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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체온과 사색'에 해당되는 글 51건
2012/04/12 03:51

예상보다 마음이 담담했다. 하지만 이건 분명 내 덕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길지 않은 기간에 너무 많은 일들이 폭풍처럼 일상을 휩쓸고 간다. 그 안에서 많은 것들을 발견했고, 현재와 미래를 추동하는 강력한 힘이 될 것이다. 그래도 조금 심란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나 보다. 피곤한데도 잠이 쉬이 오질 않는 걸 보면... 최상이 아닌 최선이라 생각했지만, 그것 역시 틀릴 수 있다. 공부할 때 반론할 수 없는 정상적이라 여겼던 것에 대한 부단한 의문과 반박의 견지는 학문적 깊이를 더해준다. 사실 올해 내 새해 소원은 생활을 이처럼 살 것이란 것이었다. 우리의 삶을 감싸는 곤혹스러운 기류와 권태의 트라이앵글을 넘어 오늘을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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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08 22:24

교수님! 건강하게 지내시죠? 한 2년 있으면 대학 입학한 지도 20주년이 되네요. 마음은 늘 대학생인데 몸은 벌써 이렇게 되어버렸네요. 가끔은 멈춰서서 이 세월이 어떤 의미였는지 곰곰히 생각해봐야겠네요. 여기서는 페북이 막혀 우회접속해야 하는데, 친구목록을 보다 딱 멈춰져서 이런 버릇없는(?) 글 남기고 갑니다. 환절기인데 감기 늘 조심하시구요!

페북을 잠깐 했는데 윗 글은 학부 은사의 페북에 방금 남긴 글이다. 정말 2년 있으면 대학에 들어온 지도 20년, 그 분도 정직으로서 출발을 한지도 20년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일종의 동기 사이라 규정할 수 있겠다. 어느덧 내가 잠시 가르쳤던 학생들이 그 분과 같이 겹치게 되었다. 18년의 세월이 제자의 제자를 만들어낸 것이다.

이렇듯 가끔 관계가 오래된 사람들을 볼 때마다 지난 날을 돌아보게 된다. 지금 내가 처한 시공간적 영향이 전연 없다고 한다면 거짓이겠지만, 여튼 좀 먹먹해진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사람들은 가끔씩 멈춰서 산다는 게 무엇인지, 내가 살아온 길은 어떤 의미가 있었을까 하고 되짚어 볼 것이다. 근데 딱 거기까지다. 절대 걸음을 멈추고 뒤로 돌아갈 생각은 쉽게 하지 못한다. 앞으로 살아갈 더 많은 날들, 즉 미래에 대한 기대감에 부풀어서일까, 아니면  모든 것을 벗어 던지고 지난 날로 투항할 수 없는 현실적인 이유 때문일까. 속도와 전진만이 삶의 전부가 아니라, 결국 중요한 것은 '방향'이라는 것을 모두 인지하고 있다. 허나 결코 좌회전을 하기 위해 속도를 줄일 생각은 하지 않는다. 아마 도처에 잠복해 있다 불시에 들이닥치는 그 의외의 '사고'가 우리를 멈추게 만들것이다. 평생을 달리고 연습해도 우리는 언제나 초보운전.

※ 총선이 다가오네요. 저는 지지난주 금요일에 예서 재외국민 투표했어요. 잊지 말고 투표하세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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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3/23 05:05
현우: "은결인 엄마를 좋아했니?"
은결: "음. 어려선 미운 적도 많았는데 커선 좋아하게 됐어요.
        돌아가실 땐 무지 슬퍼서 또 무지 미웠구요.
        지금은 그냥 그리워요."
현우: "좋아했단 거구나."
은결: "엄마는 외톨이에 외골수에 고집쟁이였어요."
현우: "그건 니 아버지도 마찬가지였어."
         "외톨이에 외골수에..."
은결: "고집쟁이요."
현우: "그래, 고집쟁이."
은결: "실은 저도 그래요."
현우: "그렇겠지."
은결: "우리집 식구 피가 다 그렇구나."
        "근데 그게 뭐 그렇게 나쁜 건 아니잖아요."
현우: "아니지."

내 30대의 영화 가운데 하나: 오래된 정원, 2007, 아빠 현우(지진희 분)와 딸 은결(이은성 분)의 엔딩 대사 가운데.


얼마 전부터 다시 보려고 생각만 하다 오늘에서야 다시 봤다. 중국에서는 여기서 봤는데 한국에서는 아마 열리지 않겠지?
http://www.letv.com/ptv/vplay/1366682.html
중국어제목은 古老的庭院이고,소설은 故园이란 제목으로 중국에서 번역출판된 바 있다.
영화보다는 1,2권으로 되어 있는 소설이 훨 먹먹한 것은 사실이다.
'이은성', 내가 최근 가장 좋아하는 배우 가운데 하나인데, 국가대표 출연 이후 아예 자취를 감추었다. 아마 은결이란 이름 순우리말인 '은결들다'에서 따온 말인 듯... 뜬금없지만 굳이 외톨이에 외골수에 고집쟁이가 되지 않더라도 능히 삶의 벼리를 엮어나갈 수 있는 시대였으면 좋겠단 생각을 해본다.



한윤희: "당신은 그 안에서, 나는 이쪽 바깥에서 이 한 세상을 다 보냈네요. 정말 힘들었죠? 하지만 이제 우리 이 모든 나날들과 화해해요. 네? 흉하죠? 우스꽝스럽기까지 하네요. 현우씨, 사람의 몸이란 게 이렇네요... 내게 당신은 언제나 가물가물한 흔적일 뿐이었어요. 그치만 죽음을 앞에 둔 지금 내 인생에는 당신 뿐이었다는 걸 느껴요. 여보, 사랑해요."

- 한윤희(염정아 분)가 오현우에게 보내는 마지막 대사(편지) 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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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8/31 02:20
살아가면서 버려야 할 것과 지켜야 할 것들에 대해 수많은 사적 언급들이 있어 왔다.
그 중에서도 과연 우리는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버리지 말아야 하는 것일까.
스스로 바르다고 생각하는 가치와 사회적 기치와 관념을 버리지 말아야 하는 것으로 상정한다면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이것들을 과감히 버려야 하는 순간도 결국은 오고야 만다.
난 이 둘을 관통하는 '우리'라고 생각한다.
나를 위해 우리를 지켜야 하고, 더불어 우리를 위해 나를 버려야 한다. 
이 둘이 교차할 때 진정한 소통이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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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군 | 2011/08/31 14:04 | PERMALINK | EDIT/DEL | REPLY
오래간만이야. 여긴 아직도 덥네. 잘 지내지? 건강검진 하고 왔다. 내시경 죽음이야.
Favicon of http://www.zzacnoon.net BlogIcon zzacnoon | 2011/08/31 23:21 | PERMALINK | EDIT/DEL
선생님! 오랜만에 뵈어요. 이제 건강검진 꾸준히 챙기실 나이시잖아요. ㅎㅎ 저도 그렇구요. 내시경은 안해봤지만 예전에 갑상선 땜에 그 비슷한 거 했을 때 저도 죽는 줄 알았어요. 하루종일 밥도 제대로 못 먹고 그랬었죠. 요즘은 학기 초라 좀 바쁘네요. 좀 편해지면 전화 한 번 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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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7/02 06:41
일본어 시험이 끝나고, 하루가 지났다. 목요일 밤에 술 마시고 새벽에 깨어 혼자 놀다가 아침에 잠이 들었고 대낮에 깨었다. 다음 주에 기말논문 쓰기 전에 무작정 쉬어볼까 해서 하루 종일 거의 누웠다 앉았다 하며 컴퓨터로 영화를 실컷 봤다. 저녁 사러 한 번 나가면서 담배 사고, 음료수를 산 거 이외에는 누구랑 대화 한 번 변변히 하지 않은 하루였다. 심심했지만, 외롭지는 않았다. 영화를 세 편 보고, 이제 낮잠이란 영화를 뒤늦게 보려고 한다.

틈틈이 인터넷을 하다 뜬금없이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난 제도권을 벗어날 수 없는가. 무엇인가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제도권에 들어가는 선택을 했지만, 정작 제도권 안에서의 공부는 점차 틀에 갇혀 있다. 독창성이란 것도 결국 형식과 제도 내에서는 다 거기서 거기다. 조금 다르게 포장한 것을 두고 독창성 있고 창조적이라고 이야기하는 세상이다. 결국 이 안에 있으려면 입맛에 맞는 어떤 한 가지를 선택해야 하는데, 그게 과연 내가 맞는 일인가 싶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변화시키기 위한다는 변명으로 제도권에 있지만, 그 변화의 중심에는 언제나 내가 있어야 한다. 결국 별 욕심이 없다 말하지만, 정작 헤아려 보면 현 제도권에서 가지를 쳐서 나온 다른 권력에의 참여일 뿐이다. 난 정말 무엇을 위해 공부하는가. 

다시 여름, 열대야는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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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인생 | 2011/07/12 12:30 | PERMALINK | EDIT/DEL | REPLY
많이 신세지고 왔네요. 오히려 복단대학 쪽에 있었던게 상해에서 많은 일을 하지는 못했어도, 많은 생각을 하며 정리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 쪽 박사반 친구들도 많은 도움을 줬구요. 다 형 덕분이네요.
제도권이든 그 밖이든 그건 다 개인의 규정이자 선택이고, 뭐라 왈가왈부하기 어려운 것 같아요. 중요한 건 형이 말한 "무언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을 명확히 하면서 자신의 이론 내지 연구를 만들어가는 것이겠지요. 한국 사회에서 그것 조차 없으면 결국... 많이 비참해지지 않는가 싶네요.
운남 생활 행복하시고, 좋은 논문 주제 기대할게요.
Favicon of http://www.zzacnoon.net BlogIcon zzacnoon | 2011/07/13 18:16 | PERMALINK | EDIT/DEL
아직 끝내지 못한 것들이 있는데 이사도 해야 하고, 윈난도 가야 해서 골치 아프다. 이 넷북 한글입력이 안되어서 컴퓨터수리점에서 다운받아 설치를 했는데 짝퉁 xp라서 한글, 중국어입력할 때 계속 커서가 위로 올라가고 그래서 너무 불편해. 다시 깔아야 되나 싶고;;; 매장에서 살 걸 그랬나..루마니아 왕위샹이랑 저녁먹기로 해서 나가야 겠다. 여튼 잘 쉬고 여자친구 오면 같이 잘 지내다 모조심히 대만에 돌아가길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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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25 03:58
불쑥 서로의 삶에 깊숙하게 혹은 얕게 개입을 하게 될 때가 있다. 이것은 비록 얕고 깊음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언제나 상호적이다. 개입에는 개인적 이익이 전제되기도 하지만, 순전히 책임(도덕적인 혹은 여타 다른 어떤 것)에 의한 것도 있다. 이익이 우선시 될 때는 일반적으로 파탄에 이르게 되고, 책임이 우선시 될 때는 상생의 길을 도모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적어도 타인의 삶에 대해서 만큼은 "어떻게 개입할 것인가"가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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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13 22:17

근대에 대해서는 수없이 많은 논쟁이 있어왔다. 언제부터 근대로 규정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에서부터 시작하여  근대의 성격에 대한 각론들을 비롯해 '근대'에 대한 소문은 풍성하기 그지없다. 이 서구가 만들어 낸 가장 큰 불량품이 '자본주의적 근대'라고 할 수 있겠지만, 요즘은 이보다 더 불량품은 국가란 이름으로 자행되어 왔던 '폭력의 근대'가 아닐까 싶다. 문명과 문명이 만났던 지점부터 문명에서 비문명지역에 이르기까지 폭력은 늘 우리 곁에 살아 숨쉬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발전해가는 '과학적 근대'에 현대인들은 매몰되어 있다. 깨어 있는 지식인이라고 다를 바 있겠는가. '진보와 보수의 근대'라는 것도 명명할 수 있을 것이다. 

빈 라덴의 사살을 기점으로 소위 세계의 보안관 미국이 정의의 승리를 위한 축배를 들고 있다고 한다. 9.11테러의 주범으로 지목된 자를 사살했으니 정의가 승리했다는 것이다. 불과 몇 년전 흑인으로 처음 미국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세계적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버락 오바마의 책임 하에 말이다. 

오바마 당선 당시는 어떠했는가. 다른 나라는 잘 모르겠지만 한국의 경우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민주주의의 발전에 대해 긍정적 평가와 더불어 개인적 기대가 만연했다. 게다가 부시 아저씨에게 질렸던 시대를 종식하고 이른바 진보라 하는 민주당 출신의 대통령의 시작이니 세계 도처에서 진보라 스스로 자임하는 사람들의 기대는 정말 대단했으리라. 

그런 기대조차도 돌이켜 보면 서구가 만들어 낸 '근대'의 정형돈식 늪에 빠져 허우적댄 것이 아닌가. 복수를 했어도 진보이니 눈감아 줄 수 있다? 혹은 우리 나라에서 벌어진 일도 아니고 우리의 생활과는 밀접한 관련이 없으니 수수방관해도 좋다?

나는 근대가 만들어 낸 국가의 폭력을 혐오하고, 자본주의로 인해 고유한 인간사회의 이성이 말살되어가는 것도 증오스럽다. 하지만 '진보'와 '보수'놀이를 하는 정치적 인간들은 더더욱 싫다. 아울러 종교를 이용해 장난치는 자들도 짜증난다. 이것에 대한 근거는 가까운 역사를 보면 이런 것들은 충분히 드러난다. 

이토 히로부미, 처칠, 히틀러, 마오쩌둥, 사담 후세인, 체게바라, 박정희, 전두환 등 지금 떠오르는 근대의 몇몇 인물만 봐도 그렇다. 이 가운데 겉으로는 평화를 이야기했던 사람도 있지만 비폭력을 실천했던 사람은 오로지 '간디'밖에 생각나지 않는다. 결국은 대체로 '이상향'에 대한 설득력 있는 주장이었다 하더라도 투쟁이란 이름 하의 다른 형태의 폭력이었을 뿐, 비폭력이나 평화를 위한 제대로 된 실천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시대적 맥락에 비춰 보았을 때, 이상실현을 위한 폭력은 어쩔 수 없었을 것이라 이해하듯 말한다. 난 이 역시도 서구가 만들어 낸 '정당한 폭력의 근대'의 덫에 빠진 것이라 본다.   

난시통쉬에. 일본어 시간에 본 "甜甜私房猫 "(한국에서는 '치즈 스위트 홈'이란 제목이더구만)란 만화인데, 무척 재미있더라구. 한 편이 모두 3분 이내라 끊어서 보기도 편하고, '한 가족과 길냥이의 성장기'라고 할까. 유빈이가 알아듣지는 못하겠지만, 영상 보면 좋아할 거 같아. 뽀로로 대통령만 봐서는 안 되잖아? 한국에서 구현이 잘 될려나 모르겠다. 한국 사이트에도 검색해 보면 영상이 있는 거 같더라구... http://www.youku.com/playlist_show/id_1573226_ascending_1_mode_pic_page_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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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vicon of http://nanxi95.egloos.com BlogIcon 허난시 | 2011/05/14 23:15 | PERMALINK | EDIT/DEL | REPLY
나중에 유빈이한테 잘 보여줄게요..ㅎ
위에 사진 보니 살도 조금 붙고 건강해 보이는 듯...
조만간 또 전화합지요..
Favicon of http://www.zzacnoon.net BlogIcon zzacnoon | 2011/05/16 00:23 | PERMALINK | EDIT/DEL
이제 난생 처음으로 80kg에 육박하고 있어. 막상 몸이 무거워지니 이게 건강한 건지 모르겠네. 갑상선이 이제 반대로 가는건가 싶기도 하고...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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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06 02:10

토요일 이후 지독히도 누워 있었던 관계로 이제는 출타할 수 있는 명분이 생기는 내일이 기다려지는 한편, 기다려지지 않는다. 네 시간 가량은 책을 읽었고, 영화를 이십 여 분 보다 말았다. 빨래를 개었고, 세탁한 운동화의 끈을 매었다. 내일의 끈을 매기 위함은 아니었고, 단순한 가사의 사소함이었다. 냉동실에 얼려 두었던 밥을 전자렌지에 돌려 두 끼니를 먹었는데, 침대에 앉아 김치찌게와 어묵볶음을 차례로 먹으면서 렌지에 돌린 밥알의 일부가 굳어 버리는 현상에 궁금증이 일었으나 더 이상의 추적은 하지 않기로 했다.

좀 쉬었다는 결과로 밀린 일에 대한 적지 않은 압력을 스스로에게 주고 받고 있다. 아프던 다리에 파스를 두 번 붙였다가 떼었는데 오히려 가려움증 때문에 지금은 벌겋게 일어난 상태이다. 어쩔까 고민을 하다 걷지 않으니 통증이 사라져 다시 일 주일 정도 경과를 보기로 했다.

담배를 한 대 물어 피웠다. 그제부터 삼분의 일 정도 흡연량을 줄였다. 담배 몇 대 줄이는 것도 은근히 금연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냥 이미지에 불과한 것이지만, 소화가 잘 되지 않는 것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드는 것은 사실 더 흡연하고 싶다는 자가최면이다. 현관 밖에 나가 담배를 피우게 되면 1층 현관에 드나드는 사람들을 종종 목도하게 된다. 젊은 남녀인데 옷차림이나 얼굴의 생김새 등을 보고는 중국 사람일까 한국 사람일까 의미없는 유추 놀이를 하였다. 결론음 금세 나기 마련이지만, 담배를 피우는 짧은 시간 동안에 내가 곧잘 하는 놀이가 되었음은 반론의 여지가 없다. 순간 공간적 혼동이 다시금 나를 흔들어 깨운다. 집안이라는 아주 작은 공간이라던가 학교라는 단층적 공간에 있을 적에는 나의 공간의식은 비교적 선명한 편이다. 그런데 간혹 이 밖의 공간에 있을 때 가끔 이 곳이 어디인가 하는 혼란이 발생하고는 한다. 며칠 전 3호선 지하철 역에 오래된 일본 친구를 바래다 주고 그 밑 맥도날드에서 햄버거를 우적우적 입 안에 넣던 그 시각에도 그런 생각이 들었고, 또 그 전에도 몇 차례 이런 경험들이 있었다. 과연 공간적인 문제일까. 아니면 어느 미묘한 시간적 교차가 만들어 내는 환상인지도 모르겠다.

은희경의 『새의 선물』을 보면 이런 문장이 나온다. "삶도 그런 것이다. 어이없고 하찮은 우연이 삶을 이끌어간다. 그러니 뜻을 캐내려고 애쓰지 마라. 삶은 농담인 것이다."(405쪽.) 이 표현에 꽤나 공감을 표했지만, 오늘은 그러기 싫다. 난 오늘을 우연도 미필적 고의도 아닌 필연적인 생활을 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삶도 마찬가지다. 냉소적인 사람은 삶에 성실하다. 삶에 집착하는 사람일수록 언제나 자기 삶에 불평을 품으며 불성실하다."(251쪽)란 문장에도 반박을 하고 싶다. 삶에 집착하는 사람들이 현실에서 목에 가득 힘을 주며 살아가는 것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란 생각에 이르자 내가 앞으로 어떤 결과를 내어야 한다는 압박감이 다시 머리를 쳐든다. '왜'라는 것, '무엇 때문에', '설명을 하는 이유' 에 대한 모든 것들이 사실 현실적 결과를 위해서이다. 삶이 이렇게 현실적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서 살아야 하는 것인가란 의문이 들자 나오는 얕은 한숨은 어쩔 수 없다. 그래도 때로는 심상한 하루가 심상치 않은 모든 것을 생산하기도 할 것이다.      

이홍규 | 2011/04/06 17:34 | PERMALINK | EDIT/DEL | REPLY
독서와 경험, 그런 것을 많이 즐겨라.
그냥 행복하면 된다.
Favicon of http://www.zzacnoon.net BlogIcon zzacnoon | 2011/04/06 22:21 | PERMALINK | EDIT/DEL
학기 중이라 바쁘시죠? 15일에 대만에 있던 연광석씨도 상해에 들어오고, 19일에는 이기현도 2박3일로 출장을 온다네요. 한국이나 여타 다른 곳에서 오는 지인들과의 만남이 종종 쏠쏠한 즐거움을 주네요. 필요한 책 있으심 말씀해 주세요. 기현이 편에 딸려 보내던가 할 수도 있구요. ;)
이홍규 | 2011/04/08 20:55 | PERMALINK | EDIT/DEL | REPLY
충칭모델(重慶模式) 관련 책이 나왔다던데, 기현이 편에 보내주면 고맙겠구먼.......ㅎㅎ
Favicon of http://www.zzacnoon.net BlogIcon zzacnoon | 2011/04/10 02:27 | PERMALINK | EDIT/DEL
네.알겠어요. 안 그래도 아마존에서 구매했습니다. 마침 환불했던 책들도 있구요.
이홍규 | 2011/04/16 13:21 | PERMALINK | EDIT/DEL | REPLY
성철아. 미안하지만 韩毓海:《五百年来谁著史》 도 부탁해도 될까?
Favicon of http://www.zzacnoon.net BlogIcon zzacnoon | 2011/04/16 23:03 | PERMALINK | EDIT/DEL
주문했습니다. 기현이가 화요일에 오니까 그 전에 책 받아서 전달할 수 있을 거에요. 지금 광석이랑 우리집에서 며칠간 묵기로 해서 같이 놀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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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20 07:32

나는 편의점에 간다. 많게는 하루에 몇번, 적게는 일주일에 한번 정도 나는 편의점에 간다. 그러므로 그 사이, 내겐 반드시 무언가 필요해진다.

(.........)

큐마트에 다니면서 내가 한 가장 큰 착각은 푸른 조끼의 청년과 사적인 말을 하지 않으므로 내 사생활이 전혀 드러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 데 있었다. 내가 아는 큐마트는 '어서 오세요'와 '감사합니다'의 세계였다. 그의 관심은 그가 파는 물건에 나의 관심은 내가 사는 물건에 있어야 마땅했다. 그런데 큐마트를 오래 다니다보니 나는 뜻밖에 의도하지도 원하지도 않은 내 정보들이 매일매일 그가 들고 있는 바코드 검색기에 찍혀나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예컨대 그는 나의 식성을 안다. 대여섯 종류의 생수 중 내가 어떤 물을 가장 좋아하는지, 자주 사가는 요구르트가 딸기맛인지 사과맛인지, 흑미밥과 쌀밥 중 무엇을 더 선호하는지 등을 말이다. 원한다면 그는 내 방의 크기도 추측할 수 있다. 쓰레기봉투를 매번 10리터를 사가는 나는 결코 큰 방에 살고 있을 리 없다. 그는 나의 가족관계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새벽마다 와서 햇반을 사가는 여자, 필수품을 스스로 사는 어린 여자, 젓가락은 한개만 가져가는 그 여자는 독신이리라. 그는 나의 고향을 안다. 편의점에 겨울옷을 정리한 택배를 부치러 갔을 때, 그는 수수료를 받으며 내 주소를 확인했다.

(........)

그는 나의 식생활에서 성생활에 이르기까지 모두 '보고'있다. 왜냐하면 편의점이란 모든 걸 파는 곳이기 때문이다. 큐마트는 나의 가장 오랜 단골이 된 덕에, 청년은 내게 한마디의 사적인 대화를 걸지 않고도, 나에 대해 그 어떤 편의점보다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나도 모르는 나의 습관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

나는 편의점에 간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나는 편의점에 간다. 그사이 그곳에선 어떤 사건도 일어나지 않았다. 큐마트의 푸른 조끼의 청년이 몇번 바뀌었으나 그곳의 남자들은 항상 푸른 조끼를 입고 있으므로 상관없다. 몇번 더 휴대폰을 충전하러 갔으나, 사장들은 충전기를 없애고, 일회용 배터리를 들여놓았다. 몇번의 폭설이, 장마가, 안개가 있었으나 그것은 원래 그런것이므로 상관없다. 이따금 '말'이 듣고 싶을 때 당신은 수다쟁이 사장이 있는 세븐일레븐으로 가라. 비디오방에서 서로를 안았던 어린 연인을 퇴학시킨 선생은 컵라면을 사 먹고, 아이를 지우게 한 남자는 목이 말라 맥주를 사러 왔고, 아직도 아버지께 꾸중 듣는 백수 청년은 오늘도 담배가 떨어졌을 것이다. 그리하여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에 대한 이 기록은 마침내 시시해진다.

한번도 휴일이 없었던 그곳에서 나는-나의 필요를 아는 척해주는 그곳에서 나는-그러므로 누구도 만나지 않았고, 누구도 껴안지 않았다. 내가 편의점에 갔던 그사이, 나는 이별을 했고, 찾아갔고, 내가 누군가를 죽일 수도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아무도 알지 못한다. 그 거대한 관대가 하도 낯설어 나는 어디를 봐야 할지 몰라 서성이고 있다. 당신이 만약 편의점에 간다면 주위를 잘 살펴라. 당신 옆의 한 여자가 편의점에서 물을 살 때, 그것은 약을 먹기 위함이며, 당신뒤의 남자가 편의점에서 면도날을 살 때, 그것은 손을 긋기 위함이며, 당신 앞의 소년이 휴지를 살 때, 그것은 병든 노모의 밑을 닦기 위함인지도 모른다는 것을. 당신은 이따금 상기해도 좋고 아니래도 좋다. 큐마트, 세븐일레븐, 패밀리마트는 모른다. 편의점의 관심은 내가 아니라 물이다, 휴지다, 면도날이다. 그리하여 나는 편의점에 간다. 많게는 하루에 몇번, 적게는 일주일에 한번 정도 나는 편의점에 간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사이, 내겐 반드시 무언가 필요해진다.

출전: 『달려라 아비』, 창비 2005

문장의 문학집배원에서 가져옴. 동영상으로 낭송과 영상을 다시 보고들을 이는 아래를 클릭.

http://www.munjang.or.kr/mai_multi/djh/content.asp?pKind=05&pID=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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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15 00:50

'가을, 잠시 빛났던 30대 고백'은 아래의 시 네 편의 제목을 조합한 것이다. 근래 시크릿가든이란 드라마를 보니 작가가 이와같은 작법으로 여러 소설집과 시집의 제목들을 모아 조금은 감성적인 글을 만들어 낸 것이 장안의 화제(?)라고 한단다. 글쎄, 내 생각에는 반댈세~라고 말하고 싶지만은 시크릿가든을 옹호하는 수많은 여성동지들의 비난을 한 몸에 받고 싶지는 않다.

알바를 끝내고 돌아오는 길에 시집을 뒤적거리다 문득 이 생각에 이르자 기존에 알고 있던 시 가운데 세 편을 골라내고 마침 가지고 있던 시집 가운데 하나의 제목을 조합하니 상기와 같은 문장이 만들어진다. 뭐 자료들과 약간의 감수성 정도만 있다면 누구나 쉽게 조합해 낼 수 있는 형태이다. 뭐 이런 조합방법에 대한 주절주절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고 뭐랄까. 일련의 갈피들이 결국 사람 사이의 '사랑'이란 단어로 귀결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다시 칼끝을 내 자신에게 돌려 복기한다. 시들의 내용을 다시 더듬고 나니 더 알 수 없게 되어버린 사랑. 30대에 접어 들어 했던 사랑의 대상에 대한 그리움에는 얼만큼의 진정성을 띠고 있었을까. 나이에 쫓겨 혹은 외로움에 쫒기듯 고의적으로 찾았던 사랑은 아니었는지. 쉬임없이 흘러가는 하루의 무료함 속에 단지 '달콤함'으로 포장된 사랑이란 허상이 필요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한 때는 사랑에 대해 이론적으로나 실천적 측면에 있어 무지막지한 자신감(?)을 보유했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오늘 지금 여러 단편들을 꺼내어 재차 꿰맞추어 보고 나니 자신감의 상실 정도가 아니라 내가 이제 진정성을 가진 사랑을 할 수 있을까 조차 의심스러워진다. 삼십대의 사랑이 아니, 머리가 굵어지고 하는 사랑이 대개 그런 것임을 머리로는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아직은 가슴은 받아들일 수 없다. 몸은 형편없이 낡아 버렸지만, 아직 한 가닥 청춘만은 남아 있다는 믿지못할 믿음의 발로 때문이다.

아직은 그리움의 전깃줄에 감전된 나를 원한다. 중층적 이미지로 승화된 완전한 시크릿가든식 사랑이 아니라 어리숙하지만 신열에 들뜬 사랑을. 무모한 감전을 꿈꾼다.


1. 가을

         -함민복-


당신 생각을 켜놓은 채 잠이 들었습니다.



2. 잠시 빛났던

              - 최승자-


(잠시 빛났던 어느 외재적 불빛

아스라하다)


쉬임없이 하루하루가 흘러간다

詩도 담배도 맛이 없다

세월아 하 짧아

詩 한 편, 담배 한 대에

한 인생이 흘러간다


(공허여, 허공이여)


3. 삼십대

        -심보선-


나 다 자랐다, 삼십대, 청춘은 껌처럼 씹고 버렸다. 가끔 눈물이 흘렀으나 그것을 기적이라 믿지 않았다.

다만 깜짝 놀라 친구들에게 전화질이나 해댈 뿐, 뭐 하고 사니, 산책은 나의 종교, 하품은 나의 기도문,

귀의할 곳이 있다는 것은 참 좋은 일이지, 공원에 나가 사진도 찍고 김밥도 먹었다, 평화로웠으나, 삼십대,

평화가 그리 믿을 만한 것이겠나, 비행운에 할퀴운 하늘이 순식간에 아무는 것을 잔디밭에 누워 바라보았다,

내 속 어딘가에 고여 있는 하얀 피, 꿈속에, 니가 나타났다, 다음 날 꿈에도, 같은 자리에 니가 서 있었다,

가까이 가보니 너랑 닮은 새였다(제발 날아가지 마), 삼십대, 다 자랐는데 왜 사나, 사랑은 여전히 오는가,

여전히 아픈가, 여전히 신열에 몸 들뜨나, 산책에서 돌아오면 이 텅 빈 방, 누군가 잠시 들러 침만 뱉고 떠나도,

한 계절 따뜻하리, 음악을 고르고, 차를 끓이고, 책장을 넘기고, 화분에 물을 주고, 이것을 아늑한 휴일이라 부른다면,

뭐, 그렇다 치자, 창밖, 가을비 내린다, 삼십대, 나 흐르는 빗물 오래오래 바라보며, 사는 둥, 마는 둥, 살아간다

 

4. 고백

      -고정희-


너에게로 가는

그리움의 전깃줄에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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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27 03:32
"바람이 분다.
마른 나뭇가지들이 허공을 할퀸다. 긴 코트 차림의 여자들이 길고 곧은 머리칼을 나부끼며 종종걸음 친다. 어디선가 날아온 흰 전단지가 택시 앞유리의 와이퍼에 걸려 세차게 퍼덕거리다 찢기며 다시 날아간다."
한강, 『바람이 분다, 가라』.(서울: 문학과 지성사, 2010), p.76.

상하이의 겨울바람은 유명하다. 아직 이곳은 겨울도 아닌 그렇다고 가을도 아닌 어정쩡한 날씨이다. 낮에는 상온 15도에서 18도까지 기온이 오르지만, 이렇게 바람이 부는 날에는 일기예보에서 말하는 최저온도인 8도 이하로 체감온도가 급격히 떨어진다. 때문에 옷입기가 굉장히 난감한 날들이 지속되고 있다. 잠시 정도야 괜찮겠지 하고 창가에 나가 창을 활짝 열고 담배를 태웠다. 그게 화근이었을까, 두통으로 모든 신경이 몰리고 있다.

오늘은 이곳에 와서 알게 된 석사생 젊은 여자선배(?)와 저녁을 함께 하였다. 단언컨대 처음 와서 어렵사리 대학원 후배와 한 번 식사를 한 이후로는 처음 갖는 이성과의 식사자리였다. 이성과의 만남을 강조하려는 것 보다는 사실 이곳에 와서 누군가와 약속을 하고 식사를 한다는 것 자체가 그만큼 희소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 곳에 같이 왔고 집도 같이 얻었던 하우스메이트는 학교에서 같이 온 친구들이 많아 늘 바쁘고, 또 학교 형을 통해 소개받은 제법 젊은 남자친구는 도서관 친구로 발전되어 한동안 밥동무 겸 말동무 역할까지 충실히 되었지만, 최근 그 친구에게도 중국 친구들이 생겨 슬슬 만남의 횟수가 적어지고 있던 찰나였다.  물론 일주일 전 10학번 박사반 친구들과도 늦은 개강모임을 하면서부터 나 역시 사교의 폭(?)이 조금은 넓어지고 있기는 하다. 다만 기본적으로 박사생들은 각자 할 일들이 많아서인지는 수업 시간이 끝나면 으레 뿔뿔이 흩어지기 마련이라 아직 정기적으로 만나 '대화의 가뭄'을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이다. 하물며 아직도 형편없는 중국어로 떠들어야 하는 관계로 내밀한 대화의 수준은 바랄 수도 없는 상황이다.
 
정말 대화가 가물었기 때문이었을까. 오늘 자리를 함께 한 친구는 아마도 나 때문에 꽤나 혼이 났을 법하다. 나이 들면 말이 많아지는 법인데, 외국에 있는 나이 든 사람이 하는 얘기가 좀 많았을까 싶다. 게다가 대화상대가 꽤나 친절하고 상대의 말을 잘 들어주는 착한 성격의 소유자인 것 같아 마음이 좀 많이 풀렸던 것 같다. 술 한잔 하지 않고, 4시간 가까이 떠들었으니 오늘 나의 한국어 구사는 아마도 상해 정착 이래 최고의 양을 기록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날부터였다고 생각한다. 그 순간 당신이 내 손을 잡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당신의 손의 원소가 내 손의 원소와 같다는 것을 간절하게 실감했기 때문이라고. 아니, 모르겠다. 많은 시간이 흘러서가 아니다. 당신에 대한 기억은 어떻게도 단언할 수 없다. 모른다고밖에는. 모든 것이 덩어리로 다가왔다고밖에는. 스며들고 번져갔다고밖에는. 당신의 그림 속에 떨고 있던 모세혈관들처럼."
위의 책, p.62.

한 사람의 말을 받고, 또 나의 말을 상대방에게 준다는 것은 아주 용이한 것이지만, 그 말들이 상호간에 얼마나 온전히 흡수되느냐에 따라 인간관계의 폭이 결정된다. 그것은 위의 글에서 말하는 것처럼 실재하는 것이다. 한국보다 늦은 상하이의 겨울이 곧 찾아오게 되면 정말 추위와의 전쟁을 치뤄야 한다. 난방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에서 전기장판 하나로 겨울나기를 시도해야 하는;; 또 손발 불어가며 타자도 쳐야 한다니, 아~ 안 그래도 겨울이 끔찍한 나에게는 정말 그저 쉽게 흘려 들을 수 없는 현실이다.

헤어지고 집에 들어와 한국사람들끼리 주고받는 중국어 문자질을 생각해 봐라. 이 역시 조금은 재미있는 상황이다. 내가 예전부터 흔히 하는 농담 중에 하나가 별다른 운동 없이 호흡 운동 하나만으로 삶을 지탱한다는 것이다. 물론 그만큼 게으르고 운동 하지 않는 스스로의 삶을 비유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물리적인 호흡만을 뜻하지 않을 때가 있다. 그만큼 중의적인 말이지만, 상호간 중국어 전달의 한계 탓인지 오늘 만난 그네는 '삶에 있어서 건강은 그만큼 중요한 것이니 건강에 주의했으면 좋겠다.'라는 덕담을 해주었다. 그러고 보니 이곳에서 그런 따뜻한 말을 해주는 사람도 처음이라 무척이나 감사한 일이다.  

역시나 유형적인 것보다는 무형적인 것들이 더 큰 효력을 발휘하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바람이 불어 몸은 흔들리지만, 마음은 흔들리지 않는 밤이다. 오늘 함께 한 그 친구에게도 내 존재가 조금은 따뜻한 힘이 되었다면 좋겠지만, 역시나 말을 너무 많이 한 것은 아무래도 '미친 존재감'을 여실히 증명한 것이리라.  

한편, 말이 많아진다는 것은 그만큼 타인의 말을 경청하는 것이 줄어들면서 보수화 된다는 측면이 있다. 아~이것 역시 스스럼없이 인정해야 하는 순간이 온 것인가. 


사족: 북측의 연평도 도발사건은 유학생들에게도 초미의 관심사이다. 중국 친구들도 사건이 발생한 다음 날에 바로 의견을 물어볼 정도로 역시 관심이 많은 상황이다. 조지워싱턴호의 서해행이 우려대로 최악의 수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울러 3~4일의 시간동안, 뉴스도 무척이나 관심깊게 지켜봤는데, 새 국방부 장관 낙점과 관련된 이 뉴스는  정말이지 어처구니가 없다. 연평도 포격도발에 대한 군의 대응을 보면서 MB가 군에 대한 불신을 자주 나타냈다니... 물타기도 이런 물타기가 또 있을까 싶다. 군의 통수권자는 바로 대통령 아니던가. 무릇 윗사람이라면 자신의 책임부터 통감해야 함은 자명한 사실일 터인데... 군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니 우습다. 설령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중지를 모아 위기를 넘어서야 하는 바로 이 순간에도, 자신의 말바꾸기를 옹호하기 위해 끊임없이 정치적 계산을 일삼고 있는 이를 어찌 믿을 수 있단 말인가. 외국에 나와 있는 사람 마음도 이와 같을지언대 고국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은 오죽할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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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13 06:32

언젠가부터 '일하듯 공부하기'라는 신념을 가지게 되었다. 쉽게 풀이하자면 요즘 근로추세에 맞춰 1일 8시간, 주 40시간은 최소한 공부를 해줘야 한다는 개념이다. 물론 이 시간 안에는 학기 중의 수업시간도 포함되어 있다. 수업이 있는 날은 그만큼 공부량이 줄 수도 있겠지만, 수업시간에 비례해서 또한 그만큼의 야근시간(?)도 늘려야 한다는 것이다. 가장 이상적인 것이야 주중에 열심히 일하고 주말에 푹 쉬어주는 뭐 이런 형태겠지만...^^;


사실 공부에 욕심을 가지게 되다보면 1일 8시간도 턱없이 부족하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이를테면 오전 9시부터 하루를 시작한다고 가정하자. 학기 중이라면 평균 1일 2~3시간의 수업이 잡혀 있을 터(이것도 모두 오전이라 가정해 보자), 이 시간을 제외하면 점심 먹고 오후의 댓 시간 남짓 한 시간이 남는다. 저녁을 먹고, 야근을(?) 두 세시간 정도 해 주고 퇴근한다 하자. 그럼 9시~10시가 훌쩍 넘는다. 집에 와서 인터넷 질도 좀 하고, 티비도 좀 봐 주고 그러다 보면 잠 잘 시간도 부족해지는 게 사실이다. 그렇지만 고시생이 아닌 이상(고시생은 정말 물리적인 시간과의 싸움이라 할 수 있다.), 충분한 수면량까지 조절할 필요는 없다. 개인 차에 따라 6~8시간은 충분히 자야 하는 것은 당연한 사실.


시간에 맞춰 수업에 참석해야 한다는 것 이외에는 학생만큼 자기 시간 조절 가능한 직종이라고는 이들을 가르치는 선생 밖에 없다. 물론 선생들도 학생과 비슷한 패턴으로 살아야 한다. 강의하는 시간 이외에는 수업 준비와 자기 공부를 해야 할테니 말이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우리가 학생이란 것에 너무나 쉽게 면죄부를 준다. 그리하여 여기서 사귄 친구들과의 관계도 돈독히 해야 하고, 또 인터넷을 통해 요즘 유행한다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해 인맥관리도 해야 한다. 또 각종 경조사(해외 유학생은 여기에서 일정한 해방을 누림)도 챙겨야 하고, 한국에 있는 친구, 가족도 챙겨야 한다. 아. 연애도 해야 하지. 또 생활에 필요한 이런저런 잡일도 해야 한다.


이렇게 열거하고 나니 '학생'이 참 바쁜 직종이다. 이렇게 바쁜 직종임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흐르면서 자가 발급 면죄부에 의한 괴로움이 시작된다. "아~ 나 이렇게 놀아도 되는 것일까. 뭐 하루 쯤이야 어때.^^; 남들도 나랑 비슷하지 않겠어! 오늘은 컨디션이 그닥 좋지 않으니 좀 쉬고 내일부터는 열심히 아자아자~" 이런 날들이 축적되는 어느 날에는 이제 두 가지 길 뿐이다. 하나는 내가 학생인지 백수인지 모를 정도의 '목적 상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뭔가 스스로 괴롭긴 한데 당최 이유를 알 수 없는 '심적 고통'이다.


반면 미친듯이 공부하는 사람들에게서도 문제가 발견된다. 매일매일 많은 것을 놓아가며, 공부를 함에도 불구하고 뭔가 알 수 없는 불안감은 점차 커져만 간다. 성공, 취업, 인정, 중층적인 여타 욕망들. 나름대로의 반듯한 목적이 있음에도 허전한 것은 공부가 결국 그 어떤 수단에 됨에 있다.


"지식인의 사유는 끊임없이 사유 그 자신을 되돌아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지식인의 사유는 이 되돌아봄을 통해서 언제나 사유 그 자신을 특이한 보편성으로 파악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아무리 어린 시절부터 주입된 계급의 편견으로부터 벗어나 이미 보편적인 것을 획득했다고 스스로 믿는다고 할지라도, 지식인의 사유는 바로 이 되돌아봄을 통해서 사유 그 자신을 이 계급의 편견에 의해 은밀하게 특이화된 보편성으로 파악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사르트르, 지식인을 위한 변명, 박정태 역, 63)


선배 형의 블로그에 인용된 글귀를 나 역시 인용해 본다. 엉아는 '선비는 없고 영혼없는 테크니션들만 들끓는 현실'을 비판하기 위한 글이지만, 난 뭐 아직 테크니션도 아니니 비판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 다만 적극 동의한다. '성찰'없는 공부란 있을 수도 없고, 기계적인 공부에도 '성찰'이 개입되지 않는다면 바로 무의미한 것이 되어 버린다.


그렇다. 난 '목적'과 '성찰'의 변증법적 관계에 주목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는 '가치'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 가치란 것은 관점에 따라 가차없이 재단되어 버리는 것에 불과할 지 모르겠지만... 고스톱은 고와 스톱을 얼마나 적시에 잘 활용하느냐에 결정적이겠지만 공부에는 스톱이 없다. 일단 시작하면 끝까지 '고'일 뿐이다. 다만 내가 고스톱(?)을 시작한 동기와 가치에 대한 반성이 요구될 뿐이다. 소싯 적부터 고스톱을 즐긴 까닭은 같이 즐기기 위함이었다. 공부도 이와 마찬가지다. 열심히 해야 같이 즐길 수 있고, 또한 즐길 수 없다면 열심히 한 보람도 없을 것이다.        


참... 이야기가 샛길로 빠졌는데 공부하는 것에는 물리적 시간만큼 사유의 시간(아마도 노는 것?)도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 2010/11/13 18:51 | PERMALINK | EDIT/DEL | REPLY
비밀댓글입니다
Favicon of http://www.zzacnoon.net BlogIcon zzacnoon | 2010/11/14 05:04 | PERMALINK | EDIT/DEL
아마도 그래야겠죠? 뭐 또 대상이 없으면 없는대로 즐기면 될 것 같습니다. 그것도 뭐 살아가는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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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04 04:28

곧 세차게 내릴 것 같은 날씨임에도 장마기간은 그답지 못하고 소강상태에 있다. '기후변화'라는 말이 한창 각광을 받는 중이다. 알 수 없는 것이 날씨라고 하지만, 그동안 인간들의 꽤나 오랜 관찰 속에서 기후는 결국 일정한 법칙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이 목하 심각한 변환의 상황에 처해 있지만, 사람 마음처럼 그 파고의 고저가 심할까 싶다.

만 하루 넘게 심하게 너울치던 내 마음도 일시 소강상태에 접어 들었다. 가족과 내 일에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 주는 주위의 관심 때문이다. 한없이 벼랑 밑으로 내던져진 기분도 별다른 말없이 식사를 챙겨주는 어머니와 몇 통의 전화를 통해 날 위무해 주었던 인생 선후배들의 몇 마디 덕에 한결 나아졌다.

인간이란 본디 고독한 존재임을 다시금 상기한다면 이는 물론 거짓으로 점철된 것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역할이 차지하는 비중에 대해서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예정보다 다소 이른 목요일 오전에 중국 상해 복단대학으로부터 정식 합격통지서를 받았다. 3분의 1의 성공이란 말 밖에 할 수 없지만, 유학생활에 필수적인 학비, 거주비, 생활비 가운데 학비를 면제해 주겠다는 자그마한 문구는 불안 반, 희망 반의 하루를 보내게 해주었다. 다음 날 오후 늦게, 한국정부 국비유학생 합격자 발표가 있었던 탓이다. 허둥지둥 면접을 보고 난 직후에는 솔직히 많은 기대를 품었다. 그런 다음 짧지 않은 대기기간동안 점차 깊은 불안감에 시달리지 않을 수 없었지만 말이다. '탈락!' 기대가 컸던 만큼 상처도 급속도로 밀려 들었다.

자조 섞인, 그리고 애달픈 하루 반을 보냈다. 이 시각에 얼마의 사람들이 기쁜 일이 있었겠고, 얼마의 사람들은 또 좌절의 시간을 보내고 있을까. 사실 거짓말이다. 아무런 생각도 들지 못했고, 온전히 나 하나를 간수하지 못했다. 마치 침 흘리는 어린아이의 해맑은 미소와 같았다면 혹시 모를 일이다. 허나 그런 것을 기대하기에는 내 자존이 참으로 영글지 못했다. 무참하고, 여러 가지 기시감에 시달렸다.

몇 단계를 거쳐 이내 소강상태. 이런 소강상태 끝에 잠시나마의 휴식기간을 가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제 내가 모든 것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말을 하고 보니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좀 더 독립적인 여건을 조성하지 못했던 것에 대한 스스로의 원망이 다시 치솟는다. 그러나 거기 까지다.  또 내가 좀 더 잘 준비하지 못했던 것에 대한 자책으로 이어진다.

주위를 둘러본다. 결국 사람의 삶이란 것이 별다른 것이 있을까 싶다. 이제 30 후반을 바라보는 나이라 한다 해도 넘어지고 깨지는 일은 허다하다. 나로 인해 상처받고, 타인에 의해 더 깊어지고 치유받음을 반복한다. 꽤나 인지하고 있다 하더라도 고통으로부터 해방될 순 없다. 늘 착각하고 지내는 것에 불과하니까.

번민의 터널에 다시 진입하든, 혹은 소강상태가 한동안 지속된다 해도 마찬가지이다. 난 곧 하나의 선택을 하게 될 것이고, 그 길을 갈 것이다. 그 와중에 잠시 돌아갈 수도 있고, 많이 번거롭더라도 헤쳐 나갈 수도 있다. 언제나 결정적인 것은 '내가 걷던 길'에 대한 후회와 기쁨 뿐이니까 말이다.    

하피 | 2010/07/05 18:22 | PERMALINK | EDIT/DEL | REPLY
'탈락'이라는 단어만큼 가슴 아프게 하는 것도 없을 듯..
그래도 1/3이 성공했으니 완전 실패는 아닌거죠.
(실패라는 단어가 우습군요.. ㅎㅎ)

잘 헤쳐나가실 것으로 생각됩니다.
더위와 습기에 지치시 마시고 힘내세요~
Favicon of http://www.zzacnoon.net BlogIcon zzacnoon | 2010/07/06 01:46 | PERMALINK | EDIT/DEL
탈락이란 것은 살면서 언제든 접할 수 있는 일이니 크게 개의치는 않습니다. 결정을 내리자 다소 기분은 나아졌지만 앞으로도 더 힘겨운 고비들을 넘어야 할 생각을 하니 암담하긴 합니다. 그래도 뭐 흔치는 않아도 굳건히 이 길을 가는 동학과 선후배들이 있으니 많은 힘이 될 것입니다. 여튼 새로 시작한 직장생활에는 큰 스트레스 없으셨으면 좋겠네요.

그리고 좋은(?) 소식 알려주실 날을 고대할게요.
Favicon of http://oktimes.cafe24.com BlogIcon 콩서 | 2010/07/05 23:28 | PERMALINK | EDIT/DEL | REPLY
소식은 들었다. 잘됐으면 좋은데.. 안됐구나.
어설픈 위로는 걷어치우고 인생선배로서 한마디 건넨다.
난 앞으로 얼마나 살지 모르겠으나..
더이상 테크니컬한 문제따위로 절망하지는 않을거다.
왜? 지엽말단 테크니컬한 것들은 목적이 아니니까.
공부할 놈은 굶어 죽어도 한다.
이 한마디만 기억하자.
Favicon of http://www.zzacnoon.net BlogIcon zzacnoon | 2010/07/06 01:59 | PERMALINK | EDIT/DEL
무슨 말씀이신지 잘 알겠습니다. 이 길 가는데 사실 큰 돈이 필요한 것은 아니죠. 굳이 따지자면 좀 더 편한 길을 가고 싶었던 욕심이 근원이었겠죠. 테크니컬한 문제로 절망하지 않겠다는 마음도 다는 몰라도 조금은 이해는 갑니다만, 전 좀 그 부분에서는 생각이 좀 다릅니다. 소소한 일상의 문제들로 고민하는 필수적인 것이고, 고민하지 않는다는 것은 어찌보면 진실이 아닐 수도 있겠죠. 물론 그 상징적 의미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험로가 놓여 있음을 몰랐던 것도 아니니, 적어도 지금은 좀 우울해도 다시금 일상의 사소한 기쁨들을 되찾아갈 수 있을 것이란 믿음은 있습니다.

여튼 적은 노자돈을 가지고 가는 것이라 걱정은 되지만, 부딪혀 가는 과정 속에서 삶의 동력이 샘솟겠죠. 전 늘 한 가지 바라는 것은 형이 이젠 공부보다는 연애에 좀 신경을 억지로라도 쓰셨으면 하는 바람 뿐입니다. 저번처럼 가짜 환송회가 되지 않도록 확실히 확정되면 그때 연락 드릴게요.
달빛서린 | 2010/07/07 03:14 | PERMALINK | EDIT/DEL | REPLY
흥미로운 곳이네요..

마주 하지 않는 다 했지만, 돌아 돌아 와도, 결국 이 자린가요..

허락없이 자주 방문 할게요... ^^
Favicon of http://www.zzacnoon.net BlogIcon zzacnoon | 2010/07/09 14:36 | PERMALINK | EDIT/DEL
이보다 더 흥미로운 곳들은 아마도 더 무수할 겁니다. 사람사는 것에 관심을 좀 가진다면 모든 이의 삶이 반짝이고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으니까요. 여튼 자주 들러주신다니 저로서는 감사하네요. :)
Favicon of http://virko18.egloos.com/ BlogIcon 데네브 | 2010/07/26 11:41 | PERMALINK | EDIT/DEL | REPLY
상해로 가시는군요!
잘 될거예요. ^^

아, 그리고 저는 서울에 있어요. 4학년이니까 마음이 심난해서-
zzacnoon | 2010/07/28 01:00 | PERMALINK | EDIT/DEL
네. 8개월 가까운 방황의 종착역이 결국 상해로 귀결되었네요. 4학년은 심난하면서도 뭐든 할 수 있는 시기니까 마음이라도 편하게 먹길 바래요. 어차피 언제나 다가오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은 회피할 수 없는 법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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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15 04:17
몸은 끝내 이틀을 버티지 못한다. 방안에 틀어박혀 있는 일상이 못내 지겨운 저녁, 영화시간표를 뒤적거려 근처 극장을 단촐히 찾았다. 상영시간이 임박하여 매표소에 선 나를 위해 남은 표 달랑 한 장. 임상수 감독의 '하녀'를 먼저 관람하였다. 카타르시스가 없다. 홍보물에서는 '서스펜스'를 언급했는데, 그마저도 그저 그렇다. 출연진이 화려하니 연기력이야 두 말할 필요없다. 다만 이정재와 서우의 딸 나미의 함초롬한 표정과 눈망울만이 남았다. 재기발랄하지만 그래도 선겁다. 

종영 후, 남는 30분동안 인근 분식점을 찾아 주린 배를 채웠다. 줄담배를 성급히 피우고, 캔커피 하나 사서 다시 극장에 진입. 이번에는 이창동 감독의 '시'를 보기로 한다. 연달아 본 두 영화에 대한 느낌을 굳이 표현하자면 '비일상'과 '일상'의 대결이라고 할까. 결국 일상이 승리하는 형국이다.

미자 분의 윤정희가 김용탁 분의 김용택에게 묻는다. "어떻게 하면 시를 쓸 수 있나요?", "아무리 시상을 떠올리려 해도 떠오르지 않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요?" 나에게는 그 말들이 이렇게 들린다.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나요?", "아무리 행복해지려 해도 그렇지 않은데 어떻게 해야 하나요?"

김용탁은 말한다. "시가 죽은 시대입니다." 정작 현실에서도 영화에서도 그는 시를 쓰는 시인이다. 아이러니하다.

그리고 영화는 "꽃처럼 살고 싶은데, 일상을 일상처럼 살고 싶은데... 그러하지 못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자는 문화원 강좌 수강생 중에 유일하게 시를 써서 제출하는 유일한 사람이 된다. 시와 다른 일상이 펼쳐졌는데 시를 쓰고야 말다니...

마지막 심야영화였던지라 나와 함께 관람한 관객이라고는 달랑 5명. 극장에서 내려오는 엘레베이터 안에서 그들 중 두 명이 말한다. "지루해서 죽는 줄 알았는데 왜 걔는 별점 다섯 개란 말을 했어." 일면 일리있는 말이지만, 동의하지 않는다. 대중적이진 못하지만, 이처럼 대중적인 영화가 흔할까 싶다.

우리 주위에 널리고 널린 일상을 놓치고, 영화 전반에 흐르는 강물을 놓친 탓이란 생각을 했다. 차를 몰고 집에 돌아오는 한적한 도심. 지하차도를 통과하며 올라오는 길에 환한 가로등이 시야에 들어오고, 이내 앞 차량들의 후미등도 눈을 자극한다. 순간의 밝음에 가려 나머지를 보지 못한다.

일상이란 이와 같다.

몇 가지 더 흥미로운 사실. 윤정희의 본명이 손미자라는 점. 그리고 다음 검색에서 잡히는 윤정희의 주연 출연작만 232편이라는 것. '시'의 평점은 최고점을 향해 달리고 '하녀'의 평점은 혹독하다. 주목받는 '하녀'에 대한 소식은 인터넷에서 흔히 접할 수 있지만, '시'에 대해서는 유달리 심드렁하다. 별점주는 것은 꽤나 무의미한 일이라 생각하는 편인데, 굳이 준다면 4.5를 주고 싶다. 나머지 0.5개는 이창동 감독의 이후 영화들에 바친다.



시를 보고 이것을 보세요.

boramae21 | 2010/05/24 01:10 | PERMALINK | EDIT/DEL | REPLY
그동안 업데이트가 많이 되었네요. 잘 못들려봐서 죄송합니다^^;
전에는 왜 이런 생각을 못했었을까요? 저는 영화의 별점을 보고 있노라면 왜 별 5개가 아닐까.. 그럼 필시 뭔가 아쉬운점이 있을거야 하고 생각했었는데 zzacnoon님께서 쓰신 글을 보고 있자니 감독에게 다음영화를 위해 더 노력하라는 의미로 꽉 찬 점수가 아닌 뭔가 더 채울수 있도록 별점을 줄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비운것이 있어야 채울 수 있다는 이 당연한 원리를 잊어버리고 산게 아닌가 반성하게 되네요. 비움의 미학을 실천할 수 있는 하루하루를 살아야 겠습니다. 날씨가 갑자기 너무 쌀쌀해졌어요. 급작스런 날씨의 변덕에 감기 조심하시구요. 항상 더 나은 오늘을 사시길 바랍니다~~^^화이팅!
Favicon of http://www.zzacnoon.net BlogIcon zzacnoon | 2010/05/25 22:32 | PERMALINK | EDIT/DEL
사람이 많은 것을 통찰한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한 일이죠. 저도 다른 사람들의 말과 글을 통해, 또 현실적 삶의 모습들을 보면서 깨닫게 되는 것이 많습니다. 그래도 비움의 미학이란 것이 어디 쉬운가요. 끝없는 시행착오의 연속인 것 같습니다. 요즘은 좀 단순한 육체노동을 하고 있어서 그런지 확실히 생활이 더욱 심플해지는 것 같네요. 집에 들어오면 눕기 바빠 뭔가 다른 걸 생각한다거나 여유를 즐기기가 참 어렵네요. 며칠 있으면 끝나니 그 때쯤이면 좀 나아지려나요.

이 시간에 벌써 잘 준비를 하다니...ㅎㅎ 하늘이 놀랄 일입니다.
Favicon of http://kaira.tistory.com BlogIcon kaira | 2010/06/01 04:35 | PERMALINK | EDIT/DEL | REPLY
아아. 시를 보기 전 그냥 읽어내려갔습니다.
마지막에 맺혀있는 시를 보고 이 것을 보세요 라는 말에
눈물 찔끔하네요.

괜찮아요.
전, 스포일러같은 것, 상관치 않는 여인이니까요.
으어어엉
Favicon of http://www.zzacnoon.net BlogIcon zzacnoon | 2010/06/06 20:25 | PERMALINK | EDIT/DEL
극장에 갈 여유를 못 만드신 것을 보면 많이 바쁘신가 봅니다. 영화 내리기 전에 시간 내어 꼭 한 번 보러 가세요. 스포일러를 배제한다고 했는데 은근 많이 풍긴 것 같네요. 방청소를 마친 터라 좀 힘에 부치긴 하지만 개운합니다. 2~3평의 작은 방도 청소하기 힘든데 어찌 인생을 깨끗하게 할 수 있는지 의문이긴 합니다. 창밖을 보니 별이 없는 저녁이네요. 이제 여름으로 달려갈텐데 더위 먹지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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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14 03:18

돌이켜보면 삶의 대부분을 불안정이란 녀석과 동거해왔다. 불안정은 나의 친구였고, 애인이었으며, 삶의 동반자였다. 대체로 안정된 삶을 영위하는 것을 '행복'이라 가정할 때, 내 삶은 어쩌면 행복과는 다소 동떨어진 행보를 보였던 것이다.  그러나 행복이란 것은 언제나 개별적인 판단과 잠시간의 심리적 상태에 의존하는 것이라 했을 때 행복이란 것이 과연 무엇인지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다.

살면서 겪는 불안정의 행태는 각양각색이다. 불투명한 자신의 미래에 대한 걱정, 그리고 사랑으로 인한 알 수 없는 불안정, 불안정한 경제적 상황, 그리고 끊임없는 자아와의 충돌 등이다. 결국 불안정은 격퇴시킬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또 다른 안정을 위하여.

이를 위한 수단 역시 각양각색이다. 초기에 진화하는 방식, 일정한 시간이 흐른 다음에 치유하려는 방식, 그리고 마지막까지 자신을 몰아가는 방식. 나는 세 번째 형태의 사람이다. 언제나 내 자신을 벼랑 끝까지 몰고 가는 것이 나만의 방식이자 또한 나만의 치유법이었다. 현실적으로 현명한 방법은 초기 진화 방식이다. 일찍이 이를 인지하여 진압하는 방식은 현실적 상황에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 할 수 있는데, 나는 늘 그렇지 못했다. 언제나 한 가지 문제점에 직면하면 내 자신을 벼랑 끝까지 몰고 간다. 이른바 '바닥론'이라 할 수 있는데 바닥을 치고 나면 치유가 된다고 믿었다. 그런데 과연 그랬을까. 또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렇게 모든 것이 서서히 치유되고 제 자리로 돌아오는 것이라 생각했었는데, 오늘은 도리어 그렇지 않은 것이란 생각이 문득 든다. 아니 어쩌면 진정성의 문제로 환언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나 스스로 나는 진정으로 진실되었노라고 주문을 외는 것이었을지도, 혹은 진정성을 가진 것이라 스스로 최면을 걸었을지도 모른다고.

이 글을 적는 지금에도 나는 조금도 진실되지 않다. 무엇이 나를 진실되게 하지 않는 것인지, 그리고 과연 무엇이 나를 진정으로 진실되게 만들 수 있는 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지금.

그리고 알 수 없겠지만 끝내는 알고 싶다. 당신들의 진실은 무엇이고, 감추는 것은 무엇인지. 한낱 글 따위로 감추는 것은 어디까지인지. 나의 블로그를 통해 묻는다. 어디까지 진실인지를. (정말로 진실에도 정도의 차이가 있다 한다면 말이다.)

'불안정'은 나를 만든다고 했었다. 하지만 '불안정'은 나를 삭제시키기도 한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내 삶은 아직 엷디 엷다는 것이다.

하피 | 2010/04/15 12:47 | PERMALINK | EDIT/DEL | REPLY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불안과 불안정은 다른거겠죠?
Favicon of http://www.zzacnoon.net BlogIcon zzacnoon | 2010/04/15 15:56 | PERMALINK | EDIT/DEL
파스빈더의 파시즘과는 좀 많이 다를테고..불안은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불명확한 감정을 의미할테죠. 불안정은 이보다는 좀 더 현실적이고 명시적인 것일테구요. 뭐 여튼 날씨가 더 따뜻해져야 하는데 말이죠. :)
garlic | 2010/04/20 22:15 | PERMALINK | EDIT/DEL | REPLY
불안정한 사람들끼리 맥주 한 잔 기울이고 싶은 밤입니다..
이것 또한 지나가겠죠?ㅎ
Favicon of http://www.zzacnoon.net BlogIcon zzacnoon | 2010/04/21 00:12 | PERMALINK | EDIT/DEL
오랜만입니다. 잘 지내시죠? 저도 오늘은 날씨만큼은 참 좋아 술을 마시고 싶었는데... 제가 현재 있는 곳에서는 술자리 인원의 성원도 이뤄지기 힘드네요. 언제든 지나가겠지만은, 그것이 상처로만 남을 지, 아니면 전화위복의 기회가 될지는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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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20 01:04

1. “잠시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어요. 시간이 잠시 멈췄으면 좋겠어요."


음악을 듣거나 영상 등을 볼 때 '일시정지'라는 편리한 기능이 있다. 우리가 원하는 바로 그 순간 일시정지할 수 있다는 것은 말할 수 없이 매혹적이다. 허나 우리의 삶이나 사랑에는 '일시정지'란 것은 없다. 삶이나 사랑은 붙잡고 싶어도 하염없이 흘러가는 강물처럼 우리의 마음을 위무하지 않는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2. “아저씨 말대로 신분의 사다리를 한 칸이라도 올라가고 싶었어요. 또 언젠간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그 사다리를 죽기살기로 올라가면 또 다른 누군가가 그 밑에 있겠구나. 결국 못 올라간 사람의 변명이지만...”


지붕뚫고 하이킥의 주인공은 처음부터 끝까지 '신세경'이란 이름으로 포장된 바로 우리 자신들이었음을 상징하는 대사이다. 올라가려고 해도 올라갈 수 없는 현실, 설령 올라간다 해도 느낄 수 밖에 없는 허탈함. 결국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끝없이 주저하는 우리네 인생.  일찍이 김PD가 밝혔듯이, '빈부의 격차'를 소재로 한 한 소녀의 성장기가 될 것이라 하였다. 만약 준혁이와 세경이의 해피엔딩으로 끝났다면 시청자들이 공감했을까. 의사를 사랑한 가정부. 아니 가정부를 사랑한 주인집 아들(준혁)과의 연결이었다 하더라도 시트콤은 현실적 막장으로 치닫았을 것이다. 어떤 면에서 지붕킥은 이런 현실적 조건을 모두 거부하고 '사랑'을 정면에서 다룬 무모함을 보여줬다. 만약 내 가족과 주위의 이야기라면 대체로 이들의 사랑을 부정하지 않겠는가.

  


3. “지금도 가끔 그런 부질없는 생각해. 그날 병원에 일이 생겨서 나한테 오지 않았더라면. 오더라도 어디선가 1초라도 지체를 했다면... 하필 세경씨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만났어도 바래다 주지 않았다면...”



언제나 과거의 편린들로 인해 고통받는 나와 너. 그리고 우리. 그렇지 않았더라면 하고 바라보지만, 언제나 그렇지 않은 삶의 '의외성'들. 살아간다는 것은 어쩌면 이와 같은 '의외성'과 발가벗은 채로 대면하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4. “그래도 마지막에도 이런 순간이 오네요. 아저씨한테 그동안 마음에 담아놓은 말들. 꼭 한 번 마음껏 하고 싶었는데. 이루어져서 행복해요. 앞으로 어떤 시간들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지만 늘 지금 이 순간처럼 행복했음 좋겠어요.”


세경, 그녀의 소원대로 되었다. 나도 원했던 것이 있다. 그리고 앞으로도 바랄 것이다. 언제나 지금처럼 행복한 순간을... 그것은 누구에게나 올 수 있다는 공통점이 있고, 또 언제나 오지 않을 수 있고, 시점이 다르다는 차이점이 있을 뿐이다. 여기에서 변하지 않는 사실은 그저 앞으로 다가 올 봄처럼 짧다라는 점이다. 


5. 인터넷 포털 Daum의 지붕킥 관련 기사에서 "지붕킥, 결말 어떻게 보셨나요?"라는 Poll이 진행중이다.
http://media.daum.net/entertain/view.html?cateid=1032&newsid=20100319202306535&p=newsen
(0시 24분 현재 3808명 참여, 10.03.19 ~ 진행중)
'색다른 마무리에 공감한다'가 666명으로 17.5%, '허무하고 아쉽다'라는 의견에 79.4%(3,024명)의 시청자가 동의를 표했다. 그리고 '의견보류'에 3.1%(118명)



나는 79.4%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지만, 그 마음은 이해한다. 이 투표결과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여전히 왜곡된 사회의 모습을 외면하고, 해피엔딩을 바란다. 알면서도 이런 결과를 자초한다는 것에 이해를 표시하면서도 이율배반적인 감정을 느낀다. 개인적인 생각이다. 세경과 준혁의 관계, 지훈과 정음의 관계는 현실의 눈에서 볼 때 '안정적인 관계'에 지나지 않았다. 세경은 자신의 마음을 처음부터 끝까지 인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현실에 반하는 '고백'을 하고 만다. 그렇게 고백만으로도 '사랑'은 충분할 때가 있다. 반면, 지훈이 진정 사랑하고 설렜던 사람은 누구일까. 시청자 각자의 판단에 맡겨야 할 문제지만. 난 결국 세경이었음을 얘기하고 싶다. 두 커플 모두 순조롭게 잘 되는 것을 시청자들은 원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았기에 이와같은 불만을 토로하는 것일테고. 사랑은 현실적으로 엇갈리는 경우가 더 많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지붕킥의 엔딩은 공감 못할 것도 없다. 이 시트콤은 '이 시대의 사랑'과 '굴절된 이 사회'에 대한 예리한 시각을 잘 보여주는 사례로 남을 것이다.        



6. 마지막 장면의 BGM, 레이첼 야마가타(Rachael Yamagata)의 'Duet'



마지막 장면에 흘러나온 곡이다. Oh, Lover, hold on. 'till I come back again. (오. 나의 사랑 그대로 있어줘요. 내가 다시 돌아올 때까지.)으로 슬픈 음색과 멜로디로 시작된다. 레인 라몬테인(Ray Lamontagne)이란 가수와 함께 불렀고 그녀의 2집에 이 곡이 담겨져 있다. 하이킥이 '일시정지하'자 음악도 '정지'하였다. 그것은 영원한 정지인지, 그야말로 일시정지인지 아무도 알 수 없다. 다만 느낄 수 있을 뿐이다.    그러고 보면 지붕킥의 BGM 역시 매우 훌륭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티비를 통해 버려지는 시간이 참 많은데, 가끔은 버려지지 않는 순간도 있음을 느낀다.



이 글을 그동안 나에게 즐거움과 감수성을 되살려줬던 '지붕뚫고 하이킥'의 많은 제작진과 연기자들, 그리고 함께 공유하였던 또 무엇인가 공유하고 싶은 모든 사람들에게 바친다.  


그래도.. | 2010/03/20 18:09 | PERMALINK | EDIT/DEL | REPLY
꼭죽엿어야됫나..ㅠㅠㅠㅠ
Favicon of http://www.zzacnoon.net BlogIcon zzacnoon | 2010/03/21 01:59 | PERMALINK | EDIT/DEL
저도 아쉽습니다만,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란 찰리 채플린의 말에 동의합니다.
에트랑제 | 2010/03/21 12:27 | PERMALINK | EDIT/DEL | REPLY
마지막 흘러나온 음악에 이끌려.. 잘 정리되고 공감되는 글 보게되었네요. 감사합니다.
Favicon of http://www.zzacnoon.net BlogIcon zzacnoon | 2010/03/21 20:04 | PERMALINK | EDIT/DEL
네. 레이첼 야마가타의 음악은 깊은 울림을 주죠. 안 들어보셨다면 'Over and Over'와 같은 곡들도 찾아 들어보세요.:) 종종 놀러오세요~
Favicon of http://tospring.egloos.com BlogIcon 박양 | 2010/03/22 19:15 | PERMALINK | EDIT/DEL | REPLY
지붕킥에 대한, 그리고 세경양에 대한 애정이 물씬 느껴지는 글이네요.
한 2주간 지붕킥을 못봐서 마지막회 역시 보지 못했지만, 넷상으로 하도 말이 많아 한 10번쯤 본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못 본 회들은 차례차례 보려고 아직 보지 못하고 있는데. 지붕킥에서의 해피엔딩이란 게 뭘까. 저도 생각했었고 그런 환타지를 바란 것도 아니라서 결말이 마음에 안 드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것이 진정 세경양의 계급에 대한 현실의 이야기로 읽는다면 참으로 잔인하다 싶은 감독의 직구가 아닌가 싶기도 하네요.
Favicon of http://www.zzacnoon.net BlogIcon zzacnoon | 2010/03/24 05:09 | PERMALINK | EDIT/DEL
학문의 세계에서도 관점이란 것이 존재하는데, 삶이란 것 역시 그야말로 어느 관점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무궁한 변화를 일으키는 것 같더군요. 경험적인 이야기에 대체로 그친다는 것이 다소 좀 흠이긴 합니다만...

개인적으로는 이 시트콤을 지나친 계급적 해석으로 바라보는 것에 대한 경계심도 있습니다만, 시트콤은 시트콤다워야 한다라는 것 역시 탐탁치 않습니다. 직구면 직구, 변화구면 변화구대로 받아 들이고 그에 맞는 타법을 개발할 수 밖에요. 그냥 쉰소리입니다.
xala | 2010/03/30 11:50 | PERMALINK | EDIT/DEL | REPLY
해피엔딩이었다면 허무하고 아쉬웠을거 같은데요.헤헤.

일종의 강박같은것이 있었는데 이제는 좀 하루가 여유롭네요.

이곡, 들을수록 좋아요.^-^
Favicon of http://www.zzacnoon.net BlogIcon zzacnoon | 2010/03/31 20:36 | PERMALINK | EDIT/DEL
그러게 말입니다. 정말 봄을 알리는 봄비가 내리는 날이네요. 이제 확연한 봄날이 펼쳐질텐데 모쪼록 행복하고 즐거운 봄맞이하시길 바랍니다. 전 근래 좀 낙이 없는 편인데 노력중입니다. 서로 익숙하진 않은 사이지만 종종 놀러와서 글 남겨주세요~ 언제나 환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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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8/25 00:59

"인연이 그런 것이란다, 억지로는 안 되어.
아무리 애가 타도 앞당겨 끄집어 올 수 없고,
아무리 서둘러서 다른 데로 가려 해도 달아날 수 없고잉.
지금 너한테로도 누가 먼 길 오고 있을 것이다.
와서는, 다리 아프다고 주저 앉겄지. 물 한 모금 달라고."

                                            -최명희의 혼불 中-


사용자 삽입 이미지


출처: 「김용민의 그림마당」,『경향신문』, 2009년 8월 24일 월요일.
zhouli | 2009/08/25 08:23 | PERMALINK | EDIT/DEL | REPLY
이젠 정말 아침이 여름아침이 아니네요~^^
잘 지내셨죠?
오랜만에 들러봅니다 ~

..
인연..억지로 안되는 거죠....

기분 좋은일만 생기는
그런 하루 되시길~ㅎ
Favicon of http://www.zzacnoon.net BlogIcon zzacnoon | 2009/08/25 21:00 | PERMALINK | EDIT/DEL
제가 이른 아침을 겪어 본 지 쫌 되어서 날씨가 그렇게 휙 바뀌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저녁 날씨는 확연히 달라졌더군요. 저도 가끔 놀러가고 그래야 하는데 민망하네요. 그래도 가끔 어떻게 지내시나 생각했는데 무탈하신 것 같아 좋습니다. 가을이 걸어오고 있네요~
이홍규 | 2009/09/03 14:38 | PERMALINK | EDIT/DEL | REPLY
어제 잘 들어갔니? 난 어제 조금 과했는지..아직 몸이 찌뿌드하다.
부탁한 중국어 파일 제목 알려줄게. 한어교정(漢語敎程) 제3권(第三冊) 상..이야. 북경어언문화대학출판사에서 나온 거고..연락기다릴게
Favicon of http://www.zzacnoon.net BlogIcon zzacnoon | 2009/09/03 19:43 | PERMALINK | EDIT/DEL
네. 저흰 노래방 찍고 새벽 2시 넘어 들어갔습니다. 노래방에서 2시간 반 넘게 놀았어요. 아까 사무실에서 찾아봤는데 쉽지 않네요. 북경어언에서 나온 한어교정이란 이름으로 한국에서 2003년에 출판된 것(초,중,고급으로 나뉨)이 있는데 그것은 mp3를 구했거든요. 그런데 원서면 좀 다를 것 같기도 하고 해서 중국인터넷을 한 번 찾아보고 있어요. 좀 더 찾아보고 연락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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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23 20:19
"비주류에서 비주류로 떠나간 그에게 우리는 모두 공범."

(나는 노 전대통령의 적극적인 지지자도, 반대자도 아님을 밝혀둔다.)


아침 10시경, 나가야 할 일이 있어 씻으며 노트북을 켰다가 포털 메인의 차마 믿을 수 없는 제목의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이윽고 TV를 켜니 그 믿을 수 없는 기사의 확인. 밖에 나와 있으면서도 틈틈히 쏟아져 나오는 뉴스를 봤고, 방금 사무실에 잠깐 들어오면서도 특별호외를 읽었다. 먹먹하단 표현으로는 지금의 감정을 모두 표현할 수 없다.

인터넷과 언론의 여파를 익히 알고 있는터라, 또 누군가의 죽음을 화제거리로 삼는다는 것 자체가 망설여지기도 했었다. 박연차 게이트 이후 우리는 얼마나 많이 그에 대해 이야기했던가. 청와대, 정치권, 그리고 검찰은 검찰대로 정보를 흘리기 바빴고, 언론은 그것을 재생산하였으며, 또 우리 대중들은 확대재생산의 순환을 요구하였다. 일파만파. 나 역시 언론보도들을 보면서 피의자로서의 존엄이 지켜지길 원하면서도 또 이것이 사실이라면 그에 대한 남은 실날같은 애정 역시 사그라지는 것이라 생각하고 주위 사람들과 의견을 교환하기도 했다.

이에 대한 참을 수 없는 부끄러움!

우리들의 끝없는 설화(屑話)와 설화(舌禍)는 결국 그를 투신자살로 이끌었고, '낡은 한국정치가 만들어 낸 비극'이라는 외신보도는 사태의 본질을 관통하는 제목이었다. 그의 솔직하고 직선적인 화법에 우리는 역시나 직선적인 지지철회로 돌려 주었고, 그는 모든 것에 대하여 '죽음'으로 답했다. 우리는 모두 고개 숙일 수 밖에 없다.
 
2002년, 그의 정치실험에 우리는 환호를 보냈다. 그러나 환호는 잠시였다. 정치개혁의 누적된 피로는 그에 대한 환호를 일순간에 거두게 만들었다. 그러나 과연 모든 것이 그의 탓이었던가. 그 자리가 대통령의 자리였기 때문이었지만 어찌 보면 우리의 인내심이 너무 부족했던 탓이었는지도 모른다.

한동안 온 나라가 어수선할 것임이 자명하다. 그리고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우리는 그의 죽음이 의미하는 바를 깨끗하게 망각할 것이다. 봉하마을과 지금 인터넷에 온통 가득한 부엉이 바위까지 모두 다.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비주류'로 살다 갔지만, "삶과 죽음이 하나가 아니냐."는 유서의 내용은 비주류는 정작 우리 자신이었음을 깨닫게 해준다.

12시간도 안되는 짧은 시간동안 엄청난 분량의 기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 가운데 그가 퇴임 직후 했던 한 마디가 내내 가슴을 친다.

"이 정도면 괜찮은 대통령인데, 국민이 영 눈이 높아 안쳐준다."

그에 대한 애도보다는 당분간 혼자 부끄러워 하며 지내겠다.    
Favicon of http://blog.naver.com/piaomh BlogIcon 박민호 | 2009/05/24 11:51 | PERMALINK | EDIT/DEL | REPLY
참으로 그는 미운 사람입니다. 마음 속을 이토록 온갖 애증으로 물들여놓고 당신 혼자 바위에서 훌쩍 뛰어내리다니.
Favicon of http://www.zzacnoon.net BlogIcon zzacnoon | 2009/05/25 18:10 | PERMALINK | EDIT/DEL
음. 한숨만 계속 나온다. 이런 날들을 잊지 않기로 했다.
Favicon of http://oktimes.cafe24.com BlogIcon 콩서 | 2009/05/27 01:22 | PERMALINK | EDIT/DEL | REPLY
그의 "진정성"에 열광했었고..
또 그의 "진정성"을 의심하며 욕했었는데..
그의 죽음으로 최소한 그 진정성은 증명된 것인가.
그에게 "미안하다"는 말은 내 스스로에게는 과분한 말인것 같다..
그를 "이해한다"
Favicon of http://www.zzacnoon.net BlogIcon zzacnoon | 2009/05/27 23:14 | PERMALINK | EDIT/DEL
음. 평소 얘기하던 것에 비추어 보면 무슨 말씀인지는 다는 아니더라도 느껴집니다. 조만간 동네 어귀에서 한잔 하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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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12 0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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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이라는 것은 자유의지와의 연관성을 비롯한 다방면의 철학적인 테제들을 안겨준 바 있지만, 굳이 어려운 단어들을 꺼내지 않아도 인간이라면 누구든 언제나 이 문제에 직면하고는 한다. 오늘은 또 하나의 작은 선택의 기로에서 어떤 패를 잡을 것인가 하는 문제로 같이 공부하는 친구에게 잠시 유선상으로 주절주절 털어놓았던 바가 있다. 그리고 며칠 전에는 다른 친구와 술을 마시면서도 이런 선택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한 바 있다. 그 친구나 나는 조언이 필요했던 것일까. 어쩌면 주위 사람들의 조언을 구하는 행위는 한 템포 쉬어가는 형태의 일종의 자기 숨고르기가 아닐까. 저기 저 너머 부유하고 있는 부유물들을 모두 건질 수 없다. 하지만 그 부유물들이 사라지기 전까지 무엇을 고를 것인가란 생각 정도는 할 수 있겠지. 그것이 조언을 구하는 과정이자 선택을 내리는 과정이기도 하다.


뻔한 얘기지만 선택이 때로는 너무 힘든 순간이 있다. 한 순간의 선택으로 가슴을 쥐어 뜯으며 통곡하는 이도 있고, 반면에 희열에 차 오르는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으니. 선택의 중요성은 차치하고라도 그 결과의 파장은 예측가능한 범주를 이미 초월하는 것이라 해도 무방할 것 같다.


주말에 별세하신 서강대 장영희 교수의 기사들을 몇 토막 읽었다. 평생 목발에 의지해 살면서도 세 차례에 거친 암과의 투쟁. 결국 장영희 선생은 그 정해진(?) 운명을 거스를 수 없었다. 나보다 스물 두해를 더해야 하는 쉰 일곱해를 살아오면서 그녀는 얼마나 많은 선택을 해야 했을까. 아마도 그녀나 나나 각자가 살아 온 세월만큼 그 선택의 수량의 차는 그리 많이 나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다만 그 처한 환경에서 중압감만은 차원이 달랐을 것은 틀림없을 것이다. 나와 같은 선택의 기로에서도 그녀는 언제나 나보다 더 무거운 길을 걸어가야 했을 것이고, 그런 길의 수없는 반복은 그녀의 자아를 더 없이 단단하게 만들었을테다.


나는 그녀만큼 씩씩하지도, 단단하지도 못하다. 여전히 내 자아는 한 손에 쥐면 순두부처럼 으스러질만큼 연약할 뿐이다. 그럼에도 순두부라고 포기해야 하는 것인가. 그녀가 눈을 감기 전에 완성되었다는 두 번째 에세이집에 나오는 문장으로 끝맺음을 하던 신문기사는 단비가 세차게 내리는 5월 11일 저녁 퇴근길의 나를 더 세차게 뒤흔들었다.

안식년이던 지난해 하반기부터 다시 입원과 퇴원을 반복한 그는 가족 이외의 다른 사람들 눈에 띄기를 싫어했다. 그러나 마지막 문장들은 여전히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지난 번보다 훨씬 강도 높은 항암제를 처음 맞는 날, 난 무서웠다. ... 순간 나는 침대가 흔들린다고 느꼈다. 악착같이 침대 난간을 꼭 붙잡았다. 마치 누군가 이 지구에서 나를 밀어내듯. 어디 흔들어 보라지. 내가 떨어지나. 난 완강하게 버텼다."
경향신문, 2009년 5월 11일 월요일, 21면 <사람과 사람>中.



결과론적이지만 이 기사로 난 선택이 더 쉬워졌다. 물론 마음 속으로는 이미 결정을 내리고 있었기도 했지만은... 도입 부분에서 선택은 자유의지와 관련이 있다는 초보적인인 철학적 해답을 언급했었는데 이렇게 수정하고 싶다.  "우리의 선택이란 것은 본래 '자유의지'보다는 실존으로서의 '희망' 혹은 '갈구'와 더 깊은 상관관계를 맺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garlic | 2009/05/12 08:56 | PERMALINK | EDIT/DEL | REPLY
선택과 의지, 요며칠 고민했지만 아직 답 못 찾고 헤매고 있는 중에 음..
장영희 교수 글 읽을 때마다 힘이 되곤 했는데 별세 소식 접하고는 한순간 멍하더라구요..
사진으로 보는 여행은 무척이나 즐거워보여요 녹차 아이스크림은 안 드셨어요?ㅎ
Favicon of http://www.zzacnoon.net BlogIcon zzacnoon | 2009/05/12 15:49 | PERMALINK | EDIT/DEL
녹차 아이스크림을 안 먹을리가 있나요. 1,000원짜리 하나 사서 낼름 먹었더랬죠. 1,000원짜리 녹차도 마시고 왔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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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27 17:57

  오늘 ‘중국으로 가는 길’을 수강하며 대학생활을 막 시작한 1학년 학생들과 ‘인터넷과 중국어’를 들으며 대학생활을 마감해 가고 있는 4학년 학생들이 함께 자리를 했습니다. 우리는 우주를, 그리고 별을 보기 위해 이곳에 왔습니다. 그렇지만 단순히 별을 보면서 놀기 위해 야외수업 자리를 마련한 것만은 아닙니다.
  여러분들 가슴 속에는 여러 다양한 것들이 자리 잡고 있겠지만, 공통된 것은 ‘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은 과연 일상 속에서 가슴에 품은 꿈을 얼마나 진지하게 다루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별을 본다는 것은 어떤 관점에서 우주를 산책하는 일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꿈을 가지고 실천을 견지해 나가는 것은 ‘영혼의 산책’이라 해도 무방합니다. 이 산책을 게을리 하지 않는 여러분이 되었으면 합니다. 우리도 노력하겠습니다.

2009년 4월 29일 수요일
**시민천문대 야외수업에서
***, ***강사 드림.

Favicon of http://tospring.egloos.com BlogIcon 박양 | 2009/04/28 14:18 | PERMALINK | EDIT/DEL | REPLY
꿈이란 단어는 가슴을 참 뜨끔하게 하는 말입니다. 역시 이글을 보니 뜨끔하네요. :)
참, 전부터 궁금했던 건데, 태그에 루시드폴을 누르면 왜 아무글도 안 뜨는 건가요?
짝눈님. 루시드폴이 태그로만 존재하는 이유. 고것이 궁금합니다. ㅎㅎ
Favicon of http://www.zzacnoon.net BlogIcon zzacnoon | 2009/04/28 17:58 | PERMALINK | EDIT/DEL
음..아마도 지난 번에 음원 정리되는 기간에 그렇게 된 것 같은데요. 로그아웃 상태에서는 제가 클릭을 하니 저 역시 아무 것도 뜨지 않더라구요. 그런데 로그인을 하고 클릭해 보니 길 위, 사람이었네, 할머니의 마음은 바다처럼 넓어라. 가 검색이 되네요. 다른 태그의 외국가수들이나 지명도가 떨어지는 한국뮤지션들은 로그아웃 상태에서도 잘 보여지는데(물론 음원은 대부분 사라졌습니다만..), 루시드 폴이나 자우림처럼 주류에 가까운 뮤지션은 음원만 보이지 않는 것 뿐만 아니라 포스트도 보이지 않게 해 놓은 것 같습니다. 로그아웃 상태에서는 태그 말고도 검색으로도 찾을 수가 없더라구요. 이유는 이와 같습니다. 수사반장 보고 끝.
Favicon of http://kaira.tistory.com/ BlogIcon kaira | 2009/04/29 06:34 | PERMALINK | EDIT/DEL | REPLY
'우리는 우주를, 그리고 별을 보기 위해 이 곳에 왔습니다.'
라는 말이 왜 갑자기 이렇게, 위안이 되는걸까요.
너무 위안이 됩니다.

감사해요.
뜬금없는 감사를 보냅니다.
Favicon of http://www.zzacnoon.net BlogIcon zzacnoon | 2009/04/30 03:04 | PERMALINK | EDIT/DEL
대전으로 야외수업 갔다가 삼겹살 먹고 12시까지 술자리가 이어져 지금에서야 집에 도착했습니다. 운전기사여서 술 한모금 못 마신 것이 매우 안타깝지만은.. 물론 이런저런 사정으로 준비했던 위의 멘트 전혀 하지 못했습니다. 프린트해서 나눠주는 것으로 끝내려구요.

한 번쯤 시간 되시면 근교에 양평천문대라도 가서 별 보고 오세요. 우리 인간의 존재가 얼마나 가벼운 것인지, 한편으론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 재차 인식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러가지로 스트레스 받는 일 있어도 화이팅하실거죠? :)
| 2009/04/30 23:51 | PERMALINK | EDIT/DEL | REPLY
비밀댓글입니다
Favicon of http://www.zzacnoon.net BlogIcon zzacnoon | 2009/05/01 14:55 | PERMALINK | EDIT/DEL
수요일엔 야외수업을 다녀오고, 어제 오늘은 회사 워크숍을 다녀와 방금 집에 들어왔습니다. 연이은 운전은 매우 피곤한 일이네요. 잠시 쉬었다가 저녁에 약속이 있어 나갔다가 내일부터는 혼자 전라남도로 여행을 다녀올 생각입니다. 정말 정신없이 노는 스케쥴이죠? 공부를 이렇게 해봤으면 좋겠단 생각이 문득 듭니다. 황금연휴 기간 즐겁게 보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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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12 04:09

2009년 1월 11일 밤 9시 29분, 옥수역 플랫폼으로 국수행 열차가 들어온다. 나는 대전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이다. 2월이면 곧 홍콩 링난대학으로 안식년을 가는 스승의 얼굴을 볼 겸 해서 다녀온 것이었다. 지난 밤 마신 폭탄주 다섯 잔의 기운이 남아 있어 그다지 좋지 못한 몸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어제보다 더 차디 찬 날씨는 오히려 온몸에 송곳같은 긴장감을 준다. 따뜻한 열차 안으로 들어가 빈자리를 찾아 앉고서는 MP3를 켜고 음악을 들으며, 평소와 같이 주위를 살펴본다. 앞에 여행용가방을 끌고 들어와 서 있는 처자들은 나처럼 고향에 다녀오는 길인가 보다. 시간을 확인하기 위해 휴대폰 폴더를 열었다. 그러고보니 1월 11일, 새해가 밝은지도 열흘하고도 하루가 지나가고 있다. MP3의 볼륨을 조금 높이고 1월 11일이란 단순한 숫자로부터 기인한 잡다한 생각에 잠긴다.

아마도 2년 전부터는 새해계획을 구체적으로 어딘가에 기입을 해 가며 세우지 않았던 듯 싶다. 아무리 계획을 세워봐야 낭비되는 잉크와 A4용지의 가치가 상대적으로 더 크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올해는 어떻게 보내야 하는가. 당장 다음 학기 강의계획서를 전폭적으로 수정해야 하고, 최근 몇 년간 가장 관심을 가져왔던 일의 기간이 두어 달밖에 남지 않아 그와 관련된 준비와 부가적인 일들을 처리하려면 여러 선생님들도 만나야 하고 관련서류도 준비해야 한다. 회사도 이제 청산작업에 들어가 종합보고서에서 맡은 보고서 한 꼭지도 슬슬 준비해야 한다. 읽기 위해 사두었던 책들이 책장에서 먼지만 켜켜이 쌓여간다는 대목에 이르자 한숨이 절로 나온다. 그러면서 마음은 바쁜데 시간적 안배는 제대로 하지 못하는 몸의 게으름만 자책하고는 이내 다음 생각으로 넘어간다. 봄이 오는 학창시절(?)의 마지막 학기에는 형편상 한 과목 이외에는 제대로 수강할 수 없는 터라 두 과목을 처리해야 하는 문제도 역시 잘 처리될 수 있을까도 걱정이다. 그리고 집에 가면 밀린 빨래와 청소도 해야 한다는 사실이 머릿속을 헤집고 다니고 있다. 이럴 때면 이런저런 마음에 담아둔 내 계획들을 털어놓으면 다정하게 들어 줄 여자친구도 절실히 필요하다. 다시 부질없다는 생각이 고개를 쳐 든다. 이래저래 떠오르는 해야 할 많은 일들 때문에 마음의 데시벨은 점차 커져만 간다. 


조안나 왕의 노래가 울려 퍼지는 이어폰 바깥으로 열차는 이미 회기역에 들어서고 있다는 안내가 나오고 있다. 이제 내려서 환승해야 한다. 가까운 서울역을 두고 강남터미널에서 오는 까닭은 순전히 집에서 대전역보다 유성금호고속이 가깝다는 이유이다. 한 정거장만 더 가면 되는데 이럴 때면 늘 버스를 타고 오지 말 걸 그랬나 하는 생각도 든다. 역시 나는 잡다한 생각의 대마왕이란 생각을 뒤로 하고 오늘은 전철이 아니라 두 정거장에 불과한 버스를 타기 위해 역사 밖으로 나선다. 다시 칼같은 바람이 얼굴을 때리고 목도리는 바람에 들날린다. '겁내 춥네'라는 고향 말이 조곤하게 튀어 나온다. 코트 주머니에 양 손을 찔러 넣고 가까운 버스정류장으로 총총히 발걸음을 옮겼다. 아주 늦지 않은 저녁임에도 불구하고 일요일이란 사실과 매서운 추위 탓인지 거리는 비교적 한산하다. 추위가 온몸에 파고 들면서부터는 여러가지 잡다한 사념들도 모두 도주해 버렸고, 무념의 세계가 펼쳐진다. 오로지 따뜻한 보금자리가 그리운 순간이다. 그러고보면 따뜻한 계절에는 아무도 없는 집이 그다지 그립지 않았는데 이렇게 추운 날이면 넓지 않은 집이 그립기만 한 건 참으로 이율배반적이다. 어제 보일러를 끄지 않고 약간 낮춘 상태에서 나왔으니 실내온도가 크게 떨어지지 않았을 것이란 예측에 속으로 환호했다.


버스에서 내려 빠른 걸음으로 집을 향해 내달았다. 집앞에 이르러 편지함에 있던 DM을 챙겨 나의 집 401호를 향해 뛰어 올라간다. 재빠르게 문을 열고 집에 들어갔지만 바깥 날씨와 큰 차이가 없는 실내가 이상해 가장 먼저 보일러를 확인해 보니 '물보충' 램프에 불이 깜빡이면서 일렁이고 있다. 나의 순진한 예측이 산산히 부서지면서 "젠장"이란 소리를 내뱉게 된다. 하필이면 오늘같은 날 이럴 게 뭐람. 창문 밖으로 넘어가 깜깜한 보일러 앞에서 촛불을 켜들고 물보충 버튼을 돌려 물이 쏟아져 내릴 때까지 기다리는 동안 나의 투정은 계속된다. 보일러를 점검하고 다시 실내로 도둑놈처럼 창문을 타고 넘어와 보일러를 재가동한다. 실내온도 10도. 어느 세월에 이 집이 따뜻해질 것인가란 생각에 아득해진다.


그래도 다시 일주일이 시작될테고, 또 한해를 보낼 것이다. 어느덧 나에게 어떠한 해가 될 것인지란 벅찬 기대보다는 어떻게 보내야 할 것인지 걱정이 먼저 앞서는 나이가 된 것이다. 2009년 1월 11일도 소소하게 지나간다.

1. Daniel Powter(다니엘 파우터) - Fly Away
2. Paris Match(파리스 매치) - Stay With Me (English ver.)
3. Jarvis Cocker(자비스 코커) - From Auschwitz To Ipswich

BlogIcon kaira | 2009/01/13 05:25 | PERMALINK | EDIT/DEL | REPLY
소소하고 그리고 따뜻한 하루. 그런 하루들이 겹겹이 쌓이는 한해가 되시길 바라겠습니다.
후끈하게가 아닌 잔잔하게.
W의 노래처럼 '흐릿해도 흥미롭게' 보낼 그런 나날들 가득하실거에요^^
Favicon of http://www.zzacnoon.net BlogIcon zzacnoon | 2009/01/13 16:27 | PERMALINK | EDIT/DEL
네. 다 좋았는데 kaira님의 블로그에서 남겨진 댓글 보고 울 뻔 했습니다. 제 닉네임 zzacnoon을 굳이 한글로 적자면 짝눈인데 짝콩은 뭡니까? -_-; 그래서 전 뒤늦은 새해 인사는 안 할겁니다. ㅎㅎ
Favicon of http://kaira.tistory.com/ BlogIcon kaira | 2009/01/13 21:35 | PERMALINK | EDIT/DEL | REPLY
오모 전 참 이상하게도
한번 각인되면 계속 그 이름으로 부르곤 하는데..
계속 보이는 닉네임인데도 불구하고 짝눈이 아닌 짝코라고 부르게 되네요

다음부터 제대로 부를테니
봐주세요 덜덜덜.
Favicon of http://www.zzacnoon.net BlogIcon zzacnoon | 2009/01/14 15:19 | PERMALINK | EDIT/DEL
짝코였는데 전 또 그걸 짝콩이라고 써 놓았네요. 그래도 짝코보다 짝콩은 귀엽기라도 하죠. 제대로 불러준다고 하시니 이번 '닉네임파동'은 여기에서 마무리하는 걸로 하죠.:)
이홍규 | 2009/01/15 13:42 | PERMALINK | EDIT/DEL | REPLY
사실, 소소한 일상이 인생에서 가장 따듯하단다.
내가 보기엔 성철이는 인문학적 소양이 아주 많은 듯 하다... 나 역시 사회과학을 전공하는 사람으로 내가 사회과학보다는 인문학에 더 많이 맞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때가 많은데, 사회과학이라는게 다른 사람들을 재고 평가하고 그러다보면 인성 자체가 아주 차가워지게 만들기도 한다.. 성철이는 따뜻한 인문학적 정신을 잃지 말고 준비하는 공부 성과있기를 바란다.
늘, 도둑고양이처럼 성철이의 좋은 음악 훔쳐 듣고 있어서, 늘 고맙다는 말 하고 싶었다.. 고마우이.. 새해에는 좋은 처자 만나고..
Favicon of http://www.zzacnoon.net BlogIcon zzacnoon | 2009/01/15 14:19 | PERMALINK | EDIT/DEL
형. 첫 댓글이시네요?^^ 인문학적 소양이 많다는 얘기를 들을 때마다 좋아해야 하는 것인지 좀 헷갈리더라구요. 명쾌하다는 말을 들어야 하는데 말이죠. 요즘 저작권 때문에 규제가 시작되어 웬만한 한국음악은 올리기 어려워졌습니다. 올릴 수 있는 범위 안에서는 하려고 하는데 어떻게 될 지 모르겠네요.

마침 한 번 연락드려야 하는데 들러주셨네요. 준비하는 시험으로 사회과학원에 대해 이것저것 여쭤 볼 것이 있어요. 그래야 활동계획서 등을 작성하는데 어려움이 없을 것 같아서요. 주말이나 언제 한가하실 것 같은 시간에 연락 한 번 드릴게요. 즐거운 방학보내시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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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28 0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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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많은 인연을 맺어왔고 단절되기도 하였으며 많은 인연들이 잊혀지곤 했다, 한편 그중 적지않은 인연들은 '관계'라는 이름의 한 그루 나무로 무럭무럭 자라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 무성해짐은 결코 순조롭지 않았다. 때로는 밑동을 잘라내는 아픔을 견뎌야 하고, 혹독한 추위도 견뎌내면서 간혹 나타나는 미세한 훈풍에 우리는 관계의 지속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 그리고 인연이란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예찬하고는 한다.

때로는 인연이라고 지칭하기도 어려울만큼의 스침이 있다. 그러나 그 스침이 반복되는 순간을 역시 인연이라 한다면 어제 우연히 다시 만난 꼬마아가씨도 이러한 범주에 넣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인연이라 주관적으로 명명할 수 있는 순간이 와도 우리가 그것을 오롯이 대할 수 없는 까닭은 언제나 '상처'라는 방해물 때문은 아닐까. 상처란 것이 거의 존재하지 않았던 우리의 유년시절로 돌아간다면 답은 너무도 쉽게 나온다.

가끔 나 자신은 얼마나 상처받고 싶어하지 않는가에 대한 자문을 해본다. 통상적이라 한다면 '인연'을 되도록이면 만들지 않는 것에서 자기보호를 진행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나의 경우 약간 독특한 것이 사소하고 가벼운 인연의 끈에서부터 놓고 싶어하지 않으려 하는 속성이 있다. 이 속성을 어떻게 정의내려야 할 지는 다소 난감하다. 그렇지만 역시 근원적으로는 상처받지 않기 위함임은 틀림없는 듯 싶다. 다시 돌이켜 생각해 본다. 사소함을 소중히 여기는 나의 모습이 어쩌면 상처받은 누군가에게 그 상처를 더 후벼파는 일련의 행위가 될 지도 모른다고. 그렇다면 '상처는 공유할 수 없다.'라는 나의 평소 지론과도 상반되는 결론이 나온다.

내 감정이 소중하다는 이유만으로 타인의 상처를 잘 볼 수 있는 상황에서도 침묵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인연과 관계란 것에 대한 모독이나 다를 바 없다. 나는 이것을 '인연과 관계의 모독죄'라고 부르고 싶다. 또 다시 반추해보면 나의 이런 면은 애정이라는 명목으로 누군가와 나 자신이라는 양자 모두를 참으로 용이하게도 범해온 사실도 깨닫게 된다.

당분간 인연과 관계라는 단어를 스스로 사용할 수 없도록 하는 '접근금지'에 처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을까 싶다. 따라서 피고 'zzacnoon'은  상기 입증에 따라 '인연,관계 모독죄'에 해당한다고 판단되는 바, 용어 접근금지 2,400시간에 처한다.        


※ 재범의 소지가 매우 우려되는 바, 추후 더욱 중벌에 처할 수도 있음을 밝혀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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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26 19:39

일정한 준비기간을 거쳤지만 여전히 티스토리는 내게 있어 낯설다. 네이버에 있던 포스트들을 노가다로 옮기고, 음악파일들을 업데이트하느라  들락날락하긴 했지만서도 기능 운용 등에 있어 서투른 면이 많다.  앞으로 이 블로그를 통해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을 하고 또 나눌 수 있을지 모르겠다. 오프라인에서의 찐한 만남을 블로그에서의 단방향과 쌍방향이 메꿀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오프라인에서 미처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리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정도는 그 파장이 소소하겠지만 여러 사람들과 나눌 수 있으리라 믿는다.

힘이 필요한 밤에는 이 곳에 들러 따뜻한 음악들을 무한반복하며 들으며 힘을 내셨으면 좋겠고, 지칠 때는 제가 올리는 포스트를 통해 '뭐 저녀석도 비슷하게 사는구만'하면서 약간의 위로를 얻어갈 수 있으면 더할나위 없이 좋을 것 같다. 그리고 난 찾아와주시는 분들을 통해 '소통'의 방법을, 함께 살아가는 지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사실 내가 얻는 것이 더 많다.)

막상 말을 꺼내니 심야에 쓰는 글이 아니라서 그런지, 그도 아니면 처음이라서 나름 떨고 있는 것인지는 몰라도 더이상 할 말도 쓸 재주도 없다.

화이팅합시다~

참고사항: 여기 있는 여러 곡들을 통해 나의 음악적 식견에 감탄해하지 마시라. 본인의 현재 음악적 토대는 식민지 상태임이나 마찬가지이다. 같은 사무실에 있는 엉아의 도움으로 무럭무럭 자랄 생각만 하고 있고 내공은 전혀 없는 상태이다. 말하자면 '귀만 뚫려있는 상태'라고나 할까. 당분간은 쪽팔려도 '식민지 총독' 엉아의 도움 받으며 성장할 생각이다. 엄청난 '참고사항'이지 않은가. 
Favicon of http://oktimes.cafe24.com BlogIcon 콩서 | 2008/08/26 22:53 | PERMALINK | EDIT/DEL | REPLY
성철아.. 홈피 이사를 축하한다. 노가다 좀 했겠는걸..
본좌는 내일 지리산 입산을 떠난다. 선배 한명과 북파공작원 모드로다가 뜨기로 했다..
같이 못가서 아쉽구나. 나중을 기약하자.
암튼, 좋은 홈피활동 기대한다. 나도 곧 개이버 블로그를 딴곳으로 이사하련다.. 화링..^^
Favicon of http://www.zzacnoon.net BlogIcon zzacnoon | 2008/08/27 01:37 | PERMALINK | EDIT/DEL
네. 드디어 내일 입산하시는군요. 짧은 산행이지만 남파공작녀분들과의 우연한 조우도 기대할게요. ㅎ 내년쯤에는 정말로 올해 못한 종주를 했음 좋겠네요. 무사히 다녀오시면 개강 후 술자리에서 후일담 듣겠습니다.
Favicon of http://blog.naver.com/quizzermind BlogIcon 퀴저 | 2008/08/26 23:14 | PERMALINK | EDIT/DEL | REPLY
이사 축하해요. 블로그 이사 집들이 기념으로 덧글 남깁니다.
저도 티스토리로 옮기려고 한번 시도해봤는 데, 워낙 컴맹에 가까워서 엄두가 안나더라구요.
그래서 그냥 네이버에 눌러 앉기로 결심했네요. 전.
음.....성철님의 뛰어난 음악 식견에 감탄하고 있었는 데..약간 실망인걸요 ㅎ ㅎ
네이버를 뜨셨으니 성철님 블로그도 어쩔 수 없이 RSS리더구독에 등록해야 겠네요. ^^
Favicon of http://www.zzacnoon.net BlogIcon zzacnoon | 2008/08/27 01:39 | PERMALINK | EDIT/DEL
컴맹이 RSS리더구독도 가동하시나요? 저도 컴맹인데 도메인까지 사서 이사했는걸요? ㅎ 아직은 자발적 식민상태이지만 차츰 독립을 시도할 생각이니 그때를 기다려 실망을 거둬주셔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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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25 05:57

누구나 그렇겠지만 '처음'이라는 단어나 '시작'이란 말에 대해서 나는 유달리 강한 집착을 보인다. 처음이 있다면 과정이란 것도 있을테고, 그 다음에는 결과라는 산물이 있는 것이 세상사 당연한 이치이다. 따지고 보면 어느 것 하나 중하지 않은 것이 없고 그 경중을 비할 수는 없는 것도 마땅한 일이 될 것이다. 그러나 소연해진 세상은 이제 우리에게 늘 '결과'만을 요구하게 되었고, '결과'로 모든 것을 평가하는 시스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는 자는 그야말로 시대의 낙오자요, 매우 현실적이지도 못한 자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가지고 있는 무형, 유형의 자산들이 워낙에 적은 탓일까. 아니면 기본에 충실하고 싶은 까닭일까. 위와 같은 단어에 대한 나의 '아련함'은 애달프다. 결과가 없었던 사랑에 대한 아쉬움도, 그 밖에 이루지 못한 많은 것들에 대한 한숨 모두 내가 가는 길과 걸어왔던 길에 축 늘어져 있다.


그리하여 세상의 모든 처음 시작하는 것들에 대한 내 사랑은 역시 각별하다. 비근한 예로 저예산의 많은 사람들이 보지 않는 영화를 찾아 본다거나 혹은 인디레이블 계열의 음악들을 찾는 취향도 다 그러한 이유에서 태동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마도 나는 그런 류의 영화나 음악을 좋아한다기 보다는 그런 행위에 가담하고 있는 '사람'에 대한 애정과 부러움이 더 깊은 것이 모범답안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주류적인 위치의 멀티플렉스에 걸린 영화나 모두 즐겨듣는 음악, 그리고 말초적이고 감각적인 언어를 현란하게 구사하는 티비 프로그램들을 보면서 나 역시 낄낄대고 자지러지고는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저항감'이 드는 것은 결코 주류도 될 수 없으면서 주류에 편입해 들어가려고 나도 모르게 불쑥 들이대는 '속물 근성'에 대한 시위 혹은 '나이 듦'에 대한 두려움의 표지라 할 수도 있을 듯 싶다.


결과가 좋아 모든 외로움과 고독이 사라진다면 이렇게 살지 않을테지만 그럴 것 같다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둥실둥실~ 팔랑팔랑~ 이렇게 사는 방법은 어디 없을까. 바야흐로 '사랑'을 해서 에너지 충전을 해야 할 때임을 느낀다. 방전된 것을 임시방편으로 때우려고만 하니 자꾸 삐끄덕 고철소리를 낸다.


이제 다시 생각해 보니 제목의 '아름답다'도 허위와 위선에 불과하다. 왜냐면 아직은 너무나 무덥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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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25 05:56

지난 밤, 당분간 같이 지내고 있는 친구를 호출해 같은 버스에서 만나 늦은 귀가를 하던 중에 출출하다는 의견의 합의에 따라 옆 동네 경희대 부근에서 하차하여 참치집을 찾아 들어가 배도 채우고 주님 1병씩을 격파하고 들어와 잠이 들었다. 그래서 모처럼의 숙취로 인한 갈증 때문에 채 박명의 시간에 일어나게 되었다. 생수를 벌컥벌컥 마시고 다시 잠자리에  들었지만 누우면서 떠오른 생각 탓이었는지, 아니면 연가를 내면서까지 해야 할 가족의 일 처리가 있다는 압박감인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컴퓨터를 켜고 포스트를 쓰기 위해 자리를 잡았다.


사실 생활에 있어 권력관계의 일을 고백한다는 것은 나 자신까지 까발리는 일이기에 글로 옮기기는 쉽지 않지만 오늘은 이 얘기를 털어놓을까 한다.


사전 이해를 돕기 위해 우선 내 전공에 대한 얘기를 하겠다. 내 학부전공은 ‘중국어’이고, 석사부터의 전공은 이른바 중국학(이 학문의 범위를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잠시 설명을 하자면 한국에 있어서 ‘지역학’은 한 지역의 현대 정치, 경제, 사회문화를 포괄적으로 공부하는데 그 가운데에서 세부전공으로 ‘중국정치’방면으로 공부를 하고 있음을 밝혀둔다.)이다. (어문학 쪽으로는 영 소질이 없었고, 뒤늦게 사회과학 방면에 눈을 뜨게 된 것이라 이렇게 되었다. 아울러 학부는 대전의 지방 국립대를 졸업하였고, 대학원부터는 서울의 이문동에 위치한 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있음도 밝혀둔다.)


각설하고, 박사과정 진학과 동시에 현재 몸을 담고 있는 위원회에 들어와 경제적 생활을 돌보면서 어렵지 않게 작년 1학기가 시작되기 전, 3학기를 마치고 수료를 남겨두면서 생각했던 계획에 따라 휴학을 단행하였다. 그리고 아는 사람은 다 알다시피 올해 초, 석사과정 이후의 세부전공에서 다소 벗어난 어학 방면으로 첫 강사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지금부터 떠드는 이야기는 바로 이 강사생활 시작과 관련된 몇 가지 비하인드 스토리라고 할 수 있겠다. 아직 숙취로 인해 두통이 좀 있어 이야기를 잘 풀어갈 수 있을지, 또한 지금부터 한 시간 이내에 관련된 이야기를 끝마칠 수 있을지 약간 우려되는 바가 있지만 이어서라도 계속 쓸 생각이기 때문에 중간에 삼천포로 수시로 빠지는 것에 대해 양해를 좀 해주셨으면 한다.


환언하여 작년 휴학을 하면서 나는 직장생활로 소홀해진 공부에 대한 자극이 스스로 요구되었다는 점, 서른셋이라는 나이면 될테지라는 세속적인 이유, 답답한 직장생활의 탈출구가 필요했다라는 점, 학생들을 하루빨리 만나고 싶다라는 순수한 동기 등 여러 가지 이유에서 강사생활 시작에 대한 집착을 내보이기 시작했다.


주지하다시피 한국의 대학 시간강사는 기본적으로 모교를 중심으로 첫 시작을 하게 되는 것이고, 그와 관련된 학회에서의 정치적(?) 활동, 그리고 학번에 따른 서열과 아울러 대학 전임교수들 간의 이해관계 등 여러 가지 제반사항들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리면서 강의하는 학교의 외연을 확장하게 되는 것이 전공에 관계없는 전반적인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예컨대 모교에서 스타트를 끊지 못한다면 연구자로서나 강사로서 이 바닥에서 제대로 생활을 영위하기에는 애초에 글러먹는 시스템이 바로 한국적 시스템이기에, 그런 관습에 의거하여 나 역시 모교에서 스타트를 끊어야 하는 처지였던 것이다. 그래서 첫 시작은 전적으로 스승들의 배려와 하사에 의해 이루어지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그 시스템을 깨려는 행위는 어떠한 의미에서는 이적행위 아니 어쩌면 전복행위에 더 가까운 일이 될 수 있다.


어찌됐든 나는 위에서 언급했던 강사생활에 대한 욕구로 인해 스승이 생각났을 때 자동적으로 주어지는 강의가 아닌 모교의 문을 인위적으로 두드려야 하는 상황이 되었고, 또 거만하게도 모교의 전공에서 내가 첫 학번이라는 점, 중국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동기 녀석 둘을 포함해 가장 먼저 석박사과정에 진입한 선구적인(?) 케이스라 이 정도면 당연한 대접이라 생각하기도 하였던 것이다. (서울권 메이저대학의 경우는 이와 다르게 위에 먼저 공부를 시작한 선배들이 줄을 서 있는지라 이른 나이에 모교에서 강사를 한다는 것은 조교를 한다거나 모종의 사유가 발생하지 않는 이상 서열이 떨어지는 타대학이나 지방대학에서 시작을 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의미에서 나는 어쩌면 강사로서 우위적인 위치에 서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역시나 염려했던 대로 본론은 시작도 못하면서 이야기를 질질 끌어가고 있음이 선명해진다.  모교에는 현재 6명의 전임이 있는데 그 중 다섯 분은 모두 스승이고, 석사시절 생활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대전에 내려갔을 때 2년간 국립대 조교로서 일할 수 있는 배려를 해주기도 하였다. 국립대 조교는 계약직이긴 해도 대체로 공무원 7급에 해당하는 대우를 받는데다 교육직렬이라 일반직 공무원이나 사립대학 조교, 그리고 웬만한 시간강사는 따라잡을 수 없는 정도의 보수를 받는다. 지금은 내가 그만 둔지도 4년이 넘어 정확히 산출할 수는 없지만 석사학위 이수 등 약간의 경력을 인정받는다면 이런저런 수당을 합쳐 적어도 세전 3,200 이상의 보수를 받을 것이라 생각된다. 이런 고액연봉의 조교를 한다는 것은 전국적으로 통틀어 얼마 되지 않는 까닭에 나는 당시의 어려운 민생을 2년간 해결할 수 있었고, 이후 석사과정을 마치고 박사과정에 들어오게 되었던 간접적인 영향력을 발휘했던 터라 이 부분에 있어서만큼은 기실 스승들에게 엎드려 절이라도 해야 하는 입장이다.


아무튼 나는 작년 1학기 어느 날에 대전행을 감행하게 되었다. 모교의 경우 한 분을 제외한 4명의 전임이 연배로 40대인데, 그 중에서도 7살 차이의 술자리도 종종 같이 하는 가장 친한 스승을 제외한 당시 학과장을 맡고 있던 사람을 찾아가서 이제 강의를 하고 싶다는 희망을 피력하게 된다. 물론 일언지하에 거절당한다. 지나고 생각해보면 얼마나 내가 선생에게 우습게 보였을까란 생각에 웃음이 난다. 메이저대학 출신의 똑똑한 두뇌를 가지지도 못한 내가 스승이 먼저 강의를 맡지 않겠냐고 제안을 하지도 않은 상황에서 먼저 찾아가 강의를 주셨으면 한다라고 했으니 얼마나 기도 차지 않는 일이 되었겠는가. 물론 당시 직접적인 거절의 의사보다는 공부를 우선 다 마쳐야 하지 않겠냐는 간접적인 표현을 듣기는 했지만 듣는 입장에서는 사실 직접적인 거절의사보다 더 마음이 좋지 못했다.


그렇게 씁쓸하게 서울에 돌아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가장 친하다는 선생님과 술자리를 하게 되면서 강의를 맡게 되는 자격에 대한 입씨름을 하게 되었다. 그 선생님의 논리는 대학 시간강사도 이제는 원칙적으로 ‘박사취득 이상의 자’라는 것이었는데 그 말에 나는 기분이 많이 상해 이렇게 대꾸했었다.


“그럼 선생님들의 모교에서 오는 박사과정 1학기를 겨우 마친 후배들의 경우는 뭐라 말할 수 있는 것입니까?”


나는 이와 같이 당시 제자라는 이유와 더불어 모교 전임들 간의 권력관계 등에 의해 강사로 첫 발을 내딛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러나 그런 항의가 있었던 탓이었는지 올해 1학기 특정 과목을 맡았던 시간강사 선생님이 모 대학 전임으로 가게 되면서 그 자리를 메꿀 수가 있었는데 강의가 배정된 것은 아직 젊기 때문에 그 과목을 가장 효율적으로 가르칠 수 있고, 선배로서 후배들에게 좋은 자극을 줄 수 있으며, 갑자기 다른 강사를 구하기도 힘들다는 등의 사유를 적은 내용으로, 해가 바뀌면서 새 학과장이 된 그 친한 스승님의 타 교수들에 대한 이메일을 통한 의견 조회가 이루어지면서 이전의 스스로 조성한 어수선한 상황이 비교적 수월하게 정리가 되어 버렸던 것이다.

 

그렇게 한 학기 강의를 마쳤고, 학생들에 대한 미안함과 진실로 노력하지 못했음에 부끄러움만 남게 되었지만 그래도 다음에는 좀 더  잘해보자는 마음을 먹게 되었는데 그 동기는 지난 5월 무렵 어느 지인의 결혼식에 갔을 때 잠시 뵙게 되었던 바로 그 추천해주신 분을 만나 다음 학기 안식년을 떠나는 선생님의 강의과목 중 하나인 시사중국어를 맡기겠다라는 얘기를 직접 들은 것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적어도 난 확정적이진 않더라도 추진해보겠다라는 이야기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한 학기가 마무리될 무렵이면 다음학기 강의시간표가 짜여지면서 대략의 강사진도 꾸려지는 것이 기본적인 틀이었고, 기본적으로 타지에서 오는 강사에게 요일을 정하는 선택권을 주는 비교적 민주적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시사중국어는 강사가 미정인 채로 금요일로 편성된 것을 알게 되었다. 조교에게 문의한 결과 눈치로는 강사가 정해졌다라고만 하는데 그게 나인지 다른 사람인지 전혀 짐작을 할 수 없었다. 만약 나를 감안한 것이었다면 사전에 직장을 다니는 내게 편의를 제공하는 차원에서 언질이 있었을 터인데 그렇지 못했던 것이다. 이런 상황을 감안한다면 현재 상황은 지극히 불투명한 것이다. 물론 어쩔 수 없는 의사소통의 부재에서 오는 오해가 일정하게 있을 수 있겠지만은...

 

여기까지가 지루하게도 사전 정황에 대한 설명이다. 사실 장광설인 서론에 비하면 말하고 싶은 본론은 그리 길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진즉 대학원에 들어가겠다라는 생각을 하면서부터 끝까지 한 번 가보겠다라는 마음이었고, 또 시간강사로 생활을 영위한다는 것이 결코 녹록한 일이 되지 않을 것도 어느 정도 예감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와 관련된 어느 정도의 고초와 부조리는 견디겠다라는 마음가짐은 충분히 가지고 있었다. 그렇지만 막상 그런 상황에 진입하고 보니 그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님을 알겠다.

 

이는 단순히 강의 하나를 연장해서 맡으면서 강사 타이틀을 유지하겠다라는 욕심보다는 스승들에 대한 인간적인 섭섭함, 그리고 무엇보다도 스스로 견지하려고 하는 원칙에 대한 원론적인 문제제기가 더 크다고 할 수 있겠다.

 

괴테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인간은 보이는 대로 대접하면 결국 그보다 못한 사람을 만들지만, 잠재력대로 대접하면  그보다 큰 사람이 된다' 내 생각에는 지금 나를 길러낸 스승들이 나를 자신들의 눈에 보이는 대로 대접하고 있다라는 결론에 이르고 있고, 또 무엇보다도 견딜 수 없는 것은 그런 일련의 상황들이 진리를 규명하고 좀 더 아름다운 사회를 만드는 데 일조를 하고 싶다는 나의 원칙을 느슨한 상태라도 해체하고 파괴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기적인 수입이 있는 상황에서 굳이 이런 모험까지 감행했던 것이 전적인 나의 책임으로 돌아와야 할테고 또 책을 읽는 시간을 확보하는 것만으로도 부족한 판에 학계의 부조리한 권력구조 속으로 미리부터 편입되어 들어가려는 나의 행태는 자기바판을 받아 마땅한 것이다.

 

하지만 아직은 견딜만하고 내 모든 것을 잃지 않은 상황이라 이미 그 구조 속으로 깊숙히 편입해 들어가 복무하고 있는 다른 선배들에 비해 나은 형편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난 여전히 두렵다. 지금은 이렇듯 일정한 '자기검열'이라는 것이 존재하지만 향후 이러한 자기검열마저 무시하면서 전적으로 생활의 전선으로 뛰어들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 말이다. 스승들에게 감사한 것은 감사한 것이고, 역시 섭섭한 것은 섭섭한 것이다. 그러나 공부를 하는 사람으로서 난 내가 견지해 나가야 할 원칙이 있는 것이고 그 용납 가능한 최후의 보루를 포기한다는 것은 나는 '영혼을 파는 행위'라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으로서는 전혀 그러고 싶은 마음이 없다.

 

오늘 이렇게 장문의 글을 쓰는 까닭도 앞으로 이러한 속상함이 심화된다면 내 자신이 모교를 포기하는 한이 있더라도 '나'를 잃지 않겠다라는 의지 때문이었지만, 결국은 현실의 불만 표출과 지지리 궁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겠다.  

 

   참.. 내 제자들이 이 글을 볼 수도 있겠는데 혹여나 보는 사람이 있다면 못 본척 해주었으면 하는 희망만 품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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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25 0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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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잦아들 것만 같았던 촛불이 다시 타오르고 있다. 정부의 오버로 이제 다시 공은 시민들에게 넘어온 것이다. 가장 강렬했던 어제의 시위를 현장에서 지켜보면서 다시금 들었던 생각은 이제 여기에서 좀 더 '인내력'을 가지고 버텨야 한다는 것이다. 폭력에 폭력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드높긴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최후의 수단일 뿐이다.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유일한 무기는 '명분'이다. 물론 이미 충분한 명분을 가지고는 있지만 좀 더 큰 명분을 선점할 때에서야 우리는 우리가 바라는 승리를 쟁취할 수 있다. (강제진압에 따른 말도 안되는 폭력에 대한 분노와는 별개로 현실적이고 전략적인 차원에서의 이야기이다.)


2. 나는 나를 포함한 현대 대한민국 사회의 대중을 그리 신뢰하진 않는다. 이런 어처구니 없는 사태가 벌어지게 된 것도 대한민국의 대중이 여전히 먹고사는 것에만 급급하고, 가족 중심적이라는 것에 기인한다. 물론 개별적인 비판이 아닌 '신자유주의의 심화'라는 구조적 요인에서 오게 된 필연적 결과라는 것이 더 큰 요소이다.  여하튼 결과적으로 좀 더 잘 살기 위해서라는 이유로 우리는 무자비한 '자본'의 침략을 너무나 쉽게 용인했다. 그래서 말로만 '존경하는 국민'을 외치는 진실이라고는 털끝만치도 찾아볼 수 없는 대통령도 만들어 낸 것이다. 이제서야 대중은 그것을 시정하려고 노력하고는 있지만, 이 땅의 자본은 벌써 굳건하게 땅에 뿌리박고 있고, 20년 전에 이룩하였던 민주화란 이름으로 뿌렸던 '민주'란 씨앗은 이제서야 싹을 틔운 정도에 불과하다.      


3. 이런 의미에서 촛불은 이제 '자본'과 '민주'의 대립을 상징하는 것이라 해도 무방하고, 쇠고기는 이미 부차적인 문제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 반드시 우리는 애써 울타리를 넘지 않으면 안된다. 그 울타리는 그저 2MB의 퇴진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언제고 누가 와서 짓밟아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질경이'와 같은 사회가 되느냐, 아니면 언제고 결국 꺾이고 마는 온실속의 화초와 같은 사회가 될 것인지는 이제 촛불이 결정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리 낙관하지도 비관하지도 않을 것이고, 그저 참여하고 지지할 것이다.


4. 많은 사람들이 더이상 많이 다치지 않았으면 하는 희망을 품지만, 그러기는 힘들 것 같다. 왜 우리는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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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25 05:48

지난 주말 연이틀 시위에 참가하면서 그리고 집에서 혼자 있으면서 인터넷 기사들을 섭렵했던 탓이었을까. 거리에 나섰다는 가벼운 흥분과 연대라는 것이 무엇인가를 새삼 깨닫게 되면서 찾아온 부작용이 바로 '과열'이었다. 그 덕분에 잠은 지나칠 정도로 설쳤고, 밥을 먹어도 맛있지 않았으며 초조했다. 그래서 밤에 소주를 한 병 넘게 비우고도 한참을 헤메다가 겨우 잠들 수 있었는데 다시 사무실에 출근하면서 어느 정도 안정을 찾게 되었다.


이제 신문기사나 동영상 등을 보면서 감정적으로 격화되는 것을 주의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기실 현장에 나가게 되면 일정한 감정의 소용돌이 안으로 빠져들어 가지 않을 수 없는 듯 싶다. 이른바 군중심리와는 다른 어떤 말로 형용하기 힘든 상태에 있었지만 그것이 적절치 않은 일임을 알겠다. 그렇게 생각하게 된 계기는 이번 일이 단기간에 끝날 수 있는 문제가 아님을 인식하였기 때문이다.


냉정하게 살펴보면 수 만의 시민이 혹은 앞으로 어느 정도 더 불어난 숫자의 시위가 이루어진다 해도 (물론 말 그대로 수십만 명이 될 경우에는 그 변수가 매우 크다.) 곧바로 이번 정권의 퇴진을 요구하기에는 무리가 있지 않을까 싶다. 장기적이고 미래지향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이명박 정권은 지금이라도 물러나야 하는 것임이 타당한 일이겠지만 이제 100일을 맞는 신생정권이 무작정 넘어가는 것을 대다수 국민들이 선뜻 동의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분위기를 살펴 본 결과 거리에서 이명박 퇴진을 외친다 할지언정 거리에 나오지 않은 대다수 사람들은 쇠고기 전면재협상에 준하는 어떤 모션을 취하기만 한다면 얼마든 정권 지속을 용인하겠다는 태도를 견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이명박을 퇴진시킨다 하더라도 마땅한 대안이 없다는 딜레마에서 기인하는 것이고, 퇴진 이후 올 커다란 파장 역시 두려운 까닭이다.


386세대는 87년 6월항쟁 당시와 달리 광화문에 시위대가 진출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의미를 두는 것 같지만 사실 2008년 대한민국의 상황은 6월항쟁이나 1960년 4.19혁명 때와는 다르다. 그 때는 일련의 모든 부패와 악들이 차근차근 축적되면서 급속도로 폭발했던 것이라 모든 시민들이 동의할 수 있을만한 수준의 운동이었지만, 지금은 모든 사람이 동의할 만한 수준으로 명분을 쌓지도 못했고 아울러 많은 문제에 다각적으로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 이외 대다수의 사람들에게는 표면적으로 정책적인 실책 이외의 것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적지 않은 사람들이 정작 우려하는 바는 즉 현 정권의 독단적 국정운영에서   '민주주의의 단절' 혹은 '민주주의의 위기'라는 코드가 읽히고 있다는 것이다. 피상적인 측면에서는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온라인을 기반으로 매우 빠른 속도로 확대되었고 재생산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것은 어디까지나 형식적이고 양적인 차원의 문제이지 내용과 질적인 차원에서의  '민주주의'라는 시스템은 한국사회에서 여전히 제대로 구현되지도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를 쉬운 말로 치환하자면 현재의 대한민국을 살아가고 있는 국민들 대다수가 납득할 수 있는 마땅한 '상식의 수준이 실현되지 못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현 사태의 가장 큰 동인이 되었던 쇠고기 문제뿐만 아니라 수면 속으로 잠복해 있지만 고개를 내밀려 하는 한국사회의 제반 문제들이 바로 '지극히 상식적인 수준'에서 관철되고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아울러 '민주주의 정신의 기본요건'을 전혀 충족시키지 못한다는 것에서 모든 문제가 출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문제의 가장 근본적인 해결책은 바로 이런 기본적 목마름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수준의 조처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이는 실현하는데 있어 매우 점진적으로 진행된다는 것에 가장 큰 맹점이 존재한다.


한편,  일상생활을 영위해 나가는 '생활인'으로서의 국민들에게는 이것이 보통 절실하게 다가오지는 않는다. 역시나 사람에게 가장 우선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나와 내 가족이 어떻게 잘 먹고 살 수 있을 것인가라는 민생의 문제인 것이다. 미국산 수입쇠고기 문제의 경우, 이런 잘 먹고 잘 사는 것이라는 영역에 있어 간접적인 영향력을 안겨주었기 때문에 국민들의 전폭적인 반발을 불러 일으켰지만 앞으로는 마치 한 개인이 인생에서 복잡하고 해결하는데 시간이 걸리는 일은 단번에 치유하려는 현명함을 보이려 하기보다는 우선 덮어두고 발등에 떨어진 불을 먼저 끄려고 하는 성향처럼 그런 선상에서 문제를 덮고 넘어갈 가능성이 현재로서는 가장 크다.


따라서 이번 주 정부가 내놓으리라 예상되는 인적쇄신과 개편의 규모와 범위가 어디까지일지 섣불리 예단할 수 없지만 아마도 일회성에 불과한 조처와 더불어 정부의 정책보류 등의 꼼수에 의해 우리 국민들은 이를 용인할 개연성이 매우 크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수는 아직 잔존해 있다. 앞으로의 촛불집회가 어떤 방식과 방향으로 흘러가고 이에 대한 공권력의 대응수위가 어느 수준에서 결정되느냐에 따라 향후 정국에 미치는 파장이 판가름 날 것으로 보인다.


여담이지만 개인적으로도 사실 많은 문제를 노정하면서도 이를 치유하기 위한 근본대책을 뻔히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목전에 둔 일을 먼저 해결하고 넘어가려는 경우가 많다. 이런 개인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지향을 비추어 봤을 때 국가와 사회란 것도 그 양상과 변화가 크게 다르다 생각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결국 국가와 사회라는 것도 따지고보면 '사람'이 모여 형성된 곳이라는 연유 때문이다.


그러함에도 반복적인 누더기 수선을 일삼으며 대한민국호의 재출항을 시킬 것인지, 좀 더 인내력을 가지고 부두에 정박을 계속하며 일신된 대한민국호로 변모시켜 힘차게 출항을 할 것인지는 이제 모든 한국사회의 일원들에게 주어진 선택의 문제라는 것은 분명하다.


과열과 냉정사이에서 '나'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과연 무엇인가. 여하튼 예상치 못했던 과제까지 주어진 셈이다.  

블로그 메인 특집이슈 게재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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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25 0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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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http://oktimes.cafe24.com/ ('사진관'에서)


촛불문화제도 벌써 한 달째, 18차에 이르고 있다. 그리고 거리로 나간지도 오늘로 3일 째 접어들었다. 이를 두고 '비폭력'과 '평화'를 상징하는 촛불문화제에 집시법을 위반하는 가두행진이 적절한 것인가라는 적지않은 반론도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한 달간의 촛불문화제를 통한 평화시위는 우리가 '국가'와 전혀 소통되지 못하고 있음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졸속협상의 결과로 발동된 촛불문화제를 두고 오늘 난 두 가지를 얘기하고자 한다.


우선 '국가'와 '사회'의 관계에 있어서 '국가'를 유일하게 견제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것은 '사회'이다. 이론상으로는 사회는 국가가 행하는 독단적 정책에 브레이크를 걸 수 있는 충분한 역량을 가졌다 할 것이다. 그리고 때로는 국가가 행하는 정책에 적극 협력할 의무를 가진 것도 바로 이 사회이다. 이렇게 적절한 선에서의 견제와 협력은 하나의 민주주의 국가를 건전하게 살찌우는 근본적 동력임은 말할나위 없다. 이렇듯 권한과 의무를 적절히 행사하는 사회를 우리는 흔히 '시민사회'라고 지칭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 대한민국의 상황은 그리 녹록치 않다. 아니 오히려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절대절명의 위기가 도래했다고 해도 조금도 지나치지 않다. 이는 대한민국의 시민사회가 미처 성숙하지도 못한 상황에서 그 성장이 정체되는 지점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시민사회가 제대로 발전하지 못하고 정체되고 있는 까닭은 바로 한국사회에 이미 깊숙히 침투해버린 '자본'이 막강한 힘을 본격적으로 발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건전한 시민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다양한 개인의 스펙트럼을 통해 잘 알 수 있다.


 나는 그 실질적인 예로 한 달째 지속되고 있지만 그 힘이 하나의 방향으로 응축된 힘을 갖지 못하고 있는 촛불문화제를 거론하고자 한다. 쇠고기 졸속협상에 따라 장관고시를 목전에 두고 있는 지금 국민 대다수는 그 잘못된 정책에 성토를 하고 공감하면서 정책방향의 근본적 수정을 정부에 요구하고 있지만 국정운영의 최고책임자인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한 그 주변 책임자들은 '꼼수'를 통해 이 위기를 적당히 넘어가고자 하는 모션을 취하고 있다.


물론 촛불문화제를 비롯한 인터넷세계에 들끓는 비판여론은 일정한 효과를 발휘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예컨대 장관고시의 잇따른 연기라던가), 지극히 온라인적인 인터넷과 모든 집시법을 제자리에서 지켜가면서 열리는 촛불문화제로는 이제 더이상 현 정부의 태도변화를 이끌어낼 수 없는 것이다. 이는 지극히 합법적이고 일정한 바운더리 안에서 이루어지는 저항은 충분히 통제하고 일정한 시점이 지나면 이 정도의 국면 정도야 얼마든지 넘어갈 수 있다는 정부의 자신감에서 비롯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솔직히 토로하자면 촛불문화제가 그동안 거행되면서 나는 오늘까지 네 차례에 걸쳐 직접 참여를 한 바 있다. 그러나 아직도 얼굴을 들 수 없다. 혹여나 부끄러운 내 자신을 감싸기 위한 형식적인 도구로 사용하였고 사용하려는 것은 아니었을까란 생각에 미치면 부끄럽기 그지없다. 더군다나 지난 3일 동안의 가두행진에는 적극 참여하지도 않았으니 말이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개인의 의견과 결정이 마땅히 존중받아야 한다는 사회의 과정은 어느 정도 부단히 진행되어 왔다고 할 수 있지만 '무한경쟁'을 생산수단으로 하는 다른 한 면의 이 사회에서 나는 그 경쟁에 뛰어든 한 개인으로서의 의무를 충실히 해온 탓이었던지, 건전한 시민사회 형성을 위한 개인적 '용기'와 '연대'에는 너무나 소심해 하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은 아닐까.


"너무 튀어서도 안 된다." 어느새 나는 내가 지켜야 할 경제적, 개인적 가치들에 포섭되어 '용기'와 '연대'로  디자인되어야 하는 건전한 시민사회가 아닌, '자본'과 '경쟁'으로 이미 디자인된 불량 '자본사회'의 적극적인 일원으로 복무하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근대국가가 세워지고 그 틀 안에서 '자유'와 '민주'라는 절대적 가치를 쟁취하기 위해 이루어진 일련의 모든 행위들은 사실 '불법'이었고, 그 불법을 탄압하고 강제했던 것은 늘 '합법'이었다. 사회와 소통하지 않으려 하는 국가에 대해서 좀 더 적극적인 저항을 모색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반드시 '비폭력'과 '평화'를 상징하는 지금의 촛불문화제는 지속되어야 하지만 이제 우리는 거리로 한 발짝 더 발걸음을 떼는 '용기'와 '연대'를 필요로 한다.


촛불문화제에 참가하지 않았다고 해서 하등 부끄러워 할 필요는 없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 '형식'과 '내용'이 있다면 누구나 내용이 보다 중요한 것이라 말할 것이다. 촛불문화제에 참가유무로 형식적인 '용기'와 '연대'를 판단하기 보다는 어떤 곳에 있던 우리를 대신하여 실천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고마워할 줄 알고, 또한 같이 하지 못함을 솔직하게 부끄러워할 줄 아는 사람이 나처럼 형식적으로 거리에 나앉아 있는 사람보다는 백만배 낫다.


물론 실천적인 차원에서는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거리에 나가 힘을 보태는 것이 절실히 요구되지만, 부득이 시공간적 이유로 말미암아 그리 하지 못한다면 광화문에, 그리고 전국의 많은 도시에서 거행되는 촛불문화제에 '용기'와 '연대'라는 진정한 '마음'을 보내보는 것은 어떨까?


이 마음들이 실질적으로 집합될 수만 있다면 우리 사회는 아직 '희망'을 버리지 않을 수 있다고 나는 여전히 굳게 믿어 의심치 않는다.  


"우리 모두 '촛불문화제'에 '용기'라는 마음을 보내자."


2008. 5.27 화

비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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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25 05:41

신현림의 詩 '슬럼프에 빠진 그녀의 독백'을 오랜만에 다시 읽게 되었는데 마음을 친다.

청춘의 벌판을 지나고

그곳은 타버린 무명옷으로 굽이치지

애인도 나만의 방도 없었지만 시간은 많다고 느꼈지

여린 풀잎이 바위도 들어올릴 듯한 시절

열렬하고 어리석고 심각한 청춘시절은 이제 지워진다

언덕을 넘고, 밧줄 같은 길에 묶여 나는 끌려간다

광장의 빈 의자처럼 현기증을 일으키며 생각한다


지금 나는 무엇인가?

내가 원했던 삶은 이게 아닌데

사랑이 없으면 시간은 죽어버리는데

옷장을 열어 외출하려다 갈 곳이 없듯

전화할 사람도 없을 때의 가슴 그 썰렁한 헛간이란,

헛간 속을 들여다봐 시체가 따로 없다구


사람을 만나면 다칠까봐 달팽이가 되기도 하지

잡지나 영화도 지겹도록 보아 그게 그거 같고

내가 아는 건 고된 노동과 시든 꽃냄새 나는 권태,

 내일은 오늘과 다르리란 기대나

애정이나 행복에 대한 갈망만큼 지독한 속박은 없다


나라는 연장을 어떻게 닦아야 하나


'무한경쟁사회' 그리고 '승자독식의 시대'는 이렇듯 '나'라는 존재의 의미를 끊임없이 되묻게 한다는 점에서는 유의미하다. 그러나 한편으로 행복에 대한 갈망을 지속적으로 재창출함으로써 '우리'를 더 질곡의 늪으로 빠져들게 한다는 점에서는 무의미하지 않을까 싶다.


우리가 이토록 괴로운 시절을 보내고 있다고 해서, 후세대들의 미래는 이대로 방치할 것인가. 우리는 우리가 얼마나 이기적인 세대인 줄 아직도 모른다. 적어도 술자리나 식사자리에서 안주꺼리로 삼는데 그치지는 말자. 기실 그런 풍경 중 대다수는 '우리'를 걱정한다기보다 '나'와 '우리 가족'만을 위한 대책반을 꾸리고 있다는 현실적 모습의 반영일 따름이지 않은가.


'사랑'이나 '연대'도 없으면서 무슨 행복 따위를 갈망할 것인가. 아니 어쩌면 행복의 껍데기를 더듬으면서 행복이 가까운 곳에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훗. 이럴 땐 '개뿔'이란 단어가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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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25 05:39

 **님.
메일 꼬리에 살짝 달아놓으셨길래
뭔가해서 들어왔다가 히히 웃고 가요_
휴.
막 어렵고.
특히 저같이 쉽게쉽게 웃으며 살고싶은 사람한텐. 정말 어려워요. 진짜.
맘껏 질책하셔도 돼요_ :D

출처: http://oktimes.cafe24.com/ 방명록에서.


얼마 전 선배 홈피에 마실을 갔다가 위의 방명록 글을 보았다. 몇 일이 흐르는 동안 최근의 내 심리적 상황과 맞물린 탓인지 이 글귀가 뇌리에서 내내 사라지지 않고 있다. 출처의 선배와 금요일 저녁 콜로키움 첫모임의 연회 마지막3차에 새롭게 재발견하게 된 소중한 동네 실내포장마차(모든 안주 5,000원, 서비스 안주 당근, 계란말이, 국물)에서 이 글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그 방명록 글을 보고 정말로 퍼니하게 사는 것도 매우 중요한 일인데... 왜 언젠가부터 이렇게 재미있지 못하게 되었는지 모르겠어요."

 

그렇게 마음으로 인지하게 되었다. 내 삶이 얼마나 고리타분하고 어렵게 되버렸는지에 대해... 나도 저렇게 쉽게쉽게 웃으며 살았던 시절이 분명 존재했었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점차 그런 경계에서 멀어지더니만 이제는 그 곳은 머나 먼 지평선 너머로 사라져 버렸다. 무엇 때문이었을까 가만히 생각해 본다. '살면서 누군가의 마음을 은결들게 한 탓일까.', '아니면 세상의 좀 더 복잡하게 얽힌 속내를 들여다보기 시작했기 때문일까.', 그도 아니면 '뚜렷한 주관을 가지고 넓게 보려하는 것이 결국 벗겨보니 강요와 폭력으로 얼룩진 가식에 불과하다는 것이 쪽팔려서였을까.' 그러나 사연은 많고 해답은 없다.

 

진심을 가지고 삶을 대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진심이란 것도 때로는 아무 것에도 쓸 데 없는 것임을 알겠다. 그리고 그 역시 나를 보호하기 위한 알량한 무기로 둔갑하기도 한다. '너'를 위해서, '우리'를 위해서 난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을까. 지금의 이 무료하고 재미없음은 그 노력하지 않음에서 오는 것은 아닐까. 아무리 가리려 해도 얄팍한 내 자신은 가릴 수 없기 때문에...

 

모종의 자기합리화란 것을 위해 이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이제 지난 날을 잡을 수도 또 회귀할 수도 없다면 과거의 그 날의 즐거움들을 간직하면서 이 고리타분함 역시 상존시킬 수는 없을까. 그것은 기실 요원한 일은 아닐 듯 싶다. 다만 누군가를 위한다는 명목 아래 하릴없이 내 자신의 사랑만을 채색하는 모순적인 짓 따위만 범하지 않는다면야...

 

올해도 아련하게 짧게 피어나는 봄을 알리는 비가 내리지만 겨우내 켜켜이 쌓인 내 마음의 먼지는 쓸어가지 않는다. 나에게 새푸른 초록을 관조하고 훈풍을 쐬며 이 봄을 누릴 자격은 그 먼지를 스스로 털어내지 않고서는 오지 않을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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