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깊어가는 그 시점에 추적추적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비가 내릴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음에도 이 새삼스러운 의아함은 뭐람. 요즘은 적당히 방심하고 긴장한 채 살고 있다. 의미없이 내뱉어지는 말 속에 진실이 내포되어 있기 마련이지만, 허구적 사실일 뿐이다. 빗방울이 조금씩 굵어지면 날이 밝아올까, 아니면 날이 밝아오면 더 약해질까. 또 모르지. 언제나 삶은 사소함에 요동치면서도 적요의 짙은 색깔이 깃들여져 있다. 멀리 보이는 가로등에 빗방울이 묻어나는 것이 보인다.물론 농담(弄談)이다. 그와 함께 오늘이라는 농담(濃淡)이 자라난다.
죽은 이선생님이 이런 얘기를 했었다.
숲속에 마른 열매 하나가 툭 떨어졌다. 나무 밑에 있던 여우가 그 소리에 깜짝 놀라 도망치기 시작했다. 멀리서 호랑이가 그 여우를 보았다. 꾀보 여우가 저렇게 다급하게 뛸 때는 분명 굉장한 위험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호랑이도 뛰기 시작했다. 호랑이의 뛰는 모습을 숲속 동물들이 보았다. 산중호걸인 호랑이가 저렇게 도망을 칠 정도면 굉장한 천지지변이거나 외계인의 출현이다. 그래서 숲속의 모든 동물이 다 뛰었다. 온 숲이 뒤집혀졌고 숲은 그 숲이 생긴 이래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
삶도 그런 것이다. 어이없고 하찮은 우연이 삶을 이끌어간다. 그러니 뜻을 캐내려고 애쓰지 마라. 삶은 농담인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울고 있는 순간까지도 라디오는 60년대가 가고 70년대가 온다는 얘기를 떠들어대고 있었다. 나는 그런 구획의 의미를 애써 생각해보았다. 만약 그 옛날 기원을 정할 때 조금 앞이나 뒤로 잡았다면(물론 지극히 사소한 이유로) 70년대는 이미 왔거나 혹은 아직 오지 않았다. 시간의 구분은 사물의 뜻을 공유하고 분류하기 위해 고안한 일종의 장치일 뿐이다. 절대시간이란 것은 없다. 그런데 70년대가 오면 새로운 삶이 시작되기라도 할 듯이 떠들어대는 저 사람들. 70년대라고? 새로운 농담인가?
은희경, 새의 선물, pp.404-405. (서울: 문학동네, 1995)
회기동 단편선 - 이상한 목
그냥이란 말로 대신한다
그냥 그랬다
그냥 그렇다
그냥 그럴 것이다
그냥 그냥 그냥...
대신 말한다 그냥
생각해 보니 수많은 강박관념들이 이 봄을 산란하게 만든다. 농약처럼 치명적인 풍경이다. 허나 대체로 레토릭에 불과하다.
보충: 한 가지 새벽에 쓴 글 중에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 어차피 논쟁이 아닌 싸움으로 전이되었고, 설득하려는 것을 포기하는 것이라면 막말을 좀 들었다고 해서 상대의 화법을 가지고 예의 운운했던 것은 내 스스로 지나치게 봉건적이고 전근대적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여하튼 남자란 성별이나 나이의 많고적음에 의지하는 것은 매우 저열한 행위이다. 우리의 관계는 호의 어쩌구 하며 어물쩡 넘어갈 성숙한 관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글을 쓰는 이상 앞으로 또 이런 일이 있겠지만, 그때는 논리에는 논리로, 정서에는 정서로 마주하면 된다.
간혹 사람 사이의 관계에 있어 오버페이스 하는 경우가 발생하고는 한다. 그래서 오해가 발생하고, 인간관계가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아마 내가 이런 오류를 범했었나 보다.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가다 자신은 다른 보통의 여성과 다르다고 하길래, 난 그런 생각은 위험하지 않겠느냐 했다. 인간적호의가 없었다면 이런 얘기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를 두고 그는 나라고 특정하진 않았지만 단일민족 컴플렉스, "인간은 평등하다.", "어딜 가도 다 비슷하다", "거기서 거기다"는 보편론에 기대어 타인의 개인생활/정신영역을 침범하는 행동을 했다고 자신의 블로그에서 언급했다. 전후사정이 어찌 되었든, 이에 대해 50%인정한다. 나는 적어도 생산적인 대화와 논쟁이 가능한 관계라 생각했는데, 결과적으로 상대방이 그렇게 받아들이지 못했으니 말이다. 먼저 충분히 배려하고 존중하지 못했으니 설사 情이라 하였다 하더라도 이는 전적으로 내 잘못이다. 그러나 그 역시 얼치기 다원주의에 기대어 타인의 진심이 담긴 호의를 곡해하지 않았나. 그 스스로도 나에게 그랬다. 자신이 최근에 다른 일로 예민했으니, 곧 아무 생각없는 자기로 돌아갈 것이라고... 난 이 말을 서로를 좀 더 알아가기 위한 사적인 겸양의 표현이라 생각했다. 나 역시 그렇게 화답하려 했던 것이고... 마냥 어리다고 치부하기에는 실체적 삶의 경험에 대한 진지한 고민도 결핍되었고, 상대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도 갖추지 못한 사람을 대할 때면 당혹스럽다. 타인과 소통하려는 의지와 열정이 있는 청춘일거라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철저히 귀를 닫고 논리와 전제의 기본개념조차 혼동하면서 자신의 일천한 경험에 의거 사회적 수사학만 난무한 사람인 것 같아 나도 더 이상 어찌 대응해야 할 지 모르겠다. 자신 스스로 퍽 다른 자아를 가지고 있다고 여기면서 사적인 영역에서조차 자신의 글에 책임을 지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글을 쓸 자격이 없다. 이것은 '사회적' 권고이니, 사적영역을 침범한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글을 쓰려는 사람이 문장이 얼마나 날카로운 흉기인지 왜 모르는가. 이렇게 휘두르는 것을 원했던 거니?
한 일주일 채 지나지 않았던가
내 자신도 전혀 알지 못했던
찰나이고, 순간이며 한토막을 우연히 포착하였다
너무나 짧은 것이라 퍽이나 아쉽지만
일상의 중요한 한대목을 발견한 것 같은 기분이다
침소봉대라 하더라도 자꾸만 미소를 머금게 된다
내가 블로그를 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삶의 소소한 이야기들을 적고, 또 생각을 정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하나를 댄다면 이 블로그를 통해 알게 된 이웃들이나 오프라인에서 이미 알고 있는 지인들의 블로그에 가끔 마실 다니는 쏠쏠한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개중에는 공부 얘기만 주로 하는 사람도 있고, 또 자기가 현재 하는 일 얘기만 하는 사람도 있고, 이것저것 섞어서 하는 사람도 있고 다양하다. 대부분 나만큼 사적인 이야기를 과도하게 하는 경우는 드물지만, 한 차례씩 휙 돌면서 소식을 접할 때마다 그들의 삶을 보는 거 같아 즐겁다. 공부 이야기에, 일 이야기에, 그 어떤 것이라도 설사 그들이 의도하지 않았다 할 지라도 그네들의 근황이 녹아 있다. 가끔 내 블로그를 보면서 자극이 된다고 이야기 해주는 사람들이 있다. 나 역시 이 사람들의 블로그를 다니면서 사람냄새를 맡는다. 그리고 이를 통해 삶은 치열하게 살아야 하지만, 때로는 그렇게까지 치열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도 느낀다. 트위터와 페이스북이 유행이라지만 여전히 이 곳을 지키는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블로그는 디지털 속의 아날로그라 해도 좋을 듯 싶다.
한편, 동네 지역도서관에 쉬엄쉬엄 다니고 있다. 기말 숙제 하나 던지고, 하나를 더 해야 하는데 자꾸 논문 쪽으로 신경이 쓰인다. 방학동안 수정해서 지도교수한테 보내주기로 해서 그런 것도 있고 어차피 앞으로 1~2년은 모든 일상이 논문으로 굴러갈 것이기 때문이다. 기왕 공부를 한 이상 적어도 부끄럽지 않은 논문은 쓰고 싶은 것이 사람 욕심이다. 문제의식이 있더라도 늘 문제는 논점을 이끌어 갈 스토리가 문제다. 스토리가 조금만 독창적이면, 술술 쓸 수 있을 것 같은데 영감이 떠오를 것 같으면서 영 부실하다. 여전히 공부의 수준이 천박해서 그런 것일테지만, 그래도 어느 날 그래~이거다 하며 혼자 미친듯이 웃으며 "보고있나? 학문의 대가들."이라 외치며 스스로를 천재의 반열에 올려놓는 뿌잉뿌잉 하의실종쇼 쯤은 한 번 벌이고 싶다.
날짜를 헤아려 보니 벌써 집에 온 지도 18일째가 되었다. 그동안 정말 푹 쉬었다. 게다가 날 반가워 해주는 많은 친구와 선후배들을 만났다. 다만 주로 단체로 만나다 보니 내밀한 이야기보다는 조금은 분산된 형태의 이야기들이 주된 것이었다는 단점이 있었지만, 그래도 얼굴만 봐도 즐거운 친구들을 만나서 좋았다. 이제 거진 다 보고 몇몇 아직 채 만나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 그네들을 만나는 와중에 한국에서의 체류는 이렇게 저물고 말겠지만, 여튼 지난 해보다 더 많은 충전이 된 것은 사실이다. 역시 사람은 언제나 소중하면서도 소중하지 않다. 내가 애정을 드러내며, 내게 애정을 드러내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많은 위안이 되었고, 또한 세월 혹은 사람의 변화 혹은 이해 타산을 느낄 수 밖에 없는 경우에는 실망보다는 안타까움을 금치 않을 수 없었다. 모두가 다 팍팍한 삶에서 기인한 것이니 탓하는 것도 어렵다. 나 역시 나 바쁘다는 이유로 그네들 일상의 변화를, 혹은 근심과 걱정을 채 살피지 못했던 것은 사실이니까 말이다. 그럼에도 모두 고맙고 반갑다. 다시 일 년을 시작해야 하고, 그리고 내 블로그에 마실 오지 않는 친구들이 대다수라 모를 것이지만... 난 여전히 내 자신에 주로 빠져 있어 지인들의 일상과 슬픔을 다 챙기지 못하지만, 훗날 이 웬수는 반드시 갚을 것이다.
사진을 찾으려 검색하다 보니 이 보도가 3년이 넘은 통계라는 걸 알게 되었다. 3년이 지났다고 한국사회 평범한 이들의 양태가 별반 달라진 게 있을까 싶다. 이 사진을 처음 보게 해 준 그네의 포스팅에서는 이렇게 적고 있다. "즉각적으로 웃음이 터져 나왔지만, 곧 이것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것인가 깨달았다."고... 그리고 이어서 "요즘 유행하는 말로, 나는 인생을 글로 배웠다. 문제가 생겼을 때, 문제를 둘러싼 상황과 구조를 파악할 수는 있지만, 해결할 힘이 없다. 행동이 없다. 걱정이 너무 많아서 미래가 두렵다. 인생이 무섭다."고 했다.
이 표현에 지극히 동감한다. 물론 내가 그네보다 좀 더 살았다는 단순한 이유 하나로 난 즉각 웃음이 터지진 않았다. 그러나 나도 그네처럼 인생의 많은 부분을 글로 배운 축에 속한다. 내가 적극 옹호할 수 있는 것은 역시나 내가 겪어 온 세대이고, 간접적으로는 자라오면서 부모님의 모습에서 이런 것들을 읽어왔다. 하지만 역으로 글로 인생을 쓸 수 있기 때문에 우리가 비슷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서로 알릴 수 있다는 점에서는 글이 주는 효용성을 변호하고 싶다. '뿌리깊은 나무'의 영향이 아닐까도 싶다만. 여튼 어떤 의미에서는 처절한 회한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에도 동의한다. 그렇지만 후회하지 않는 삶이 있을 수 있을까. 아마도 후회없이 살았다고 주문을 외우거나 착각을 하고 사는 것이 대부분이지 않을까 싶다.
http://www.82cook.com/entiz/read.php?bn=15&num=1130627&page=4
역시 같은 블로그에서 링크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다시 이렇게 적고 있다. "여자를 한없이 사랑스러운 시선으로 보는 것, 그게 뭔지 나는 안다. 그게 나의 시세포와 혈관에 스며들어 있다는 것이 무엇을 말하는지 나는 안다. 정확하게 그 느낌을 안다. 그래서 '서로가 서로에게 반하지도 않았고 반했던 내가 미쳤구나 라는 생각이 표정에 드러나고 행동에 묻어나고 서로에게 기대만 많은 이방인들처럼 멀어지고만 있는 것 같아요'를 상상해 보니 숨이 탁 막히고 미칠 것 같았다."
여성의 관점을 잘 표현한 것 같다. 난 여성의 관점을 글로도 배웠고, 인생으로도 배워가고 있다. 여성들은 대체로 사랑에서 행복을 느끼는 비중이 거의 압도적이지 않을까 싶다. 남성들도 사랑에서 행복을 느끼지만, 여성처럼 그 비율이 높지는 않을 것 같다. 남성들이 중요시하는 가치들을 사랑과 동일한 선상에서 놓고 잘 조절할 수 있다면, 또 여성들 역시 조금은 그 기대감을 버리고 바라볼 수 있다면 어떨까란 생각을 해 본적이 있다. 링크의 글처럼 서로가 서로를 끝없이 경외하며 살아갈 수 있다면 일상의 수많은 다툼도 슬기롭게 풀리지 않을까. 그런데 이게 말이 쉽지, 보통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생각된다.
무의미할 수도 있겠지만 난 글로 다짐한다.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만약 어떤 사람을 만나게 된다면 함께 좀 더 많은 걸 극복하고 같이 누렸으면 좋겠다고.
(창가에 불어오는 가을바람은 텅 빈 마음을 스쳐 가는데, 차가워진 벽에 기대어 멀리 밝아오는 새벽하늘 바라보아요.) 보고 싶지만 가까이 갈 수 없어. 이제는 그대 곁을 떠나가야 해. 외로웠었던 내 메마른 그 두 눈에 크고 따뜻한 사랑을 주었던. 그대 곁을 이제 떠나는 것을 후회할지도 모르지만. 그댈 사랑하기 때문이야. 그대만을 사랑하는 걸. 잊을 수는 없지만 슬픔속에 그댈 지워야만 해.근래의 내 새벽 행동패턴을 굳이 언어로 표현한다면 위 괄호 안의 가사가 딱이다. 누군가를 애써 지워야 할 일은 없다는 것은 그나마 다행인 일이어야 하는 건가 싶다. 하지만 정말 행복하지 않은 사실은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낄 수 없다는 것에 있을 터. 굳이 사랑을 하지 않아도 좋다. 그저 절대고독에 매몰되지 않고 내 마음의 온유를 조금이라도 되찾을 수 있다면, 계절이 빛과 같은 속도로 깊어져 가는 것에 이렇게 섭섭함을 표시하지는 않을 것이다.
길을 오가다 혹은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게 되는 사람들을 스쳐 지나 보낸 뒤에는 종종 따뜻한 인사 한 마디라도 건넬 걸 하는 아쉬움이 든다. 그래서 홀로 가을에 미리 작별의 인사를 건넨다. 잘 가~ 나도 잘 있을게라고. 그리고 내년에는 좀 더 일찍 눈치 채겠노라고.
http://www.zzacnoon.net/155
2. 胡颖이란 친구도 오늘 만났다. 역시 루구후에서 만난 친구다. 그러고 보면 루구후에서 꽤나 많은 사람들과 조우했다. 항저우에서 일을 시작한 지 반 개월 되었다는데, 히치하이킹과 무전여행을 즐기던 친구이다. 같이 온 林强이란 친구와 루구후에서 만났었다. 이 친구와는 항상 필담을 나누었다. 왜냐하면 그녀는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오늘도 필담을 나누었다. 진즉 수화를 배워두지 않았던 것이 아쉽다. 하지만 이대로도 충분하다.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은 단지 말을 하고 들을 수 있는 우리 뿐이다. 누가 더 불편하고, 편하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고 생각된다.
3. 루구후에서 만난 친구들은 앞으로도 살면서 좋은 친구가 될 것이다. 술을 마시고 있던 친구들과 합류하여 간단히 한 잔 마시고 왔다. 저녁도 꽤나 먹을만큼 먹었고, 술을 조금 마시면서도 안주를 계속 먹었음에도 공복감을 느껴 집에 들어와 밥을 퍼서 간단히 먹었다. 가끔은 이게 정말 신체적 공복감인지 아니면 정신적 공허함인지 헷갈린다. 우리는 명확히 구분할 수 있다고 여기지만, 난 사실 사는 게 불분명의 연속이라 생각한다. 분명하다고 믿는 게 있어야 비로소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리라.
2. 오늘따라 한국에서 전화들이 많이 왔다. 상하이에 휴가로 왔다가 얼굴 못 보고 혼자 놀다가는 후배, 그 후배에게 내 전화번호를 알려준 후배, 또 고등학교 친구들. 술 마시고 전화해서 교수가 되어야 하지 않겠느냐 헛소리들 남발하다 끊는다. 여긴 내가 깔아준 음악들이 흐르고 있다. 그래서 한국어로 된 음악들도 많이 흘러 나온다. 순간 다시 여기가 어디인지 불분명해졌다. 중국어를 하면 좀 정신이 들려나.
3. 내가 앉아 있는 이 자리에 어둠이 깔려 온 8시 반 이후에는 밖에서 별들이 총총히 박히기 시작한다. 자리 옆에 통유리가 있는데 그 밖에도 내가 앉아 있는 테이블과 비슷한 것이 놓여져 있다. 저녁부터 검은 강아지 녀석이 한 마리 그 곳에 퍼져 있었다. 그런데 온 동네 강아지들이 이 강아지한테 들렀다 가는 것이다. 잠시 고개를 돌릴 때마다 웬 녀석들이 와서 항문을 애무(?)한다. 열 마리도 넘게 왔다 간 것 같은데, 내 얼굴이 다 빨개진다. 지금 또 흰 녀석이 왔다. 이 자식들이 오늘 내 공부를 다 망치고 있다. 그래서 나 공부 안해!
선배 형 제자 녀석으로 여기 올 때 소개를 받았었다. 전공은 다르지만 처음 왔을 때는 유학생활의 적적함을 위로해주고, 한동안 잘 지내긴 했는데 여러모로 살아가는 방식이 맞지 않는 건 사실이었다. 이 녀석도 그랬을 것이다. 지난 방학 때 우리 집에 한동안 머물다 이 녀석은 산동에 간다고 하고, 나는 한국에 다녀오느라 만나지 않다가 이번 학기 3월 초 쯤에 한 번 이 녀석 집에 다녀온 다음으로는 별 연락도 없고 해서 그냥 그러려니 했다. 아무리 선배한테 소개받았다 하더라도 얘가 나한테 예의를 갖출 필요도 없겠고, 또 잘 맞지 않는 경우도 많다는 걸 잘 안다. 그러나 난 대체로 타자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편이다. 아니, 오히려 이해보다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살자고 생각을 하는 편이었다. 오히려 맞는다 안 맞는다 이런 것으로 자기합리화를 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학기 중에 두 어번 마주친 것이 전부였다. 그러다 갑자기 광석이가 한국에 간 이틀 전 초저녁에 연락이 와서 잠시 통화를 했었다. 집에 놀러 오겠다고 하더니 깜깜 무소식이라도 그냥 그런가 보다 했다. 오늘 밤 10시가 좀 되지 않은 시각에 다시 연락이 왔다. 술에 좀 취한 목소리였다. 집 부근의 양꼬치 집에 오겠다고 했다. 그래서 나가 기다렸다. 30분이 넘도록 오지 않았고, 연락도 되질 않았다. 그래서 다시 집에 들어와 있었는데, 다시 연락이 왔다. 근처 한국식당으로 나오라 해서 갔다. 술에 잔뜩 취한 상태였다. 한 병 남짓 남은 맥주라 좀 있다 집에 데려오려고 했었고, 술에 취한 사람 특유의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해대는 것이었다. 그냥 그럭저럭 잘 받아주었다. 그러다 갑자기 일어나 내 머리끄댕이를 잡더니 나를 치더라. 세 대. 덕분에 농구하다 부러진 안경을 접착해서 쓰고 있었는데 날아가면서 다시 부러졌다. 술집 주인 두 사람이 뜯어 말리고, 주인들한테 혹은 나한테 욕설을 해도 참았다.
여긴 엄연히 외국이고, 어쨌든 나한테는 이 아이를 처음 소개받은 선배 때문이라도 보살펴야 겠다는 모종의 의무감이 있었다. 결국 우리 집에 데려와 앞에 언급한 내용대로 시간이 흘렀다. 중간에 잠시 혼자 내버려 두면 자겠지 해서 자전거를 찾으러 다시 그 가게 다녀온 게 전부이다. 술에 취해 잠시 얘기를 나눴을 때 나한테 한 얘기가 "노력을 알아.." 어쩌구 저쩌구 했다. 취중의 말들을 조합해 보면 그간 좀 심리적으로 힘들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 놈이 완전히 정신줄을 놔버린 것이다.
집에 들어와 이 녀석과 씨름을 좀 하다 보니 또 메신저에서 한 달 반 정도 전에 책을 빌려간 학부 여학생이 말을 걸어왔다. 짬이 여간 나지 않아서 택배로 책을 보내면 안 되겠냐는 얘기였다. 그냥 가져도 되고, 편한대로 하라 했는데 굳이 보내겠다고 하더라. 이미 한 사람 때문에 경황이 없는데 이 사람도 참 어이가 없다. 그냥 어려서 그런가 보다 넘어 가기에는 정말 황당할 정도이다. 당초 복단대커뮤니티에 글 올렸던 것을 보고, 먼저 쪽지를 보내와서 가끔 얘기하고 지냈으면 좋겠다 해서 나도 나를 좋게 생각해주는 사람이니 감사한 마음에 흔쾌히 그러자 했고, 그러다 메신저로 좀 이야기를 하다 책을 빌려주기로 했었다. 또 중간에 학교 부근 식당에서 우연히 만난 적도 있었다. 책도 타교에서 강의를 하는 날 내가 일부러 시내에 나가 빌려주고 왔었다. 그 날 손님을 가게에 청해 놓고 나를 대하는 태도에도 살짝 불쾌했었는데 사람은 한 두 번 보고 모르는 것이라 생각하며 스스로 되뇌었다. 당초 이 친구 싸이월드를 보면서 나이에 비해 성숙할 것이란 오해를 했었다.
얼마나 나를 우습게 알면 두 사람이 동시에 이런 해괴한 짓을 벌이는 지 알 수가 없다. 너무 이기적인 사람들을 만났다고 치부하고 넘어가야 하는 일인가. 술에 취한 녀석 때문에 후자의 여학생이 약간 영향을 받는 것은 부정할 수 없겠지만, 그래도 한 두달을 지켜보는 동안 알 수가 없었다. 중간에는 그저 나를 좋게 생각해 줬던 사람이니 친하게 지냈으면 좋겠다 해서 호감어린 문자 정도 보냈었는데, 내 중국어 문자를 오해하고 책을 일찍 돌려주겠노라 하면서 신경질을 낸 적도 있다. 책을 빌려주러 몸소 그네가 일하는 곳까지 갔고, 중간에 문자 때문에 내 호의에 대한 오해도 받았다. 그런데 오늘 하는 언행까지 보니 도저히 묵과할 수가 없다. 이 사람이 쓰는 글은 대체로 가식적이었거나 혹은 실제로는 너무나 이기적인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책을 좋아하고, 자신의 삶에 대한 애착과 노력이 있으면 무엇하랴. 전자의 녀석도 마찬가지다.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이 타인에 대한 예의인 지 이들은 전혀 모르는 것 같다. 오늘은 화를 참을 수 없어 창피함을 무릅쓰고 글을 쓴다. 난 이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이 둘의 공통점은 자신의 삶에 대해서는 애착이 무척이나 강한 사람들이란 것이다. 자신의 삶에 대해서는 최선을 다하면서 어찌 타인에게 이럴 수 있는지 난 도저히 모르겠다. 살면서 수없이 넘어지고 깨졌지만, 이런 대책없는 사람들을 만날 때면......
적어도 오늘은 이들의 행위를 묵과할 수 없다. 앞으로는 어떨 지 모르겠지만...
오늘은 경성대로 자리를 옮긴 스승의 동료교수 분이 오셨었다. 목적은 정주에 한 학기 연수 보낸 학생들을 상해에서 픽업해 인솔해 돌아가는 것이라 한다. (시험만 아니면 체류하는 동안 좀 따라다니며 학부생들 젊은 기운 좀 받아보는 거였는데;;;) 내가 강의 나가는 상해제2공대에서 올해부터 상해시정부 지침에 따라 외국인 유학생을 받아야 하는 관계로 이쪽과 연계를 시켜준 바가 있었다. 상해 오는 김에 그냥 학교나 한 번 둘러보겠다고 했고, 나도 마침 그 학교에 제출해야 할 서류가 있어 만남이 미리 예정되어 있었다.
어제는 벼락을 쳐가며 일본어 단어를 외우다 잠이 들었는데, 아침에 부동산에서 집을 보러 오는 관계로 잠을 충분히 자지 못한 상태에서 깨어난 덕분에 일찍 연락을 드리고 같이 점심도 먹고 이동했다. 이런저런 얘기도 나누고 기숙사로 예정된 곳도 안내해 드렸는데 어찌될 진 모르겠다. 재미있는 것은 학교 구경 다 시켜드리고 서류제출하러 잠시 올라갔었는데, 내가 속한 외국어학원 원장이 단기연수와 교류관련해서 사적인 루트로 소개시켜준 점에 감사하다며, 500위안(8만 5천원 상당)의 '격려금'이 다음 달 통장에 입금될 거라고 말하더라. 아직 유학을 보내고 받고 하는 것에 전혀 체계가 없는 학교라 중간에서 좀 다리를 놔준 것 이외에는 한 게 없는데 적은 돈이지만 이런 걸 준다고 하니 당황하며 감사하단 인사를 간단히 하는 것 이외에는 할 말이 없었다. 이런 게 말로만 듣던 회색수입인가 싶기도 하고...
여튼 2주 전 국방연구원에서 온 손님들 이틀 안내하고 2,000위안 정도 수입이 생길 것 같아 급한대로 넷북을 사려 했었는데, 일정이 바뀌어 하루만 안내한 덕에 수입이 반으로 줄어 넷북구매에 차질이 좀 생겼었는데 그나마 이에 보탬이 되겠다.
그 선생님과 발맛사지까지 같이 받고, 저녁까지 먹고 헤어진 덕에 저녁에 들어와 밀린 잠 자고 일어나 좀 빈둥대다 보니 오늘은 별로 한 일도 없다. 일본어는 정말 시험기간이 다가올수록 하기 싫다. 뭔가 끊임없이 외워야 하는 것이 정말 버겁긴 하다. 여튼 또 지난 학기 짝 안 나려면 남은 이틀동안 전력투구는 해야겠지만, 재시험은 생각만 해도 싫은데 한 과만 넘어가면 왜 이렇게 생각이 안 나는지, 소싯적 암기과목의 천재가 불과 20년도 안 되어 왜 이런 쓸모없게 되어 버렸는지;;;
실로 오랜만에 술 한잔 걸친 남석이가 집에 들어가다 좀 아까 전화 주었는데, 이문동에서 지낼 때 초여름 밤에 술 마시고 새벽에 얘기하던 장면들이 생각이 나더라. 인터넷 전화 있으니 이런 것도 가능하지 안 그랬으면 이런 위로도 없었을텐테 문명의 이기한테 감사를 하긴 해야 하는구나. 한 두 시간 일본어 끄적거리다 오늘은 쑝~해야겠다.
유부남은 유부남대로 마음이 허하고, 노총각은 노총각대로 마음이 허한 법이니 지식이 제 아무리 늘어도 자기 인생에는 별 방책이 없긴 하네. 그치? 어렸을 때 생각했던 것처럼 순간이동해서 보고싶은 사람들 얼굴만 보고 왔으면 좋겠다. 한국 가려는 디데이 7개월도 안 남았다.
이 새벽에 창을 열자 이내 시원한 바람이 얼굴을 때린다. 겨울에는 그리도 혹독했던 바람이 비가 내린 뒤 지금은 축복이나 다름없다. 어제는 장마기간에 어울리지 않는 쾌청한 하늘을 보았고, 오늘 밤에는 반달도 볼 수 있고 총총히 박힌 별의 무리들도 헤아릴 수 있다. 처음에는 가장 밝은 하나의 별만이 시야에 들어왔지만, 내 좁은 시야를 비웃기라도 하듯 곧 다른 별들도 내 눈에 쏟아졌다.
지금 이 시간, 나에게는 아무런 부족함이 없다. 창을 닫자 다시 현실의 창 안으로 들어오게 된다. 수없이 많은 욕망들과 결핍의 곧달음. 내가 어떤 것들을 욕망하고 무엇에 결핍되어 있는 지 모르지 않는다. 그네들이 내 앙상한 심신을 수없이 자극하지만, 나는 지금 욕망도 결핍에 대해 아무런 것도 갈구하지 않는다. 단지 도란대며 저 하늘에 대해 바람의 향방에 관하여 가벼운 농을 할 수 있는 친구가 필요할 뿐이다.
현실은 우리에게 진심어린 친구가 되지 못하도록 온갖 덫을 던져 놓는다. 난 그 덫에 진심을 던져 놓겠다. 그리고 머뭇거리지 않고 욕망과 결핍의 현실로 돌아가리라.
우연히 우석훈 박사의 블로그에 들어 갔다가 "도대체 이 블로그에는 누가 오는가"라는 글을 발견했다.
http://retired.tistory.com/1309
내 블로그의 방문자 수는 상기 블로그의 40분의 1에 지나지 않으니(물론 초창기 음악을 많이 올리던 시절에는 하루 3,000명씩 유입되다가, 일 70~100명에서 지금은 하루 30~40명으로 주저 앉았다. 내 입장에서는 오히려 지금이 좋다.), 그런 기대는 하지 않지만 나도 내내 궁금했다.
꼭 알아야 할 필요가 있을까 자문해 봤지만, 그래도 이렇게 퍼질러 있을 때 한 번 저질러 보기로 했다. 유입경로나 키워드로 대충 어떤 검색어로 들어오는 지는 알고 있다. 가끔은 내 블로그를 둘러싼 지인들의 검색어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
한 번 왔다 가는 분들 말고, 우연히 왔다 가끔이라도 한 번씩 오는 분들이 도대체 누군가 궁금했다는 얘기다.
얼마 전에 내가 알고 있는 soo자 들어가는 사람은 아주 소수에 불과한데도, 마치 내 얼굴을 아는 사람처럼 댓글을 달아 내 호기심을 증폭시킨 덕도 있다.
우석훈 씨처럼 나도 성별, 연령, 간단한 소개 받고 싶다.
댓글이 하나도 안 달릴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예감이 팍팍 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쩝~
내가 충분히 알고 있고, 또 예상하는 사람들은 제외하고 완전한 눈팅족의 정체를 알고 싶다.
나와 다른 삶을 선택한 많은 사람들도 모두 각자가 믿는 가치를 위해 살아갈 것이다. 삶의 양태는 다양하지만, 종착점은 대동소이한 것이다. 그렇게 우리가 염두해 둔 몇 가지 가치를 위해 우리는 일상을 살아낸다(고 믿는다.)
허나 과연 그러한가?
가치실현을 위해서는 당장의 성과를 요구받는다. 나의 경우를 예를 들면 학위과정의 불가피한 부분에서 오는 여러가지 것들. 이를테면 작은 숙제부터 시작하여 발표, 논문 등. 트레이닝의 일환이라 순진하게 생각할 수 있다면 나쁘지 않으리라. 하지만 정말 그러한가. 가만 들여다 보면 그 성과는 외부에서 요구받는 것이 아니라 대체로 내 자신 내부로부터 요구받는다. '효율'과 '속도'에 지독한 거부반응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무수한 나날들을 이것을 위해 살아가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즐거워서라기 보다는 하지 않으면 이내 불안해지고, 가치를 위한 순정보다 오히려 단기적인 성과나 명성에 집착하게 된다. 그러면서 자신있게 말한다. 훗날을 도모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직업은 가치실현의 하나의 도구일 뿐 삶의 전체가 될 수 없다.'라는 명제가 참이라 한다면, 도구가 오히려 목적이 되는, 치명적 오류를 오류가 아니라 부정하는 일상을 가열차게 살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이는 효율과 속도를 거부하기 위한 삶이 명실상부 이를 위해 전방에서 깃발을 흔들어대는 전도사로서의 생으로 역전되기도 하는 것이다.
일상은 이렇듯 가치를 짓밟으며 군림한다.
그렇다고 이로 인해 자괴감에 빠지진 않는다. 언제라도 복기할 수 있는 의지와 능력만 가지고 있다면 되는 것이니까 말이다. 다만 항상 두려운 것은 내가 그린 도화지에 새로운 그림을 그려놓고, 새 도화지에 그린 것이라 냉큼 새침을 떼는 태연자약한 미래의 나이다. 그때의 나는 과연 세상의 어떠한 부러진 권력을 가지고 있을 것인가.
생활은 슬슬 더 바빠지고 있다. 얼마간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좀 굴러다니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지만, 학기는 이제 겨우 절반 넘어간데다 해야 할 일들이 조금 쌓여 있는 상황이다. 외국인 강사로 나가는 학교는 이제 7주 정도 남았고, 복단대는 9주가 정확히 더 남았다. 5월 달은 이런저런 발표들이 몰려 있어 그것들 처리하다 보면 한 달 다 보낼 듯 싶어 3월부터 꾸준히 하려고 노력한 독서량이 좀 지장을 받지 않을까 싶다. 그나마 최근 대만에서 온 후배 덕에 밥 먹을 때 심심하지 않고, 공부 얘기도 자주 할 수 있어 좋다. 다만 최근 술 마시는 일이 잦아 피곤함이 더 쌓이고 있지만은...
금요일에는 최근에 월급을 받은 김에 가장 친하게 지내는 중국 통쉐들 5명, 광석, 하우스메이트 윤석, 또 최근 알게 된 경제학원 미영을 불러 삼겹살을 먹었다. 그런 다음 노래방 가서 4시간을 놀았는데...(여긴 노래방 갔다 하면 기본이 2시간 이상이다.) 시간이 12시가 살짝 넘은 이후, 저녁으로 먹은 삼겹살과 술이 다 깨었다는 이유로 좀 피곤해하는 중국친구들을 잡아세워 마지막은 양꼬치와 맥주로 마무리하였다. 중국친구들에게는 적이 늦은 시각인지라 그들을 위해 재빠르게 알콜을 몸에 축적시키고 들어왔다. 덕분에 오전에 일어났더니 간만에 편도선이 부어 그냥 하루를 쉬어 버렸다. 아, 기름기 많은 중국음식, 잦은 야식과 술이 조금씩 나를 살찌우고 있어 난생 처음 다이어트에 대한 생각도 하고 있다. 살다보니 이런 날도 온다.
논문에 대한 생각을 간간히 하고 있는 데 충분한 시간이 주어지지 않아 가끔 쪽글로 메모하는 정도이다. 학교 수업과 알바에 쫒기다 보니 체계적으로 정리할 시간은 방학이나 되어야 가능할 것 같다. 방학 때는 최종 주제선정과 아울러 번역이나 한 권 해볼까 하는 생각도 하고 있다. 한 권 골라두긴 했는데, 시간될 때 좀 읽어보고 학술적인 가치가 있는 지 따져봐야겠다. 이후 문제는 그 다음에 생각해 봐야 할테고.
그리고 한 일주일 전이던가, 가끔 심심할 때 내가 이곳에 있는 글을 복단대 카페에 올리곤 했는데 내가 올린 글을 보고 한 젊디 젊은 여학생이 쪽지를 보내주었다. 내가 쓰는 글들이 그리 재미있는 글은 아닐텐데, 내가 그동안 올린 글들을 정독했고 가끔 수다 상대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내용이었다. 그 친구는 싸이월드를 하기에 나도 마실 가서 이것저것 구경을 했다. 싸이월드 특성상 글보다는 사진이 더 많았지만, 그 사이에 보이는 짧은 댓글이나 글귀를 보니 그네가 삶을 살아가는 방식이 명랑함이라는 맥락 속에 숨어 있었다. 다만 댓글들을 해독하는데(?) 좀 시간이 걸려 나도 이제 나이가 들어가나 싶은 생각이 불쑥 들었다. 외면적으로는 개그스럽지만 책도 무척 좋아하는 것 같고, 꽤 감성적인 친구인 것 같아 나이에 상관없이 한 번쯤 대면해서 이야기 나눠보고 싶은데 앞으로 기회가 있을지는 모르겠다. 여튼 최근에 있던 소소한 즐거움 가운데 주목할 만한 사건이었다.
일본어 수업시간에 본 'ぼくはくま'(나는 곰이야)란 노래다. 은근 중독성 있다.
설야산책
"이 밤에 쥐는 나무를 깎고, 나는 가슴을 깍는다."란 대목에서 자연스레 창 너머 켜켜이 적첩한 눈을 응시하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스스로에게 속삭였다. 난 무엇을 깎는가.
3일 후 일본어 시험이 있어 그것을 공부하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집중이 필요해야 할 과목임에도 통 집중을 할 수 없다. 이틀 전 내가 저지른 일 때문에 마음이 부풀린 풍선처럼 빵~터져 버리고 말았기 때문이다. 그러기 전에 내가 날려보내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자책도 오버랩된다.
여기 와서 사귀게 된 한국인 친구들이 4명 있다. 같은 과 석사생 두 명과 선배한테 소개받은 후배 한 명, 그리고 하우스메이트이다. 이 가운데 같은 과 두 명과의 관계에 불시에 '오컴의 면도날'을 들이대고 만 것이다.
일련의 소소한 사건에 이 면도날을 들이대 해결하려고 했던 것은 분명 내 저열함을 보여준 것이었다.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나 역시 깨끗할 수는 없다는 말이다. 반추해 보면, 이런 결과에 나 역시 어느 정도 일조했던 것은 사실이었을테니까. 관계란 것이 어찌 일방적일 수 있겠는가.
지금은 관계의 단절이라는 기로에 놓여 있다. 내가 먼저 손을 내밀 수도 있고, 그들이 손을 내밀 수도 있다. 그렇게 있는 그대로 서로를 받아들이는 것이 단절을 막는 가장 현명한 해결책이겠지만, 역시 쉽지 않을 것이다. 다만 어떤 경우에든 난 솔직하게 대처할 것이다. 또한 그네들이 솔직하기를 바라지만, 남학생은 이미 내 기대를 저버렸다. 그렇다고 그와의 관계를 잘라버리겠다는 것도 아니다. 아마 시시비비를 떠나 이번 일에 내 오해도 상당 부분 자리잡고 있을 것이고, 의도적이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겁하게 날 스스로 보호하려는 본능적 언행도 두렵다. 이번 계기가 서로의 마음을 꺼내 보게 되어 좀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갔으면 좋겠지만, 그러기가 용이치 않을 것이다. 어쩌면 이대로 제대로 쌓아보지도 못한 관계가 모래알처럼 빠져나갈 지도 모른다.
아울러 내 마음이 이리 허하고 아픈데, 혹시 그들에게 보낸 내 메일이 그들의 마음에 날을 벼린 비수가 되지 않았을까란 생각도 든다. 훗. 그런 포용력이 내게 있었다면 아마 모든 걸 덮고 그냥 넘어갔을테지만은...
사실 장문의 글을 썼었는데, 모두 지워버렸다. 다 부질없기 때문이다. 이 글을 올린다고 해결될 것도 없다.
두 번째, 나를 둘러싼 관계의 총체이다. 나를 중심으로 한 모든 관계도에 대한 복기. 의도와 관계없이 얼마나 상처되는 말을 던져왔던가, 그리고 난 어떤 것에 상처를 받았던가. 나이를 먹는 것의 고통은 해마다 새로운 인연을 만나지만 그 관계의 벼리를 엮어나갈 수 있는 가능성이 극히 적다는 것에 있다. 그만큼 내 자신이 탄력적이지 못하고, 고형화되었기 때문이다.
전자는 '새해'가 있기에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문제라지만, 후자는 다시 돌이키기 힘든 것이다. 또한 후자는 전자에 의해 그 성장이 부단히 침범당하기 일쑤이다. 때문에 쓸쓸한 것은 아닐까란 생각을 해봤다. 2010년이 나를 떠나서가 아닌, 내가 이 해를 떠나가서 자못 안타깝다.
600원짜리 싼더리 맥주(三得利 啤酒)두 병과 10월.
중대 대학원생으로 복단대와 교류협정에 따라 1년간 이쪽에서 공부하게 된 친구와 미리 한국에서 만나 같이 살기로 한 까닭에 함께 들어와 집도 같이 구했습니다. 집은 비교적 넓은 편입니다. 복단대 인근 아파트 월세가 외국인들에게만 유독 높게 책정되는 이유로 80년대에 지어진 샤오취나 90년대 말 혹은 2000년대 초반에 지어진 고층아파트 모두 턱없이 높게 올랐습니다. 이번에 새 입학생을 받으면서 더욱 오르게 되었구요. 그래도 기숙사 들어가는 것보다는 아직 저렴한 까닭, 그리고 1인실보다는 형편이 낫다는 이유 등으로 2인실(여기서는 방 두칸, 거실 하나를 그렇게 일컫습니다.)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월세는 대략 인민폐 4,500위안(현재 환율로 1인당 400,000원 정도 합니다.) 와서 집을 대략 여섯 군데 정도 보았는데, 워낙 더운 날씨에 돌아다니는 것이 너무도 힘들었던데다 기타 등등의 이유로 앞으로 1년간은 여기에서 거주하게 될 것 같네요.
오늘은 인터넷이 들어왔고, 어제는 김치 등 한국식자재를 다소 구입했으며, 엊그제는 근처 오각장(복단대 인근에서 그나마 괜찮은 쇼핑단지)의 월마트에서 생활에 필요한 모든 물건을 구입했습니다. 자전거도 170원짜리 가장 싸구려로 구입했습니다. 새 것이 벌써 덜덜 거리긴 하지만, 탈 만은 합니다. 오늘 저녁에는 밥도 처음 해 먹었습니다.
한국에서 부친 짐들도 다 들어와 정리했고, 이제 욕실과 주방 등의 대청소만 마무리하면 대충 정착에 필요한 웬만한 것들이 처리가 될 것 같네요. 다음 주는 등록기간 및 외국인 주숙등기, 거류증, 장학생 환영회, 수강신청 등의 일로 한 주를 보내게 될 것 같습니다.
형편없던 중국어는 일주일의 시간으로는 회복되질 않고 있습니다. 그나마 듣기는 한결 나아졌지만, 앞으로 갈 길이 더 험난할 것 같네요. 그래서 아직 지도교수와의 연락을 회피하고 있는 형국입니다. 대충 마무리되면 이제 슬슬 학업에 매진할 수 있겠지요.
다음주에는 사진도 있는 블로깅을 했으면 좋겠네요. 참...아래 중국 휴대폰 번호 새로 업데이트 해두었습니다. 포맷하고 다시 설치하는 와중이라 오늘은 길게 소식 전하지 못합니다. 에어컨이 있는 집은 시원하지만 밖에 나가면 무지 덥습니다. 빨리 더위가 수그러 들었으면 합니다.
상해연락처: 한국인터넷폰을 들고 갑니다. 070-7531-9733(집) 휴대폰은 추후 이곳에 다시 업데이트 하겠음.
상해 휴대폰: 132-6256-0901
술을 마실 때마다 이유란 것이 있지는 않았지만, 오늘은 선선함에 찾게 된다. 목을 타고 흘러내려가는 알콜의 느낌을 느끼고 싶어 인근 편의점에서 소주를 샀다. 젊은 연인이 파라솔에 앉아 맥주를 홀짝이며 들이키는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난 소주 일병과 번데기를 고집하기로 했다. 요즘 부쩍 주량이 늘은 탓인지, 아니면 낮아진 알콜도수 탓인지는 알 수 없어도... 기대와는 다르지만 그래도 이미 들이킨 두 잔의 알콜이 온몸을 적셔나가는 느낌은 확실하다. 술에 취한 글은 되지 않고자 한다. 술에 취해 떠벌린 무의미했던 설화들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위기와 기회의 공존이란 것이 있다. 그것의 한 가운데 벌거벗은 채로 서 있는 요즘의 기분은 글이나 말로 표현하기 조차 힘들다. 후자가 떨어져 나간 다음에 있을 전자에 대한 공포감을 납량영화 따위가 따라올 수 있을까. 전자의 도래없이 후자만에 기댈 수도 없는 이도저도 아닌 그런 상황. 좋은 소식을 이곳에 알릴 수 있는 날에 대한 상상도 해 보았다. 그리고 술을 이겨내지 못하고 먹은 것을 게워내는 날들도 있었다. 그렇다고 알콜의 힘으로 잠을 청하는 타입도 정작 아니다. (물론 그런 때도 다수 존재해 왔던 것은 사실이지만...)
모든 게 오늘 밤의 선선함 탓이다. 소주를 산 것도, 이렇게 오랜만에 블로깅을 하게 된 것도... 사실 아무 것도 하기 귀찮은 나날들이다. 그야말로 내가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나를 보내고 있는 형국이다. 책도 눈에 잘 들어오지 않고, 음악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한참 떠들썩한 월드컵 경기도 한국팀 경기 이외에는 시야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신문기사를 봐도 텅, 누워 있어도 텅, 누군가와 이야기를 해도 텅, 밥을 먹어도 텅 비어 있다. 때문에 텅 빈 내가 글을 쓰는 것이 선선한 날씨 때문이란 것에는 매우 타당성이 있는 것이다.
나의 이것들이 매우 고루함을 익히 알고 있다. 이 시간에 깨어있는 적지 않은 이들의 가치있는 상념과는 정확히 대치한다. 적어도 이 고루함과 최소한 열흘 이상은 벗으로 지내야 한다.
'초조하다'는 것을 짧지 않게 표현했다.
이 날의 목적은 고추모종 심기. 사실 호주에 계신 어머니의 아버지를 도와 심으라는 명령도 떨어진 바 있지만, 많은 아르바이트를 했어도 농사 관련 일은 정말 손꼽을 정도였기 때문에 경험해 보고 싶다는 충동이 더 근원적인 이유였다. 그런데 정작 그 날 내가 일을 한 것이라곤 딱 두 단계였다. 구멍파기와 물 주기. 그렇지만 세 시간도 채 되지 않는 작업시간에 저질체력은 정말이지 퍼져버리고 말았다. 물론 중간에 이웃 무단점거 경작 아저씨가 사온 막걸리 세 잔을 넙죽 받아 먹다가 더 체력이 소모된 것이 주효했지만... 여튼 저질체력을 유감없이 과시하고, 며칠째 그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사 일이라는 것이 녹록치 않다는 것은 굳이 많이 경험하지 않아도 인지할 수 있는 것. 한국의 경제발전 시기, 도시로 많은 인구가 유입되는 한편, 1차 산업보다는 2차 산업이, 2차 산업보다는 3차 산업의 비중이 더 커졌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가 편함을 추구했다는 이야기나 다를 바 없다. 현대자본주의의 병폐도 문제지만, 앞으로의 미래는 오히려 이런 요인들이 더 큰 문제로 자리잡지 않을까 하는 거창한(?) 생각을 잠시 했었다.
어쨌든 지독히도 게으른 몸이지만, 몸을 쓰는 원초적 노동이 고되지만 즐겁긴 하다. 계속 하라고 한다면 나자빠질 것이 뻔한 사람 입에서 나오는 소리이니 신경 쓸 가치는 없다. 다만 그 어떤 일보다 정직하다는 것 정도는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많겠지만, 텃밭 가꾸기가 별다른 취미생활이 없는 도시민들의 한낱 유희에 그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근황: 아는 사람들은 아는, '기다림'은 계속 되고 있다. 이와 관련된 준비들도 진행중이다. 한 가지는 결국 생각했던대로 좋지 않은 소식이 왔고, 또 별 기대하지 않았던 기회가 한 두번 더 주어질 것 같기도 하다. 그 끝은 섣불리 예단할 수 없다. 마침내 그 시간은 도래할테지만, 기다림은 때로 한없이 지루하고, 초조하다. 한 석 달간 할 일자리를 찾는 중이다. 천하에 없는 백수 짓도 슬슬 지겨워지는 와중이다.
2,鉴于你的求学心切,我同意向学院推荐录取,学院会讨论一下,请你等正式通知。
3,如果录取,你一定要在今后几年努力学习,进一步提高写作能力。
祝好!
소위 명문대 자부심이 있어 그런지 좀 돌려서 말하는 듯. '讨论‘이란 말도 은근 신경 쓰이고...-.- 그럭저럭 무난하게 한 것 같은데, '感觉还有很大差异'란 문맥에 좀 기분도 상하고 그러함. 내가 예민한 탓인지, 아님 문화적인 차이인지 모르겠군요. 대체적으로는 일단 한 고비는 넘기고, 我只能碰运气了。중국어공부 좀 다시 해야 할 필요성을 절감하는 중. 도움주신 여러분의 후의에 감사드려요.
퇴직과 출국과 급거 귀국 여파 등으로 푹 쉬다가 도서관 열람실로 출근하기 시작한 지 이제 조금 더 지나면 두 달이 다 되어 간다. 첫 한 달은 기상시간을 아침 7시로 맞추는 것과, 또 차붓하게 앉아 책을 들여다 보는 연습을 하는데 시간을 들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한 달이 지나면서 직장 생활 몇 년에도 바뀔 생각을 않던 늦은 기상시각이 상상할 수 없던 시간으로 맞춰지는 것이었다. 아침형 인간도 아닌 것이 이러면 안되는 것인데 말이지. 다음은 책 보는 것도 다시 많이 익숙해지는 상황이다. 물론 이런저런 이유로 속도가 좀 더디고 속된 말로 효율적이지 못한 것이 좀 답답할 때도 있지만 역시 '공부란 것도 몸으로 하는 것'인지라 지속적으로 참을성을 발휘하고 있는 중이다.
다만 떠벌이가 말로 스트레스를 풀 수 없는 환경에 처했다는 것이 좀 불우한 상황이다. 솔직히 공부보다는 생계중시의 대학원생활을 타파하고, 학문적인 떠벌이로 거듭나기 위해 치르는 댓가 치고는 좀 가혹하긴 하다. 기실 잇단 작년부터 불어닥친 두 세번의 시행착오와 보장되지 않은 미래에 대한 초조함이 더 나를 흔드는 것이긴 하지만은. 뭐 오늘 돌아오는 길에 생각해 보니 공부란 걸 하기로 한 이후부터 언제 그렇지 않았던 때도 없었으니 그냥 덮어두기로 했다.
공부 얘기로 잠시 돌아가서 본격적으로 다시 책을 집어 들면서 결정한 것이 이론서들의 경우 천천히 읽되, 독서노트에 중요한 사항들을 필사(筆寫)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하루에 서 너장씩 옮겨 적으면서 좋은 것은 책을 한 번에 두 번에 가깝게 읽게 되는 효과를 누릴 수 있다는 점과, 또 필사를 하면서 한 번 더 여과하는 과정을 거칠 수 있다는 장점이 발생한다. 또 이런저런 의구심과 단상들이 떠오를 때는(아직은 아주 가끔이지만) 다른 색상의 펜으로 적어 두기도 한다. 이 노트는 한 두달에 한 번씩 다시 정리하면 생각을 정립하는 데 일정한 도움이 될 듯 싶다. 다만 부작용은 오래도록 컴퓨터의 노예로 거침없이 살아온 내가 손을 혹사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손도 많이 아프고 또한 그냥 봐도 오래 걸릴 이론서들이 필사하는 덕에 한 달에 읽을 수 있는 양도 많지 않다. 그런 것들을 예상해서 6~700페이지 정도의 이론서를 기준으로 한 달에 4~5권 정도만 읽어도 되겠단 생각은 했지만, 여전히 양에 집착하는 버릇을 뜯어 고치지 못한 탓인지 아쉬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이번 주 전후로는 중국어 답변도 좀 준비해서 연습 좀 해볼까 한다. 한국어는 그리 떠들어 대면서 한어구어는 왜 그리 하기 싫은지 이것 역시 나를 심란하게 한다. 체계적이지 못한 공부가 좀 더 자리 잡으면 7개월 넘게 듣지 못했던 신곡도 좀 듣고, 애증의 대상이 되어 가고 있는 기타연습도 좀 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가져야 겠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시와(SIWA)의 1집이 드디어 나왔다는데, 제대로 갖춰진 사운드로 듣지 못하고 본인이 직접 올린 것으로 보이는 유튜브 동영상으로 지금은 만족해야 할 듯.
摘要: 감내할 것은 감내하고, 일정하게 낙관적이며, 또 그에 못지 않게 번민하며 살고 있다. 지극히 이기적인 형태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