠지?
어차피 우리가 살아온 세월이 달랐고 '사람'과 '사랑'을 대하는 패러다임도 다른데 그 구체적인 행동양식에까지 관여한다는 것은 어찌보면 상당히 개그스러운 발상이긴 한데 지금 난 당신에게 더 많은 표현을 듣고 싶어하고 있어. 내가 지금까지 당신에게 직간접적으로 들어온 이야기만을 가지고는 지금의 이 갈등과 난국을 어떻게 돌파해 나갈지 암담하기 그지없어. 답을 아예 말해주랴라는 식으로 내가 굉장히 치기어린 행동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당신도 지난 과거 누군가에게 그런 상처를 받은 적이 있다면 그런 과정으로 인해 고통 속에 살아왔다면 내가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잘 알 것이라고 생각해.
때문에 오늘 난 내가 어떤 형편없는 모습으로 당신에게 비춰진다해도 직접적으로 얘기할 수 밖에 없어. 얘기했다시피 당신이 우리란 관계의 끝을 원하든 원하지 않든 한 번만 더 용기를 내주었으면 해. 말하기 쉽지 않더라도 그래주었으면 해. 이제 나는 일정한 시간 약속없이 기다리는 것도 솔직히 너무 힘이 들어.
방식은 직접 만나서 나를 보고 똑똑하게 말해주는 것이었으면 해. 그리고 직접적인 만남 이외에 간접적인 편지는 난 원치 않아. 이는 지난 블로그 글로 너무 많은 힘을 소진했기 때문이야. 솔직히 말하면 또 그러긴 싫어. 난 지금까지 생산적으로 소모해 온 시간들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해.
그렇게 한다면 내가 앞으로 당신과의 관계에서 비교적 올바른 관계를 설정해 나갈 수 있을 것 같아. 이건 나 혼자 학문을 연구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야. 학문도 세상과 소통해야 발전할 수 있는 법인데 사랑이란 위중한 병에 걸린 나 혼자 모든 것을 해결한다는 것은 솔직히 힘에 부쳐. 당신이 도와주었으면 하고 바란다.
앞으로 일주일 안으로 만났으면 좋겠어. 다음주는 근무시간을 제외한 모든 시간을 풀로 비워둘 생각이니까 당신이 편한 시간을 정해 주었으면 해. 매우 강압적이라 생각이 들텐데 미안하지만 내가 현재 연락도 되지 않는 당신에게 취할 수 있는 방법이라곤 겨우 이런 것 뿐이야.
하필 우리가 만난 지 딱 일 년째 되는 날 당신이 말했던 것처럼 이런 불필요한 생채기를 내야 할까 싶기도 하지만 난 결과가 어찌됐든간에 우리 둘 사이를 확실히 규정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래. 사람의 감정이라는 것이 섣불리 규정한다고 될 문제는 아니겠지만 지금 우리에겐 그것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는 상황이라 난 생각해.
오늘은 감정이 격한 탓인지 내가 도통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나도 좀 헷갈리는데 미안해. 반복적인 말도 있고 장황스럽겠지만 그냥 텍스트 그대로 받아들여주면 좋겠어. 만약 끝내 당신이 나와 만나는 것을 거부하겠다면 내가 현재 가지고 있는 모든 의혹과 감정들은 내가 모두 차곡차곡 모아 어딘가로 폐기해 버려야 하겠지만 지금 이런 상황으로는 도저히 자신이 없어.
불민한 나로 인해 또 한번 실망하고 마음이 아프더라도 한 번만 더 솔직하게 당신 감정을 내게 말해주었으면 해. 이제는 내가 더 가증스러워진 것 같네. 우리의 더 긴 미래를 꿈꾼다는 내가 결국 하는 얘기라고는 역시 가까운 미래의 나를 보호하려는 말 뿐이니...
일과도 바쁠텐데 예고없는 편지로 또 당신 마음을 심란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지난 한 달간 '우리'란 관계의 현실적 위치를 놓치게 되면서 '사랑'이라는 이름의 화려한 포장아래 당신에게 내가 얼마나 많은 짐을 지우고 있었던 것인가를 깨닫게 되어 다시금 펜을 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당신 입장에서는 얼마나 어이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고, 또 내 입장에서는 당신에게 얼마나 큰 실례를 범하고 있었던가를 명확히 인식하게 된 지금 이순간 솔직히 이 편지를 쓰는 것이 너무나 고치하고 낯을 들고 당신을 쳐다보기가 민망할 정도입니다.
알몸을 내보인 것처럼 어떻게 말을 풀어나가야 할지도 순간 망설여집니다. 그래도 최소한 당신에게 어떠한 형태로든 지금까지의 잘못된 상황을 사과해야 할 필요성, 그리고 당신의 짐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기 위해서는 이 편지가 매우 요긴하다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난 2월말 당신에게 고백을 한 직후까지만 하더라도 당신과 나의 관계, 즉 '우리'의 위치에 대해 어느정도는 확실히 인지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당시 "가급적이면 당신을 부축하여 같이 걷고 싶다."는 말로 증명하고 싶습니다. 그때만 하더라도 당신과의 관계 설정에서 나는 매우 능동적이고 주체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당신의 마음을 전부라고 할 순 없지만 어느 정도는 이해한다 생각했으니까요. 그런데 그 이후 당신이 많이 힘든 상황 속에 내 자신을 함께 매몰하면서 또 그것이 전혀 허황된 착각으로 번지면서 내가 서 있어야 할 곳을 그야말로 망각한 한 달을 보낸 것 같습니다. 즉 지은과 성철의 관계는 지은=성철이 아닌 지은<성철의 등식이 확실함에도 불구하고 지은=성철이 되길 바라는 섣부른 착각과 욕심으로 점철된 한 달이었던 것입니다.
처음 당신을 만났을 때 당신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던 이유를 굳이 따지자면면 '벼랑 끝에 서 있는 듯한 모습'이 좋았던 까닭입니다. 우습겠지만 그 모습이 좋았고 또 그곳에서 내가 당신을 구해내고 싶었달까? 물론 그밖의 더 많은 매력들을 뒤에 발견했지만요. 여튼 우격다짐 형태로 지속적인 당신과의 만남을 이끌어냈고 '관계'란 것의 만점을 100점으로 한다면 한 10점 정도 온 상태에서 고백을 했고, 아직도 가야할 길이 멀고 마음의 준비도 되어 있지 않은 상대란 것을 뻔히 알면서 고백 당시의 마음가짐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실망을 거듭 안겨주는 행태를 일삼으면서 그야말로 사랑이라는 이름의 '폭력'을 휘둘러 온 것입니다. 기실 어떤 말로도 최근 한달의 상황을 변명할 수도 없는 것 같습니다. 당신의 회사 앞으로 불쑥 찾아갔던 것은 나름 당신에게 내가 위로가 되는 존재이길 바라는 상황에 걸맞지 않는 몸부림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내 잘못된 일이었다는 것은 깨달았지만 헤어지면서까지 난 어설픈 감상에 사로잡혀 마치 나를 알아주지 못하는 당신에게 문제가 있는 양 당신을 일깨워주고 싶은 '선물(?)'을 주려고까지 한 행위가 당신에게는 얼마나 코미디 아닌 코미디로 다가왔을까요? 이후로도 정말 내 중심을 잃고 내가 마땅히 우뚝 서 있어야 할 곳을 간과한 기간이었습니다.
당신 블로그의 글과 지난 주일 전화로 당신이 내게 한 말들 모두가 진심이었다는 것을 이제서야 깨닫습니다. 그저 나를 피하려고 할 뿐이란 어처구니 없는 착각 속에서 게다가 편지까지 써가며 당신을 곡해하고 형해화했으니 얼마나 가소로웠겠습니까? 힘들여 말을 해줘도 깨닫지 못하는 바보 천치를 어떻게 설득해야 하나 고민하는 당신 모습이 이제는 안봐도 눈에 선합니다. 당신에게 '나'라는 존재, 말처럼 '타임'이거나 '타임'에서 아주 약간 나아간 정도에 불과한데 난 그걸 핑계라고 도리어 반문까지 했으니... 당신이 정말 힘들고 어렵게 얘기한 것이라는 것 이제야 깨닫습니다. 당신이 더 많이 생각해고 양보해달라는 의미도 이제는 알겠구요. 또 '사랑'이라는 위중한 병에 앞도뒤도 보지 못하는 사람을 그대로 두지 못하는 당신의 날 아끼는 마음을 비로소 이해한 것이 채 이틀이 되지 않습니다.
이때문에 지난 한 달간은 정말로 당신에게 고개를 들 수 없는 부끄러운 시간이었습니다. 정말로 미안하고 후안무치로밖에 달리 말할 수 없는 일 아니겠습니까?
그래도 당신에게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고 싶습니다.
한편 당신이 답답해하고 속상했던 시간들 어찌 보상해야 할지 눈앞이 캄캄합니다. 무책임하고 한심한 성철이가 그동안 일반 다른 남자들과 다를 바 없이 느껴졌을테고 고등학교 1학년보다도 못하게 느꼈을 것 역시 자명한 일입니다. 게다가 되려 날 걱정하게까지 만들었으니..... 부끄럽고 미안하다는 말을 수십 번을 해도 모자랍니다.
이토록 염치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나는 당신에게 한 번의 기회를 줄 수 없는지 부탁하고 싶습니다. 사실 이대로 당신이 우리가 만들어 온 공간 속에서 나를 내쳐도 할 말은 없지만 사랑 혹은 관계에도 시행착오가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해준다면 또 의도적인 잘못이 아닌 순수한 취지였음을 조금이라도 이해해 준다면 고백 당시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물론 이렇게 몇 마디 사과의 말로 돌아갈 수 있는 쉬운 일 아님을 잘 알고 있습니다. 다만 당신에게 염치없지만 내세울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당신에 대한 진심어린 제 마음입니다. 예전에도 언급한 바 있지만 전 최근의 희극 아닌 희극같은 한 달을 제외하고는 당신에 대해 '입장의 동일함'을 어기려 한 적이 없습니다. 늘 진지하게 고민해왔고 이제까지의 모든 내 사고방식과 고정관념을 버리고 당신과 함께 길을 걸으며 대화하고 싶었다고 한 것은 거짓이 아닙니다.
이미 날 내치기로 또 돌이키기에는 내게 너무 많은 실망을 했다고 한다면...휴...기꺼이 그 고통 내가 감내하겠습니다. 그동안 당신에게 안겨준 폭력의 대가는 분명 필요한 법이니까요. 하지만 아직 날 조금이라도 아끼는 마음이 존재한다면 혹은 나에게 진정한 선택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면 예전의 정상적인 관계의 위치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물론 돌아간다 해도 당신은 앞으로도 별로 달라질 것은 없다고 말할런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난 당신의 가시를 이대로 돋게 만들고 갈 수는 없습니다. 당신은 여전히 내게 있어 세상에 맞서 가시 4개 뿐인 여리디여린 하나뿐인 소중한 '꽃'입니다. 신중하고 더 많이 생각해 본 바 이는 지금까지 당신에게 쏟아온 내 열정이 아까워서도 또 어설픈 자존심의 발로도 아닙니다. 있는 그대로의 당신을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관계가 지속됨으로 발생할 수 있는 추후의 험난한 과정들은 기꺼이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어쩌다보니 나의 사랑을 받게 됐지만 그렇다고 지금까지의 내 열정을 봐서 마음을 열어달라는 말도 무의미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우리의 관계를 이쯤에서 단호하게 끊을 생각이 아니라면 날 조금만 더 지켜봐 줄 순 없는지요? 지금까지 본의 아니게 나라는 존재를 '타임'으로 봤다 해도 그것을 한낱 여자의 이기심 따위로 치부할 생각도 없습니다. 나 역시 부단한 이기심을 부려왔고 당신이 흔쾌히 받아줬으니 그 점에서는 어디까지나 동등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만 견고하게 닫힌 그 마음의 빗장을 살짝 엇걸어주기만 해준다면 고마울 것 같습니다. 전쟁은 내가 치르겠습니다. 지은씨는 관찰만 하다 내 편이 되어도 좋겠다 싶을 때 편이 되어 주세요. 만약 같은 편으로 승산이 없다 판단될 때 신호를 주면 그때는 더이상의 투정도 부리지 않고 나뭇가지를 건네고 떠나겠습니다. 작년 7월에도 말했던 것처럼 어설픈 2군 투수가 던지는 아리랑 볼을 또 봐달라는 어이없는 부탁을 다시 한 번 하는 겁니다.
진심으로 부탁합니다. 다시 한번 동의없이 내 위치를 벗어나는 행동을 한다면 가차없이 퇴출을 시키되 당장은 남자가 아니더라도 한 사람으로서 지켜봐 주었으면 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욕심입니다. 큰 잘못을 저질렀음에도 또 이런 간곡한 부탁까지 하는 것은 지은씨와의 여행 여기에서 마치고 싶지 않다는 그리고 그만큼 당신과의 인연을 소중히 생각한다는 내 순수한 마음이라 이해해줬으면 합니다.
'사랑'이라는 것... 사전상에는 인간의 근원적인 감정으로 교제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라 정의하고 있고, '첨밀밀'이란 영화에서는 과거의 애틋한 추억을 더듬어 가는 모습으로 '이터널 선샤인'같은 영화에서는 기억은 지웠지만 감정까지는 지울 수 없었다는 것으로 묘사되며, 그 밖의 많은 문학작품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표출되고 있습니다. 당신을 만나오면서 역시 '사랑'이란 것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내 자신에게 던져왔습니다. 다양한 모습으로 그려지고 표현될 수 있겠지만 난 사랑은 결국 '현실'의 반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또 영원한 것이라 믿지는 않지만 현실에서 실존하는 것이라 믿습니다. 그렇기에 난 인터넷상의 '루주'를 만나는 것도 '정서현'도 아닌 바로 지은을 만나는 것이 현실의 반영이라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최선을 다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것이 우리가 삶을 대하는 기본적인 예의가 아닐까 싶습니다. 또한 사랑으로 인해 행복해질 것이라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데데한 현실 속에서의 고통을 나누어 가질 수 있다는 그 자체로서의 의미에 좀 더 무게를 두고 싶습니다.
당신이 지녀온 사랑에 대한 상처! 온몸으로 부딪혀 관통해 온 시간들! 내가 아직은 모든 것을 감싸줄 수 있는 깜냥도 없을 뿐더러 자격조차 갖추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아직은 당신과 난만상의하는 관계이고 싶습니다. 많은 대화와 표현으로 노력하다보면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언젠가는 눈빛만으로도 많은 것을 알 수 있는 내밀한 관계도 성립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합니다만 지금은 그런 단계를 감히 내다볼 생각은 하지 않겠습니다. 이와같은 이야기를 하는 내 의도를 당신은 충분히 이해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잠시 얘기가 비켜갔지만 오늘 이 편지는 어디까지나 내가 당신에게 범한 커다란 잘못을 사죄하고 용서를 구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 편지에 대한 신호를 언제까지 해달라는 말도 하지 않겠습니다. 솔직히 내심 많이 괴롭고 힘들었는데 많은 것들을 다시 깨닫게 되어 마음이 한결 편해졌습니다. 나보다 더한 고민과 어려움을 겪었을 당신이 내 마음을 받아들여 당신 역시 편해질 수 있었으면 합니다. 이 편지가 모쪼록 긍정적인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합니다. 힘든 시기 나까지 지은씨를 괴롭게 만들었던 점 정말 미안하게 생각해요.
당신과 나의 관계가 '너희'로 끝나버리는 것이 아닌 '우리'로 완만하더라도 발전할 수 있게 되길 정말 염치없지만 다시금 소망해 봅니다. 앞으로 한결 단단해진 모습으로 당당히 당신과 '관계'의 복잡한 끈을 풀어나가는 지혜를 보여주고 싶지만 지금은 일단 모든 것을 현명한 당신에게 맡기겠습니다. 그때까지 저는 좀 더 반성하고 내 자신을 채찍질하면서 든든한 모습을 갖추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각필합니다.
2007년 4월 18일 밤
추신: 되도록이면 일과에 많은 피해가 없도록 점심시간에 맞춰 보낼 생각입니다. 그래도 불편함을 끼칠테지만 그만큼 중요하게 생각되어 서두른 것이라 양해해주길 바래요. 점심 맛있게 먹었으면 좋겠구요! 다음에 당신 얼굴을 보게 된다면 정말 많이 창피할 듯 싶어. 그리고 당신이 이대로 화가 풀리지 않는 것은 상상하기도 싫어.
(퀵서비스가 제대로 도착한 것인지 확인할 수 없어 블로그에도 편지를 올립니다.)
서울에 가려고 플랫폼에 앉아 있는데 열차가 내 등뒤에서 출발해 버렸다.
사실 3번 플랫폼인데 4번 플랫폼을 향해 앉아 있었으니 놓치는 게 당연하다.
번잡한 개찰구를 다시 빠져나와 자동발매기 앞에서
반은 정신이 나간 상태로 쉽사리 생기지 않는 잔여석 찾기 버튼을 눌러댔다.
수십 분 후 서울은 다시 돌아갈 수 있게 되었지만
내 마음은 갈 곳을 잃었다.
당신에게..........
당신 스스로 가증스럽게 생각한다면
온통 내 말과 행동 속에서 나의 나쁜 점만 끄집어 내려는 것 이제 중단해줘.
이젠 만나서 이야기할 기회도 주지 않으려 하는 당신이 솔직히 미워죽겠어.
내가 느끼기엔 당신은 내게서 도망치려고만 해.
그래서 일부러 '우리' 가슴에 더욱 날카로운 비수를 들이대는 말을
서슴없이 하는 거겠지.
근데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어.
나에게 선택의 기회를 주지도 않으면서 이런 가중처벌을 내리는 것은
당신 자신이나 나에게 아무런 득이 되질 않잖아.
(지금은 당신에게 이 방법이 최선인지는 몰라도...)
그렇게 해서라도 '관계'를 잘라내고 싶어하는
당신의 비통한 심정을 이해못하는 것도 아냐.
나보고 뭘 이해하냐고 했지?
어쩌면 내가 아무것도 이해 못하는 바보일 수도 있겠지만 난 당신을 존중해.
당신의 생각, 사상 모두....
하지만 우리는 한낱 인간에 불과하잖아.
우리가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면
난 적어도 우리가 보내온 시간들과 감정들에 대한 '예의'가 필요하다 생각해.
왜 내가 이것에 집착할까?
난 나를 통해서 당신이 지금까지와는 보다 더 나아질 수 있기를 바래.
하지만 나 때문에 당신이 마음의 문을 더 꼭꼭 닫아버리는 일은 하지 않았으면 해.
말했지만 난 지금 나보다 당신이 중요해.
당신이 이로 인해 더 깊은 상처의 나락으로 빠져드는 거 결코 원하지 않거든.
때문에 난 당신과의 '대화'에 목매는 것이야.
만일 이렇게 내가 행동하지 않는 것이 당신 마음을 치유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이라면 더이상 하지 않을께.
근데 나 한편으로
당신이 이렇게 비겁하게 '우리'를 '응시'하지 않고 쉽게(?) 해결하려는 거
굉장히 화가 많이 나.
모든 것이 내 어처구니없는 내 잘못에서 기인한 것이겠지만...
그래서 내가 고통스러운 것은 내가 견딜 수 있겠지만
당신 자신을 스스로 고통 속으로 밀어넣는 일 따위는 다시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물론 나 혼자만의 엄청난 착각에서 오는 생각이라면
이 모든 말들이 무의미하겠지만서도...)
지금은 힘들어도 미래의 당신을 위해서 좀 더 당당하게 삶에 정면대응해주길 바래.
한 번만이라도 부탁해.
우리에게 더이상 이런 식으로 '사형선고'를 내리려 하지 말아줘.
'강요'하지만 말고 선택의 기회를 준다고 했으면
내 얘길 한 번만이라도 들어주었으면 해.
(이거 항소하는 거야..농담도 재미없게 하지?)
그리고 난 정말 죽어도 당신에게 '안녕'이라고 말할 순 없어.
예전에 당신이 '안녕'이란 말 쉽게 하지 말라고 했을 때
난 죽을 때까지 이 말은 하지 않을꺼라
다짐하고 또 다짐했어.
그렇게 말해놓고 먼저 이러면 반칙이야.
이젠 당신한테 혼나는 것도 싫고 의도와는 다르게 사태가 악화되어 가는 것도 무서워서 연락을 먼저 하진 못할거야.
그러나 난 이제 당신의 그런 불분명한 태도 용납할 수 없어.
나의 이런 말들이 혼자만의 환상과 착각에서 기인하는 것이라
명확히 설명을 하던가
아니면 당신이 추구하는 지금의 '강요'방법이
당신 자신을 속이지 않고, 버리지도 않는 것이며
당신이란 존재를 되찾는 일이라 말한다면
내가 당신의 바통을 이어받아
평생동안 '사랑'을 저주하며 질곡 속에서 살아간다 해도 받아들일께.
다시 말하지만 난 당신을 존중해.
그래도 이 부분만큼은 절대 양보할 수 없어.
당신에게는 무척이나 힘들고 어려운 일이 될 것이란 거 잘 알아.
하지만
이번 기회를 계기로
날 짓밟고서라도 당신 자신을 버리지 않고 찾을 수 있게 되기를 바래.
그러기 위해선 나와 당당히 싸워 날 제압해주었으면 해.
이것이 당신이 내게 쓴 편지에 대한 답이자
내 분명한 입장이고 부탁이야.
마지막으로 이건 만났을 때 얘기하려 했던 많은 말들 중 하나인데 살짝 할께.
유치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어린왕자'의 문구를 잠시 재인용할께.
"내 꽃은 너무나 연약하거든. 그리고 그 꽃은 너무나 순진해.
세상에 맞서 자신을 보호할 것이라고는 가시 4개 뿐이거든.
나는 내 꽃에 대해 책임이 있어."
당신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이처럼 난 당신에게 이미 길들여졌어.
그래서 난 '당신'과 '나' 그리고 '우리'를 책임져야 해. 그뿐이야.
난 당신을 믿어! 답 기다릴께.
어리석은 대머리 세이렌이......
지은씨에게
지은씨를 만난지도 벌써 7개월이 되었군요. 한해의 끝자락을 잡으면서 늘상 하게 되는 말이지만 "세월이 쏜살같죠?" 뜬금없는 소포에 약간 놀랄지도 모르겠네요. 그렇지만 주소는 지은씨에게 직접 받아간 것이니 충격을 받아 쓰러질 것이란 생각은 하지 않겠습니다.
성탄절이 다가와 당초 카드를 준비했었지만 양적으로 부족한 감이 있을 것 같아 이렇게 직접 펜을 들게 되었으니 줄곧 악필이 될 이 편지를 곱게 봐주었으면 고맙겠네요.
우선 이 편지는 몇 가지 목적을 담고 있답니다. 첫 번째는 편지보다 먼저 보게 될 소포 안의 성탄절 기념 내용물(?)에 대한 일종의 설명서 역할을 하려고 해요. 다음으로는 지은씨를 알게 된 이후 성철이의 소회를 담을 생각입니다. 가급적이면 간략하게 쓸 생각이니 (잘 될까?) 문의사항이 생기면 유선으로 문의해 주셔요.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 선물에 대한 설명을 할께요. 일단 이번 내용물들의 컨셉은 고시 막바지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지은씨를 위해 ‘독서실 테마’로 잡았어요. 번잡스럽지만 하나하나 설명할께요.
1. 이미 있을 확률이 높겠지만 독서실에서 따뜻하게 사용하라고 무릎담요 2. 컴퓨터에 USB처럼 꽂아 식은 커피나 차를 따뜻하게 다시 데워 마실 수 있는 머그컵 3. 이에 딸린 차류(茶類) 4. 출출할 때 챙겨 드시라고 약간의 간식류 5. 그리고 시험 치를 때 썼으면 해서 준비한 컴퓨터용 싸인펜과 필기구들 6. 언젠가 블로그에서 사진 찍는 걸 좋아하는 듯한 느낌을 받아 준비한 싸구려 젤리카메라 7. 내가 출장에서 돌아온 날 같이 커피 마셨던 곳에서 지은씨가 좋아하는 잡지라고 했던 것이 생각나 산 패션잡지(정확히 기억이 안나 제대로 산 건지 몰라요?) ; 빠뜨리지 않고 얘기한 것이 맞겠죠?
아참! 화첩도 하나 넣었어요. 예전에 지은씨 생일선물로 준비했던 것인데 그땐 감히 줄 엄두가 안났는데 지금은 내일 당장 6층으로 부서이동도 해야겠고 역시 이것으로 지은씨가 한 번 더 웃을 수 있었으면 해서요.
사실 선물들에 대한 자랑을 늘어놓고자 이 글을 쓰는 건 절대 아니에요. 오히려 우려되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함입니다. 지금껏 지은씨를 한 다섯 번 정도 만났던 것 같은데 우연치 않게 거의 빠짐없이 선물을 하게 된 것 같은데 모두 비교적 적은 횟수의 만남과 그 나름대로의 사연(첫 번째 만남, 생일, 해외출장 등)에서 기인한 것이었지 겨우 선물 따위로 지은씨 마음을 얻어 보고자 했던 것이 아니라는 거에요. 이 점은 굳이 설명 안 해도 알아주리라 믿어요. 그리고 내가 돈이 넘쳐나 선물을 하는 것도 아니라는 점이에요. 작년 여름 이전에 지은씨를 만났더라면 어쩌면 아주 작은 선물조차 힘들었을테고 오히려 제가 경제적인 활동이 일정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때 지은씨를 만나게 된 것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뭐 이런 얘기들은 모두 나이가 들어 노파심만 늘어가기 때문이라 이해해줬음 좋겠어요. 흑~
어쨌든 찌그러진 생활의 고시준비생이 곧 다가오는 시험 전에 잠시라도 웃음을 찾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즐겁게 준비한 것이니 반송같은 나쁜 짓은(?) 하지 말아요.
최대한 간략하게 쓰겠다고 공언을 해놓고 점차 글이 길어지고 있어서 서서히 불안해지네요. 돌이켜 생각해 보면 지은씨랑 이만큼 친해지게 된 것은 참 감사한 일이란 생각이 들어요. 인연을 만들기 싫다는 사람을 반 협박(?)하여 여기까지 모시고 왔는데 즐거운 여행이 되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난 이 여행이 더 즐거워지기 시작했는데 동반자가 대충 구경하고 집에 돌아갔으면 하는 마음인 건 아닌지? ^^;
뭐 사람 마음이란 게 간사하다는 것 진즉 간파하고 있던 것이지만 제 마음 속에서는 삐죽삐죽 나오는 욕심장이들을 두더지 잡듯 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닌 요즘이에요. 온통 한 곳만 쳐다보느라 나에 대해 궁금한 것들이 별로 없다는 것, 또한 공부 얘기 아니면 내가 다니는 사무실 얘기가 주된 화제일 수 밖에 없는 현실들이 못내 아쉬운 것은 역시나 한가한 사람의 유치한 발상인 듯 싶어요. 그래도 지은씨는 평소 세상에 대한 울분을 토하기 바빴던 나로 하여금 좀 더 긍정적일 수 있게 해준 점 매우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요. 이것은 성탄 기념 선물들 따위로 보상할 수도 없을테니 앞으로 마음으로 두고두고 갚을 생각이에요.
지은씨에겐 항상 스트레스인 말이겠지만 편지를 받아볼 무렵이면 시험이 채 두 달이 남지 않을 것 같네요. 역시나 상투적인 말이지만 우선은 과정과 결과 모두 좋았으면 하고 설사 그리 되지 않을지언정 과정이 소중했노라 하는 기간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난 요즘 가끔 시험보고 지은씨가 지난 초여름처럼 실종되면 어쩌나 하는 부질없는 걱정을 한답니다.)
새벽이 되면 항상 하고 싶은 말이 많아지게 마련이지만 여러 가지 이유에서 첫 번째 편지는 여기에서 마치는 것이 좋을 것 같네요. 오늘 하지 못한 얘기들은 앞으로 무한한 A/S를 통해 이루어졌음 좋겠어요. 이브 날에 짧더라도 데이트신청하고 싶지만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바쁘기도 한 듯 싶고 또 한 차례 지은씨가 그냥 좌시한 적도 있기에 삐진 척 할래요.
성탄절과 새해 인사는 별도로 나눌 것이라 생각되기 때문에 생략할래요. 짧게 인사하죠.
“짧은 여행 즐거우십니까? 언제 스케쥴이 바뀔지 모르는 우리들의 여행 계속 즐거웠으면 해요.”
2006년 12월 중순 어느 밤.
성철이가.
追伸 : 할 말 없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